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영신 동지의 고향인 함평 장을 찾았다

놀부 집처럼 들어섰던 옛 장옥은 오간데 없고,

박람회장 같은 새 장옥이 들어섰더라.

 

노점상 자리는 뚝 아래로 몰아 그런지,

상인도 손님도 별로 없는 황량한 장마당이었다.

 

장옥 한 모퉁이에 할머니 장터를 만들어놓았는데,

십여 명의 할머니가 옹기종기 앉아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억지춘향 격이지만, 유일하게 장터 맛을 풍기는 정경이었다.

 

장 보러 나온 할머니는 장바구니에 가득 사 담았는데,

바구니 한 쪽 구석에 연분홍 꽃잎이 배시시 얼굴을 내밀었다.

‘늙어도 춘정은 살았다’고 말하는 것 같더라.

 

연고 있는 함평장은 다른 장에 비해 자주 간 편인데,

이제 한 물 간 것 같았다.

 

이번 촬영 길은 정동지가 추진하고 있는 길 위의 인문학

‘어머니의 땅’을 위한 인터뷰 자리였다.

 

한 평생 땅에 몸 부비며 살아온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사진가 이민씨가 동네 사는 할머니 한 분을 소개해 준 것이다.

 

정오 무렵, 이민씨를 함평장에서 만나 ‘화랑육회비빔밥’집에 갔다.

함평만 오면 이 집에서 비빔밥을 먹었는데,

워낙 맛있어 다른 음식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식당 앞에는 대기 손님들이 기다렸으나, 그냥 갈 순 없었다.

 

며칠 전 서울 평창동 북악정에서 육회비빔밥을 먹어보았는데,

가격은 함평보다 곱으로 비쌌지만 화랑식당 맛을 따라 갈 수 없었다.

왜 달랐는지, 이번에 먹어보니 감이 오더라.

평창동 육회 비빔밥은 푸성귀가 너무 많았다.

순이 죽지 않은 야채가 육회 특유의 맛을 가리는 것 같았다.

 

이민씨 안내로 함평군 나산면 우치마을로 자리를 옮겼다.

나산은 안타까운 기억이 남은 장터였다.

오래된 함석집 장옥이 몇 동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한 푼 없는 주제에 장터박물관 만들어 옮겨야 한다며 탐을 냈으나 욕심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뭐가 중요한지를 잘 모른다.

뒤늦게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 있겠는가?

 

우치마을에 도착하여 차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할머니 인터뷰 자리에 따라가 보았자, 피차 도움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잠깐 자고 일어나보니, 어느 집에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텅 빈 마을을 무작정 돌아 다니며 구경했는데,

직접 지었다는 이민씨 집 같은 새집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폐가나 다름없는 낡은 정미소와 허물어지기 직전의 기와집이나 토담에 눈길이 갔다.

 

사라져가는 세월의 흔적에 대한 애잔한 슬픔에 앞서,

늙어 사라진다는 동질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젊은이들은 객지로 나가고 늙은이들이 지키는 조그만 촌락이지만,

이 나쁜 놈의 코로나 때문에 경로당마저 막아 놓았다.

 

거짓말 좀 보태 사람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 였다.

그래서 마을을 지키며 사는 이민씨가 대견한 것이다.

 

젊어선 꿈을 먹고 살았는데, 늙어지니 추억을 먹고 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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