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 Jinhee
노혜리展 / ROHYEREE / 盧惠莉 / mixed media
2022_1214 ▶ 2023_0115 / 월요일,12월 25일,1월 1일 휴관
전시연계 퍼포먼스 Ⅰ 「진희와 지니」
1회차 / 2022_1223_금요일_06:00pm
2회차 / 2022_1224_토요일_05:00pm
전시연계 퍼포먼스 Ⅱ 「마주」
3회차 / 2023_0106_금요일_06:00pm
4회차 / 2023_0107_토요일_03:00pm
주최,기획 /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관람시간 / 12:00pm~07:00pm
일요일_12:00pm~06:00pm /
월요일,12월 25일,1월 1일 휴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PS Sarubia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6길 4(창성동 158-2번지) B1
Tel. +82(0)2.733.0440
시야 視野 ● 무엇을 얼마만큼 볼 수 있는가. 시각예술은 오히려 시각을 벗어난 감각과 생각의 범위가 크고 깊을 때 여운을 남긴다. 예술가로서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 예술적 시야의 폭과 깊이를 결정한다. 주어진 삶의 환경과 조건이 다양한 만큼, 생각의 지점 또한 다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예술가의 작업은 특별하다. 미국과 한국, 두 나라 모두에서 초·중·고·대학교육을 받은 노혜리 작가는 일상에서 미묘한 간극이 만들어 내는 차이에 예민하다. 작가의 시선은 이질적인 틈새를 감지하고 가시화함으로써 새로운 맥락으로 특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 ● 작년 여름, 작가가 유기 삽살개 '지니'를 키우면서 프로젝트 '진희'는 시작되었다. 가상의 인물인 진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면서 관찰자, 피관찰자, 화자, 창작자, 창작의 협업자, 퍼포머 등 여러 상황에 맞춰 작가와 지니를 오가며 다양한 작용과 관계를 형성하는 주체이다. 지금까지 인간의 몸과 사물이 만나는 방식을 실험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동물의 몸, 그리고 더 나아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진희의 몸과 사물을 매개로 진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시선 視線 ● 어떻게 볼 것인가. 작업노트에는 진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엿볼 수 있는 기준과 가치가 담겨있다. 지니는 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고 있을까. ● 지니는 동물보호소에서 4개월, 구조단체에서 4개월을 지내며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랜 시간 입양되지 않았다. 지니는 경상북도 울진, 경기도 남양주, 인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작년 여름 나와 만났고, 현재 뉴욕 주 브루클린에서 지내고 있다. 함께 보호되고 있던 다른 삽살개들보다 지니의 입양이 늦어진 이유를 살펴보면, 인간과 사물에 적용되고 있는 선호 기준과 가치가 여실히 드러난다. 나이가 많고, 크고 뚱뚱하며, 임신과 유산을 했고, 젖이 늘어졌으며, 병에 걸린 상태로, 혈통 인증이 안된 삽살개 지니는 입양 문의조차 없었다. 원하지 않는 조건을 가진 존재로, 여러 장소를 거쳐 이주한 땅에서 삽살개 지니는 이민자의 현실과 비슷한 장면들을 마주한다. 들어본 적도 없고 발음하기 어려운 낯선 이름, 외부에서 온 존재. 사회가 부여하는 기준과 기대, 그것을 빗겨나가는 존재가 대면하는 상황들을 지니를 통해 다시 경험한다.
작업실에서 지니는 특정 사물들(작업)은 넘어뜨리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지나가고, 작업이 아닌 사물들은 밟거나 그 위에 올라가 앉는다. 사물이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작동하는 방식이 있는가, 지니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언어나 논리, 설명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사물의 규약, 시각세계의 규약이 존재하는가. ● 미국에서 사용하는 길이의 측정 단위, 인치와 피트는 인체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성인 남성의 엄지손가락 마디(인치), 발 크기(피트), 팔꿈치부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큐빗), 몸 중심에서 손가락까지의 길이(야드) 등 몸을 기준으로 한 단위는 많다. 인간의 몸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한 인간의 몸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길어지고 늘어나며 얇아지거나 넓어지고 또 작아진다. 변하지 않는 기준으로 사용하기에는 꽤나 작위적인 단위가 아닌가 싶지만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마음이 이끌리기도 한다.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결국은 공동으로 정한, 그러나 지극히 인위적인 것이 아닌가. ● 사물의 높이와 길이를 정할 때, 만드는 사람의 몸과 지니의 몸을 기준점으로 삼았다. 이를테면 주머니까지의 높이, 섰을 때 턱까지의 높이, 앞발과 뒷발을 모두 쭉 늘어뜨렸을 때의 길이, 머리를 치켜들고 섰을 때의 높이로 측정된 기준을 따랐다. 또한 전시된 사물은 모두 테이블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는데, 테이블의 구조는 다리와 무릎, 발 등 신체 부위의 명칭으로 불린다. 각각의 사물은 몸을 보호하기 위한 피난처 또는 동물이나 사람이 통과할 수 없게 가로막는 구조물, 제한된 신장을 가진 몸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영역, 이렇게 몸과의 관계가 다 다르다. ● 「다리」, 「서기」, 「가락」은 낮음-수직-높음, 나무-쇠-흙, 조각-주조·조합-소조로 구분되는 각기 다른 조형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다리」에는 사실 구리 파이프로 된 다리와 도자로 만든 조각이 있다. 또한 길쭉한 나무 중 하나에는 나무가 아닌, 건조한 무광 회색빛 점토로 만든 사물이 솟아있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낮은 사물에서 유일하게 솟아오른, 직립하고 있는 부분이다. 「서기」에는 격자가 아닌 그물과 작은 구슬을 꿰어 만든 발이 있다. 「가락」의 테두리를 이루고 있는 것들 중에 도자가 아닌 것이 하나 있다. 아주 얕은 반달 모양의 나무인데, 곡면은 삼각형의 모양이 뾰족하게 깎여나가 마치 톱니처럼 보인다.
함께 생활하며 작가는 지니의 시선으로 주변 공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우리에 갇힌 지니의 입장에서 안과 밖을 구분 짓는 경계는 어떻게 인식될까. 이 구조물은 인간과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피난처이자 안식처이면서 동시에 인간과 동물의 행동을 제한하고 이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안과 밖을 구분 짓는 울타리는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행동과 심리, 감각을 제약하고 통제한다. 몸의 접촉과 통행이 가능한 구조물부터 시선과 대화만 오갈 수 있는 장막, 소리와 시선마저 차단되어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한 거대한 차단 장치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관계가 이렇게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장막으로 구분, 분리된다. 변화하는 몸과 생각처럼 안과 밖의 시선은 자유롭게 넘나들 수 없는가. ● 전시의 동선은 여러 층위의 높이와 경계를 설정하여, 시선의 잣대를 물리적으로 인식하도록 세심하게 연출되었다. 희뿌연 막으로 둘러싸여 첫눈에 파악할 수 없는 전시장 구조, 막 너머의 어렴풋한 풍경을 주시하며 완만한 램프를 따라 올라가면, 장막의 높이가 주는 위압감은 완화되고 올라온 높이에 대한 감각은 흐트러진다. 높은 단상부터 전시장 바닥에 도달하기까지 관객은 자신의 움직임으로 3인칭 관찰자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1인칭 주인공의 시점 등 다양한 감상의 시점을 결정한다. 내려다보고, 올려다보고, 안에서 밖을 보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누가 안과 밖을 결정하는가. 나는 세상과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시점 視點 ●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작가는 사물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 사물의 상당수는 수집되거나 발견된 것들로 본연의 장소를 벗어나 의미와 쓸모가 지워진 채, 조형적인 형태와 이미지, 물성만이 남는다. 이 소재들은 또 다른 사물을 연상시키고 여기에 작가의 조형물이 덧붙여진다. 작가의 체험과 기억, 감각과 감성이 투영된 이질적인 재료들은 차이를 보이면서도 어우러지게 접붙여진다. 새롭게 변모한 사물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사람의 몸과 연계되며 이야기 장면 속에서 존재와 의미를 드러낸다. 언어와 몸, 움직임과 소리가 개입하여 모든 사물과 주변을 연결 짓고, 모든 감각을 소환한다. 이질적이고 모호했던 결합이 다층적으로 연결되며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렇게 분절된 파편들을 느슨하게 짜 맞추다 보면, 결국 이 작업은 세상을 향한 작가의 메시지로 읽힌다. 진희의 세상은 작가의 삶의 여정을 거쳐 우리의 현재가 보이도록 그 생각의 틈을 남겨두었다. 원형을 알 수 없는 수많은 파편들로 이루어진 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 황신원
Vol.20221214f | 노혜리展 / ROHYEREE / 盧惠莉 / mixed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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