Ego 에고
김신규展 / KIMSINGYOO / 金新奎 / painting
2013_0515 ▶ 2013_0521
김신규_ego1_아크릴 채색_91×116cm_201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이즈GALLERY IS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인사동길 52-1)Tel. +82.2.736.6669www.galleryis.com
「에고(ego)」-상처의 옷을 입고 완성된 자아 ● 보색의 원색들이 자유롭게 춤추는 화면. 그 안에서 고불고불한 머리카락을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기울인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인물을 마주한 우리들은 그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과 알 수 없는 신비로움에 이끌려 어느 순간 화면 깊숙한 곳에 이르게 된다. 그는 누구이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수많은 질문이 오가는 사이 어느덧 그와의 진정한 내면의 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김신규_ego5_아크릴 채색_162×112cm_2012
김신규 수사의 회화 연작 「에고(ego)」를 마주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체험담일 것이다. 조각을 전공했음에도 색을 사용하는데 있어 전혀 두려움이 없는 김신규 수사의 자유로운 회화 작품은 그의 또 다른 달란트를 드러내며 '진정한 나'에 대한 물음을 거침없이 던지고 있다.
김신규_ego2_아크릴 채색_162×130cm_2012
그의 작품은 「에고(ego)」 즉 '자아'를 주제로 하고 있다. 에고는 정신분석학에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용어이지만 김신규 수사가 제시하는 에고는 여러 층위의 자아가 소통하며 이루어낸 한 완결체로서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달리 해석된다. 프로이드나 라캉의 이론에 입각한 자아의 해석을 그의 그림에 덧씌우려 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가톨릭 수사(修士)인 그에게 있어 자아에 대한 탐구는 창조주에게 던지는 끊임없는 질문이기도 하기에 그 사유의 범위는 인간의 의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초월적인 범주에까지 확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 김신규 수사의 에고는 그리스어 "Εγώ(Ego)"에서 유래한 ego의 본 의미 그대로의 '나, 자아'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더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상처와 그 상처를 매개로 한 소통과 치유의 과정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자아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그의 「에고(ego)」 시리즈에 담긴 진정한 의미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한 인간의 온전한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에 내비쳐지는 불안, 고뇌, 혼돈, 욕망 그리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받게 되는 상처를 표현하면서도 쾌(快)를 부르는 색채와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한 눈동자를 통해, 완성된 자아를 꿈꾸는 초월적 인간상을 그려내고 있다. 존재에 대해 자문하는 궁금증 어린 고갯짓과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암시하는 고불거리는 머리카락과 섬세하게 그려진 입술은 모두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길에 맞닥뜨리게 되는 나 자신의 또 다른 모습들이다.
김신규_ego3_아크릴 채색_130×162cm_2012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마치 양파처럼 겹겹이 쌓여 형성된 그의 '에고'는 갖가지 색의 삼각형이나 부드러운 꽃잎 문양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있다. 나와 타인이 받았을 상처를 표현했다는 오색의 옷은 상처투성이의 자아를 감싸는 동시에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다만 그 상처는 고통과 슬픔에만 머무르지 않고 진정한 자아를 일구어 가는데 쓰일 하나하나의 아름다운 삶의 조각들로 제시되고 있다. 이렇게 김신규 수사의 「에고(ego)」는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기쁨이기도 한 '참된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우리를 동참하게 한다. 그리고 진정한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통로이자 초월적 존재를 마주하게 될 빛나는 창(窓)인 에고의 눈동자로 우리를 인도한다.
김신규_ego4_아크릴 채색_112×162cm_2012
상처의 조각들을 이어 지은 옷을 입고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에고는 어쩌면 현존할 수 없는 완전한 자아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끝없는 희망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늘 그가 이야기하는 '에고'를 꿈꾸게 된다. ■ 정수경
김신규_ego6_아크릴 채색_162×130cm_2012
「에고(ego)」 ● 인간은 누구나 거절 받기를 두려워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상처를 받는다. 누구나 ego (자아)는 있다. 이 자아(ego)는 본질적으로 아이덴디티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환경도 중요하다. 「에고(ego)」를 통해서 어떤 소통의 실마리를 찾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어려운 철학적인 명제나, 미학적인 담론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수도 있다. 상처는 인간을 파멸 할 수도 성장시킬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철학적인 구석이 많다. 상처를 철학적으로 풀어 낼 수 있을까? 특히나 자아(ego)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느낄 수 있을 따름이다. 막연한 믿음일수 있겠지만 느낄 수 있을뿐,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점이 많다. 이 상처들을 통해서 우리는 소통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에고(ego)」들의 상처를 통해서 우리는 현재 이성의 나와 자아(ego)가 소통을 하고 나와 우리가 소통을 한다는 상상을 해본다. 이러한 소통들이 어긋나고 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자아(ego)와 이성이 온전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겐 기본적인 욕망이나, 감정들이 존재한다.
김신규_ego7_아크릴 채색_91×116cm_2012
이 욕망이나 감정들이 자아(ego)가 가지고 있든, 이성이 가지고 있든 하나의 인격체를 형성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감정과 욕망을 통해서 우리는 소통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감정이나 욕망들은 철학적이다. 발터벤야민은 언어철학을 통해서 미학을이야기 했지만 ,인간의 언어보다 기본적인 앞선 욕망이나 감정을 일차적으로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이러한 상처들은 언어로써 전달이 되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감정이나 욕망이라는 것이 앞선다. 이 자아(ego)가 가지고 있는 심연의 그 어떤 감정들 말이다. 소통이 불통이 되는 것도 이러한 자아(ego)의 상처로 말미암아 어떤 감정의 단절이 이루어낸 결과가 아닐까? ego는 그 심연에서 좋은 것들도, 나쁜 것들도 꺼내줄 수 있다. 상처를 통해서 이야기하려는 이 자아(ego)는 어떤 존재, 이미지일까? 나는 작업을 통해서 이미지를 연출한다. 이 이미지라는 자아(ego)가 허구일수도 있다. 나에겐 더 절실한 상처받은 에고가 있을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자아(ego)는 이러한 욕망이나 감정들을 통해서 소통을 이루고 때론 단절을 이룬다. 여기엔 고독과 고통과 구도자의 성찰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 나는 그런 고독과 고통을 통하여 아이덴디티를 찾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상처와 욕망들을 통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우리의 삶은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미지를 통해서 나 자신의 에고와 우리 각자의 에고를 상상하거나 볼 수 있다. 그것이 허구이든 실제이든 우리는 하나의 꿈을 꿀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욕망과 감정이 있는 꿈 말이다. 자아(ego)가 꿈을 꾸고 우리 이성은 그걸 현실화 시키는 꿈 말이다. 여기에서도 자아(ego)와 우리의 이성은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 꿈들을 이루기위해서 심연에 존재하는 욕망과 감정들의 상처가 내안에 있는 자아(ego)의 우주 안에 덩어리처럼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소통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 김신규
Vol.20130515a | 김신규展 / KIMSINGYOO / 金新奎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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