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은 영주 사는 신동여 화백을 만나기로 했다.

80년대 중반 인사동을 주름잡던 실비대학 멤버가 아니던가.
그림, 시, 도예를 아우르는 인사동 풍류객이었다.






그 뒤 고향인 봉화로 내려가서도 틈틈이 올라왔고,
지방에서 열리는 ‘창예헌’ 모임에도 왔으니, 얼굴 잊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친하게 지내던 적음선사와 풍류객 이종문씨가 세상을 떠나며부터
두문불출하여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페북에 올라오는 얼굴사진이나 간간히 보았을 뿐, 그의 근황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정선에서 토끼와 대마초의 전쟁을 치룰 무렵, 인사동에 나타난 것이다.
전시 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정선에서는 인터넷도 안 되고, 전화마저 지니지 않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메시지를 확인한 지난 토요일에서야 그와 통화 할 수 있었는데,
내일 오후에 영주로 내려가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 해방촌에 있는 ‘고기 방앗간’에서 만난 김상현씨와

전활철씨에게 알려, 시인 조준영씨와 김명성씨까지 연락 된 것이다.






인사동에 나가보니,‘나날이 마켓’이란 프리마켓에 참여하고 있었다.


인사동에 사흘이 멀다 하고 들락거리지만,
이 큰 전시장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귀가 막혔다.
남쪽보다 북쪽에서 놀다보니, 눈 뜬 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인사1길 컬쳐스페이스’에서 열리는 ‘나날이 마켓’은 감성이 꿈틀거리는 프리마켓이었다.
천연염색, 붓, 명차, 한복, 막사발, 옻그릇, 가방과 모자에 이르기까지
수공예, 요리, 전통공예, 리빙, 패션, 소품 등 생산자가 직접 참여하는 아티스트 장터였다. 
서랍 속의 예술이 대중의 손에 쥐어지는 의미 있는 기획전이었다.






전시장 입구에서 만난 신동여씨의 모습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더라.
수염에 가렸을까? 선한 미소에 가렸을가? 세상 살아 온 나이테는 다 어디 갔을까?


그는 돈을 못 벌어 그렇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천하호인이다.






전활철, 김상현씨와 먼저 어울렸는데, 너무 반가워 대낮부터 술잔을 들었다.
전시장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탑골공원’ 전주집으로 이어졌다.
김명성씨와 조준영씨 까지 나타나 인사동 골통 한 패거리가 뭉친 것이다.






김명성시인은 신화백이 옛날에 했던 말은 재방송했다.
“난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고 살고 싶다”
이게 생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차로 들린 ‘유목민’에서는 문학평론가 구중서선생을 만나 뵙기도 했다.
그러나 숨이 가빠오기 시작해 더 이상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


3차는 신사동 ‘뮤아트’로 간다지만, 난 쪽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신동여화백은 결국 그 날 가지 못하고, ‘뮤아트’에 퍼졌다고 한다.






이제 조문호 인생도 끝났다.

예전의 그 객기는 다 어디 가고, 요 모양 요 꼴이 되었을까?
십팔 번도 ‘봄날은 간다’가 아니라 “봄날은 갔다”로 바꿔야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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