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가는 길은 언제나 아름답다.

양수리 물안개를 밟고 구불구불 구름을 넘어

조양강에 이르면 만지산 살팔봉이 반긴다.

 

가을걷이로 정영신씨까지 대동했으나, 별로 거둘 것도 없다.

어머니께 내년에 오겠다는 인사나 마찬가지다.

 

농사란 공들인 만큼 돌아오는데, 나그네처럼 집 떠날 때가 더 많으니 될 리가 없다.

남은 거라고는 무와 들깨 조금이고. 산소에 핀 들국화 따는 일이 고작이다.

 

만지산에 도착하니, 현영애감독을 비롯한 손님들이 먼저 와 있었다.

울 엄마 무덤에도 갔다 오고, ‘대마불사주’도 자랑했다.

아직 좀 일렀지만, 술은 잘 익어가고 있었다.

 

손님 접대할 음식이 아무 것도 없어 현감독 일행과 읍내에 나가야 했다.

‘정선아리랑시장'에서 곤드레 밥에다 모듬전까지 시켜 먹었다.

맛있게 먹었으나, 밥값을 손님이 계산해버렸네.

 

식당에서 일어났으나, 일하러가기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만지산에 다시 한 번 와야 할 것 같았다.

모처럼 정영신씨도 왔는데, 힘들게 할 수야 없지 않은가?

시름시름 운전해 녹번동에 도착하니, 오후 아홉시가 가까웠다.

 

그런데, 짐 내리러 자동차 트렁크를 열어보니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술 항아리가 넘어져 굴러 다니다, 숨구멍이 열려버린 것이다.

한 말이나 되는 술을 다 쏟아냈는데, 진한 술 냄새에 어질 어질했다.

 

정영신씨가 어디서 소독약 냄새가 난다고 한 이유를 알겠더라.

차가 취했는지, 차도 왔다 갔다 했다는 증언도 뒤따랐다.

그 술에 들어 간 공력이 얼마며, 또 돈은 얼마나 들어갔나?

 

보조타이어 탱크에도 흥건히 고여 있어, 퍼 마시고 싶더라니까.

나야 안 마시면 그만이지만 맛보여주겠다고 떠벌린 약속은 어쩔거냐?

정영신씨는 새 술로 우려내라지만, 꼴도 보기 싫었다.

 

술만 버렸으면 모르겠으나, 수확한 농작물까지 술에 취해 버렸다.

모든 걸 자제하라는 계시로 받아들였으나, 기분 좆 같았다.

내년에는 일체의 농사를 짓지 않고 땅에 휴식년을 줄 생각이다.

 

길에 쏟아 붓는 기름 값도 만만찮지만, 더 이상 힘들어 못 다니겠다.

하는 일에나 집중해야겠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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