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LECTION

유근택/ YOOGEUNTAEK / 柳根澤 / painting.installation

2023_1025 2023_1203 / 월요일 휴관

유근택_반영_한지에 수묵채색_144×101cm_2023

 

유근택 홈페이지_www.geuntaek.com

인스타그램_@yoogeuntaek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 본관

GALLERY HYUNDAI

서울 종로구 삼청로 14(사간동 82-1번지)

Tel. +82.(0)2.2287.3500

www.galleryhyundai.com

 

유근택, 또는 회화의 반투명성에 관하여 유근택의 회화 작품을 처음 본 것은 2000년 가을이었다. 이따금 방문하는 교외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젊은 모색 2000-새로운 세기를 향하여(2000)라는 그룹전에 전시된 6점의 수묵화 연작 긴 울타리(2000)가 그것이다. 나는 기민한 감식안을 지닌 사람은 아니지만, 이때만큼은 굉장한 작품을 보았다고 즉시 생각하였고 고양감을 누를 길이 없었다. 이후 이 화가에 대한 극찬하는 내용을 담은 평론을 세 번이나 썼다. 이번에 쓰면 네 번째가 된다. 외국 작가에 대해 여러 번 글을 쓰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글쓰기 취향을 조금 바꿔 반세기가량 한국의 바로 옆 나라에서 비평 활동을 지속해 온 나의 비평의 배경과 기준을 다시금 표명하면서, 왜 유근택의 회화가 나에게(우리에게) 특별하고 귀중했는가를 밝히고 싶다. 기억이 가물가물 흐려지고 있는데 반세기를 되짚어 보는 일이므로, 사실관계가 어긋난 내용이, 마치 대나무 바구니에서 낱알이 쏟아지듯 등장한다 해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길 바란다.

 

유근택 _ 창문 _ 한지에 수묵채색 _146×103cm_2022
유근택 _ 말하는 정원 _ 한지에 수묵채색 _149×101cm_2020

내가 미술비평가 활동을 시작한 1970년의 일본은 구질서를 비판부정하는 전위적인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어 두 가지 쟁점이 치열하게 부딪치는 상황이었다. 한편으로는 도쿄비엔날레 '70의 기획을 맡은 비평가 나카하라 유스케(中原佑介)1960년대부터 전개되어온 복잡다단한 반예술의 동향을 동시대 서구의 최첨단 경향을 참조하면서 탈감정화탈지역화하여 전통예술의 방법론에 따르지 않는, 물질적 무질서의 논리화로 정리해 제시하여 비평가로서 유례없는 명망을 얻었다. 다른 한편 몇몇 동료들과 더불어 예술사상의 문명적 틀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나카하라가 참조한서구 최첨단 경향의 예술 상황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도, 도리어 서구 근대의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이원론적 세계관 그 자체를 예리하게 비판하며 '모노하(もの)' 의 중심축을 지탱한 존재로 평가받는 한국 태생 이우환의 활동이 있었다. 이리하여 나카하라 유스케도 이우환도 일본의 1970년대 이후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셈인데, 두 사람에게는 각각 시대 특유의 한계가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나카하라는 자신이 주도했던 개념주의적 이론의 공격을 받고 주춤하였고, 마지막까지 '회화'와 진지하게 다시 대면할 수 없었다. 이우환도 다시 한번 회화를 서구 근대와 동일시하여 단죄한 일이 있었지만, 다행히 그의 내면의 유연한 예술가 자질 덕분에 1973년경부터 붓질의 반복으로 화면을 화가의 자유로운 움직임이나 물질의 단순한 드러냄에서 구해내는 양가적인 작품세계를 성취하는 데 성공했다. 나카하라의 도쿄비엔날레 '70에 협력했던 나는 이우환의 극단적인 반서구근대주의에 동조하기 어려웠고 다소 반감마저 느꼈으나, 본디 회화조각에 강한 정열을 지닌 인간이었기에 이우환이 보여준 양가적 회화의 개안에는 일찍이 공감하였고 금세 그의 비평적 지지자가 되었다. 이우환의 이러한 근사한 전진에는 당시 내가 줄곧 주창한 예술 실천의 반복성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다소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좀더 확실한 것은 같은 시기(1970년대 초) 서울에서 이방인 이우환과 깊이 교유한 박서보의 작업방식, 즉 캔버스 바탕에 한지를 덧바르고 밑칠한 뒤 반복적인 긋기로 충돌과 간섭을 동일한 양가적 화면으로 구축해온 이른바 '묘법(描法, Ecriture)' 회화와의 동질성을 지적할 수 있다. 그 후 박서보와 이우환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단순한 추상화가에 그치지 않은, 의미 깊은 양가적 회화의 수행자로서 중요하게 다뤄져왔다. 그들의 진가는 오늘날 한국 특유의 회화표현으로 전세계에 알려진 단색화의 집단적 양식성을 훌쩍 뛰어넘는 결과로 나타났고, 회화의 현대적 의의를 단둘이서 선도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유근택 _ 거울 _ 한지에 수묵채색 _150×104cm_2022
유근택_말하는 정원_한지에 수묵채색_146×203cm_2019

때는 1970년대였다. 미국 회화에서는 미니멀리즘의 한계를 극복해낼 만한 전망이 부재하였고 여전히 '불투명성의 회화' 등이 거론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마오주의(Maoism) 영향으로 표현과 물질의 모순을 중시하는 풍조가 강해졌는데, 회화 그 자체의 고유성을 모색하는 자세는 드물었다. 그리고 어느 지역에서든 회화는 임의로 시도된 적이 있더라도 추상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일본과 한국의 현대미술도 이우환과 박서보의 귀중한 주도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추상 바깥으로나아갈 수 없었다. 20세기라는 시대, 그것이 한계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이한 일인데, 이런 '회화 빙하기'가 한창이던 19774월 나는 잡지 미술수첩(美術手帖)편집부를 설득하여 회화에 관한 특집을 마련했고, 거기에 회화에 관한 10(絵画する10)이라는 에세이를 기고했다. 당시 사람들은 회화가 이미 한물갔다고 생각했고 그 대신 '평면'이라고 부르는 것이 '동시대 시류'라고 여겼다. 편집부가 타협해서 특집 타이틀을 회화의 평면과 평면의 회화(絵画平面平面絵画)라고 붙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그평면은 어떤 의미로든 추상을 뜻한다는 데에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말하는 '회화' 또한 형상이나 이미지를 전제로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선 제압하는 태도로 '회화의 본질은 반투명성이다'라고 밀어붙였다. 좌담회는 기묘하게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도쿄비엔날레 '70의 성공 이후 위세가 당당했던 나카하라 유스케는 뜻밖의 화제(회화의 부활)에 의기소침한듯싶었고, 젊은 두 명의 비평가는 딴청 부리며 쓸데없는 잡담을 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최대의 난적이라고 생각했던 후지에다 데루오(藤枝晃雄)가 쉬는 시간에 옆에 있던 나에게 "회화가 반투명이라니, 괜찮은 말이군요"라고 말을 건넸다. 늙은 평론가의 감상적인 옛날 얘기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회화 부재의 30년 동안 구상을 제외한 '회화'를 놓고서 이런 논의를 진행했던 것 자체는 지금 돌이켜보니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는 형상과 이미지를 결여했다고 해도, 회화의 본질을 반투명이라고 보는 논의의 근거가 조금도 낡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범속한 것을 좋아하는 비평가라서 예언자적 부류를 믿지 않는다. 허나, 회화의 반투명성은 바로 지금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반투명성'이라는 말로 나는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 후 10년이 흐른 뒤 19866, 박서보의 도쿄화랑 개인전에 도록 평론글에 나는 이렇게 썼다.

 

유근택 _ 반영 _ 한지에 수묵채색 _100×205cm_2023
유근택 _ 반영 _ 한지에 수묵채색 _145×102cm_2023
유근택 _ 반영 _ 한지에 수묵채색 _146×102cm_2023
유근택_봄 - 세상의 시작_한지에 수묵채색_242×206cm_2023
유근택_봄 - 세상의 시작_한지에 수묵채색_250×206cm_2023 "

뛰어난 회화는 왜 반투명인가. 마티에르(매체의 물질성)의 불투명한 벽이 드러내는 물자체의 발현을 실존적으로 긍정하는 즐거움과 그 벽의 저편에 혹은 바로 앞에 시각이 투명하게 비쳐지고, 때로는 뜻하지 않은 비전이 생기는 즐거움을 둘 다 향유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 회화는 이 양극단의 어느 쪽이든 한쪽에만 치우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모노크롬 회화는 불투명성에 치우친 예이며, 삽화나 개념도 같은 그림은 투명성에 치우친 결과다그 중간의, 반투명성의 애매함을 견뎌야만 한다. 그애매함, 벽도 풍경도 아닌, 말하자면 창()이 지닌 양가성에야말로, 회화의 깊이, 예측 불허(변덕스러움), 리얼리티, 허구성, 요컨대 회화의 풍요로움의 일체가 깃들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쓴 다음에도 일본과 한국의 풍경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 서브컬처의 성공에 가려진 회화를 점점 잊어버린 일본에서는 1960년대 이후 그래픽 디자인계의 인기 스타였던 요코오 다다노리(橫尾忠則)1982년 갑자기 피카소나 피카비아를 모방하며 창조적 회화를 그리는 작가가 되려고 의욕을 보였는데, 그 본령이 발휘되기까지 1988다원우주론, 나아가서는 2000년 이후의 Y자형 골목길시리즈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도 과감하게 고전미술의 성과를 끌어들여 형상과 이미지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 요코오의 회화 영역안에서의 횡단은 일본 현대미술계의 기이한 풍경이었다. 희귀종이었던 요코오를 예외로 놓고 생각해보면, 일본은 여전히 이우환의 양가적 추상회화 이상의 가치를 몰랐던 것이다. 이미 아셨을 것이다. 2000년 가을, 유근택의 작품과 만난 일이 내게 어느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나. 이우환과 박서보에 의해서 가까스로 견지되어 온 회화의 반투명성이라는 미적 요소가, 그와 맞먹는 수준의 의미 있는 붓질과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한층 솔직한 구상 표현의 붓질로 더할 나위 없이 섬세하고 깊이 있는 성찰로서 성취된 것이다. 당시의 유근택 그림은 앞서 박서보 평론에 서 언급했듯이, 필시 "벽도 풍경도 아닌, 말하자면 창이 지닌 양가성"으로 살아 숨쉬었다. 작업실 창문을 통해 정점관측하듯이, 매일 관찰하는 숲속 오솔길과 지나가는 사람의 그림자. 일상에서 쉽게 마주치는 시시하고 밋밋한 것들은 화가와, 화가가 매일 산책길에서 관찰하는 풍경 사이의 보이지 않는 창틀에 의해 (그리고 그것을 대변하는 울타리에 의해) 이원화되며, 그 이원성이 작가와 대상세계와의 말소하기 어려운 시간의 엇갈림산 자와 죽은 자의 엇갈림에 이르는 거리으로서구조화되고 있음을 정감 있게 보여준다.

 

유근택_분수_한지에 수묵채색_258×206cm_2023
유근택_분수_한지에 수묵채색_258×206cm_2023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그려진 풍경 사이의 치명적이고 비극적인 거리를 의식하는 것은 이 화가의 타고난 예술적 감성에서 기인한 듯싶다. 우리는 화가가 초년생 시절에 그린 놀라운 대작 유적-토카타(질주)(1991)에서 그러한 거리의 인식을 이미 명확하게 회화적으로 처리했음 알고 있다. 할머니에게서 매일 들었던 한국 시민의 비극적인 역사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 이 대형 작품이 드러내는 것은 결코 말해진 이야기(narrative)가 아니다. 이야기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차원을 내포한 사건에 대한 통찰로 구성되어 회화적으로 가공된, 한 편의 창작물이자 비극이다. 이 벽화 같은 작품의 첫 부분과 끝부분이 그리스 비극에 으레 붙는 코러스를 연상시키는 무수한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로 메워졌고, 더욱이 고문을 연상시키는 장면에 겹친 부처의 얼굴 등, 사상(事象)의 단일성일원성을 넘어선 핵심적인 필치가 회화 특유의 중층적 생기를 자아낸 것을 놓칠 수 없다. 이 작품 이후 일상생활의 관찰과 공상, 허구에서 포착해낸 다양한 주제형상이미지가 유근택 작업에 엄청나게 중요한 피와 살이 되었다. 그러한 작품들을 나는 비평가로서 이례적이지만 놀라움과 감동으로 받아들였다. 그림이 극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형상 묘사의 밀도가 뛰어나서 그런것도 아니다. 농밀한 동아시아적인 전통적인 수묵과 과감한 현대적 도시 풍경이 편견 없이 공존 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화면에 끌어들인 모든 요소들이 서로 녹아들 수 없는 시제(時制)를 지니며, 말하자면 내재적인 상호 비판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는 사람과 그려진 것 사이의 불가피한 시간차를 메울만한, 그러한 붓질의 투입. 그의 회화는 결코 하나의 이야기로 끝맺은 적 없고, 끝나지 않는 세계로의 관여로 감동을 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유근택의 작품에서는 그림이 자기 그림을 비판하며, 그 비판의 척력(斥力)으로 화면은 잘 보인다고도, 보이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는 반투명의 중간지대로 부유하듯, 가상성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만 예로 작품을 다뤄보겠다. 2007년 이후 이따금 제작된 자라는 실내시리즈. 사람이 사는 넓은 서양식 거실과 그 거실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공간을 다 채운 채로 부유하는 다양한 종류의 자잘한 나뭇가지. 살아있는 인간의 의지나 감정을 무시하고 끝없이 자라나는 식물의 거대한 군집과 평온한 거실 공간 사이에 기묘한 휴전 상태가 성립한다. 두 개의 공간 표상과 생명 원리가 명 료하게 이층으로 나뉘어 서로가 서로의 생존 원리를 위협하면서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인 지배권을 내맡기지 않는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어디에 자리 잡으면 좋은가. 어느 쪽으로 리얼리티를 느껴야 하는 것인가. 무언가 보인다는 것의 이중성, 의미를 지닌 공간의 비결정성.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잠재된 양가적 애매함을 이토록 명확하게 제시해 보인 회화가 일찍이 있었던가. 이와 같 은 회화를 앞에 두고 우리는 일원적으로 말하는 것의 무의미함을 깨달으며 세계의 깊은 다양성과 초월성으로 이끌리는 게 아닐까.

 

유근택_자화상_한지에 수묵채색_40×29.5 F 56×45.5×4cm_2018

형상과 이미지를 과감하게 도입한 방식이 유근택의 작품세계를 새로운 영역으로 이끌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회화의 반투명성을 고양시킨 내재적 비판은 1980년대 이후 이우환의 기상학적 회화나 1990년대 이후 박서보의 이른바 '지그재그' 회화에서 원리적으로 수행된 방식이었다. 유근택의 등장이 세대의 단절이 아닌, 좀더 뜻깊은 발전적 계승을 성취한 결과라고 한다면, 그것은 한국이나 일본이 경험할 수 있었던 멋진 역사적 쾌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네무라 도시아키 번역 / 김정복

 

유근택_창문_한지에 수묵채색_146×101cm_2022
유근택 _ 폴과 해변 _ 한지에 수묵채색 _128×14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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