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구월 첫날 정선에 울 엄마 무덤에 벌초하러 갔다.
새벽길의 양평 물안개는 뭐가 뭔지 오리무중이고,

정선 만지산 살팔봉의 지조는 변함없었다.

 

 

 

만지산골에 도착하니, 눈이 뻔쩍 뜨이는 궁디가 수줍은 듯 날 반겼다.

 

 

 

두 달 넘게 뻔질나게 들락거렸지만, 엉뚱한데 신경 써다보니 온 밭이 잡초세상이었다.

호순이 유혹도 마다하고 잡초와의 전쟁에 들어갔는데, 허리가 뻐근했다.

 

 

 

 

 

 

울 엄마 무덤에 벌초하러 갔다.

벌초 할 때 마다 손가락에 피 칠갑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기일과 추석에 맞추어 일 년에 두 번씩 벌초하지만, 이번 기일에 조카가 한 말이 떠 올랐다.

초죽음의 몰골로 벌초하는 삼촌을 본 안타까움에 비롯된 제안이었지만,

할머니 시신을 화장하여 모두가 편하게 서울 인근 납골당에 모시자는 것이다.

 

 

 

사실, 아버지가 묻힌 우리 집 산소는 경남 영산의 영축산 대암골에 있건만,

울 엄마를 만지산에 묻어야 했던 사연도 기가 막힌다.

생전에 나에게 두 번이나 간곡하게 부탁한 것이다.

문호야~ 내 죽으마 절대 너거 아부지 옆에는 뭍지마라

자유부인 처럼 진보적인 삶을 원한 울 엄마가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억눌린 삶을 저승까지 끌고 가지 않으려는 부탁이 아닌가 생각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 무덤에 비수를 꽂는 불효 아닌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그 업으로 장례 치루는 날 장대같은 비가 무섭도록 쏟아지더니,

가족이 탄 승용차가 개울에 전복하는 등 만지산에 난장판이 벌어졌다.

장화 신은 발이 흙에 달라붙어 꼼짝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신을 묻는다고 한 번 생각해보라.

그건 분명 지옥도의 한 풍경이었다.

 

 

 

벌초를 하는 중에 이런 저런 하소연을 했다.

엄마~ 짜마 이번 벌초가 마지막 벌초가 될지 모르겠네 예!

지난여름 조카 향이가 할머니를 가까운 서울에 모시자는데, 엄마는 우째 생각합니꺼?”물었더니,

아이구! 야야~ 여서 많이 놀았다 아이가~ 우리가 어디 간들 못 놀겠나?

고마 새끼들 하는 대로 놔 두 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던 중에 느닷없이 산소에 인기척이 들려왔다.

세워 둔 차를 보고는 누가  조작가~ 뭐해요?”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산소를 빌려준 지주 최연규씨였다.

제초기도 아닌 낫으로 사부작 사부작 벌초하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 더 웃긴다.

아이구! 효자 났군, 효자 났어

제초기가 없어 낫으로 벌초한다는 것은 모르고, 어머니 무덤을 정성껏 깎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맙게도, 무덤 들어가는 길목에 제초제를 뿌려주어 편하게 갈 수 있도록 길을 튀워 두었다.

연규씨! 제초제 뿌려 준것 고마워~”라고 인사했더니, “에이~ ..”하며 얼굴 붉힌다.

 

 

 

제초기로 하면 30분도 걸리지 않을 일을 세 시간이 넘도록 하고보니, 어느 듯 해도 뉘엿뉘엿 넘어갔다.

중놈 머리처럼 말갛게 깎아놓고 내려와 대충 챙겨 먹고 정신없이 쓰러져 잤다.

 

 

 

한참을 자다보니,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잠을 깨야했다.

미처 방에 군불을 지피지 않고 잔 것이다.

엊저녁은 동자동서 더워서 빌빌거렸는데, 하루 만에 추워 벌벌 떨다니...

정선 방은 동자동 쪽방에 비한다면 여섯배나 큰 방이 아니던가.

극과 극의 세상을 원망하랴! 아니면 흐르는 세월을 원망하랴!

 

 

 

그러나 몸은 늙어도 마음속의 봄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 호박같이 편한 고향의 봄을...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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