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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진가 조문호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도 이른바 다큐멘터리 작업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크고 작은 잡지들 기자로 일하면서 저널리즘 사진은 많이 찍어봤지만 아무래도 다큐멘터리 사진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래서 작가에게 궁금한 질문을 많이 해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나섰던 인터뷰여서 그런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긴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어제는 전화 목소리가 너무 젊으셔서 오늘 선생님 찾느라 좀 헤맸습니다.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도 사진을 공부하고 있는 중인데요, 제가 평소 접근하는 시선과는 사뭇 달라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조심스럽습니다. 선생님 젊으셨을 적 이야기부터 좀 들려 주세요.


- 저는 원래 국문학을 전공했어요. 음악에 빠져 대학을 중퇴하고 음악주점을 했었는데, 저희 가게에 최민식 선생님이 단골이셨어요. 하루는 ‘휴먼’ 사진집을 건네주고 가셨는데, 글은 자기 감정도 들어가고 부풀려서 거짓말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진은 백 마디 말이 필요 없는 거예요. 그리고서 사진을 시작하게 됐는데 주인이 가게에는 안 붙어 있고, 종업원들이 맘대로 하다 보니까 얼마 안 가서 살림살이가 거덜나고 말았지요. 정선에 작업하러 들어온 지는 6년밖에 안 됐어요.

지난주 전시 오프닝에 왔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던데요. 선생님 팬들이 많은 것 같아요. 막상 저도 전시회를 해보니까 전시회보다 전시장에 오는 손님들 챙기는 일이 더 어렵고 힘든 것 같아요. 그런데 정선 들어가시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는가요?


- 부산에서 주점 그만두고 서울에 올라와서 「월간사진」 편집장으로 한 2년 있었고, 사진협회 회보 만드는 데에 2년 정도 있다가 ‘87 민주항쟁‘ 전시하면서 뜻이 안 맞아서 그만뒀어요. 그리고 삼성포토클럽 편집장으로 4년 정도 있었고요. 아무래도 이런 곳에 있으면 사진하는 사람들 많이 알게 되지요. 환경사진가회 일도 지난달에 그만두고 다른 분을 추천해 드렸어요. 별로 도움을 준 것도 없는데 인복이 있어서 그런지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번에는 은염이 이니라 디지털 프린트로 만드셨던 데….


- 인화지는 종류가 한정되어 있어서 비슷비슷한 느낌이 나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드럼 스캔 받아서 판화지에 프린트를 해봤는데 따뜻한 느낌이 나서 괜찮더라고요. 사실은 꼭 써보고 싶은 종이가 있었는데, 내가 프린트하려는 참에 딱 떨어져버려서 아쉽기는 했지만….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 동강주민, 두메산골 사람들, 민주항쟁, 588번지 등 대상은 바뀌고 있지만 지금까지 일관되게 ‘인간’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전시회를 하셨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으시다면요?


-「전농동 588번지」사진이에요. 그 때 사진을 하면서 그 곳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하다시피 하면서 작업을 했어요. 힘들었지만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사회사의 중요한 곳을 남길 수 있었지요.

 

 

 

전시작품 중 일부



다큐멘터리의 중심은 인본주의

작년 한 해는 평론가들 사이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논쟁이 많았었는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다큐멘터리 사진이란 무엇인가요?


- 학문에서도 무엇이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단정적인 정의가 있나요? 시대가 바뀌면서 언어에 대한 의미도 변화하는 것이 순리겠죠. 아날로그나 디지털의 의미도 변화되고 하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의 중심은 인본주의예요. 사진 찍으러 가서 인간적으로 공감대가 없으면 작업하기도 힘들고 좋은 사진을 얻기도 힘들어요. 낯선 사람이 처음 카메라를 메고 가면 거부감이 들고 하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돌아다니면서 낮에는 그 분들 일도 함께 거들고 저녁에는 막걸리도 마시면서 사람들과 친해져요. 그런 다음에 촬영을 하지요.

살아오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딪힐 때가 가장 힘들지요. 술을 마실 때는 돈이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지만, 집에 누가 아프거나 급한 일이 생겨 해결해야 하는데 돈이 없으면 난감해요. 제 아들도 사진을 전공했는데 막상 사진 전공하고 나와 보니까 취직이 안 되어서 힘들죠. 처음에는 강남에 있는 패션 스튜디오에서 1년 정도 일하다가 워낙 박봉에 힘들어서 그만두고, 지금은 포항에 내려가 의료기기 수입하는 회사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있어요. 요즘엔 자기 벌이가 없으면 장가도 못 가잖아요.

사진이 실용적인 측면이 많아서 그런지, 사진을 한다고 하면 저에게도 가까운 사람들이 이런저런 부탁을 해오는데 거절하기가 곤란했던 적이 많아요.


- 일은 일이니까요. 그 대신 확실히 대가를 요구합니다. 프로필이나 작품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찍어주고 제값을 받아요. 사진을 찍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사실 공짜로 해주면 대충대충 하게 되잖아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그런 게 아닌가요? 상대방이 내 대접을 해주면 나도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해서 찍어줄 수 있으니까. 나의 일에 대한 대가를 받은 만큼 책임을 지고 할 수 있으니 서로를 위해서라도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요즘 작가들이 전시할 수 있는 기회가 참 많아졌습니다. 공모전이나 지원금, 수상제도, 입주작가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서 작업, 전시할 수도 있고요. 저도 얼마 전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두 번째 개인전을 했는데요, 작가에게 있어서 전시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이번 작업도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었는데. 2002년에 강원다큐멘터리 상을 받으면서 작업에 진척을 보였어요. 전시장도 덕원 갤러리 초대전으로 대관료 없이 했고, 마침 문예진흥기금도 받아서 프린트하고 액자도 하고 했지. 사진은 사진이면 그만인데 연지 찍고 곤지 찍고 너무 포장을 근사하게 해서 부담스럽기도 해요.

 

 

전시장 모습


진정한 다큐멘터리는 삶, 그 자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하나 고르신다면 무엇인가요?


- 그야 ‘사랑‘이지요…. 좁게 보면 이웃에 대한 관심과 넓게 보면 인간에 대한 박애주의랄까. 가장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인 존재가 인간이잖아요. 아름답다는 게 어찌 보면 참 허무맹랑한 것 같아요. 마누라가 일산에 사는데 서로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몰라요. 그게 어디 사람 사는 곳입니까? 아무리 힘들게 살아도 정이 있는 곳이 정말 사람답게 사는 곳이 아닌가요?

선생님께서는 가장 큰 즐거움이 무엇인가요?


-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노는 시간이 제일 좋아요. 정말 프로들은 일과 노는 것은 구분해서 잘 하거든요. 저도 그렇게 하려고 해요. 인사동에 친구들과 자주 가는 조그마한 단골집이 있었는데 그 집이 한 번 방송을 타더니 요즘은 사람들이 북적북적 너무 많이 와요. 아무래도 단골집을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인생을 다시 한 번 사신다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세요?


- 지금도 사실 조금만 젊었으면 절에 들어가서 스님이 되고 싶어요. 쉰 넘으면 요즘 절에서 안 받아 준다고 해서 못 가고 있지만….(웃음)

사진하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을….


- 예전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라고 했어요. 이게 경제적인 여건과도 맞아떨어지면 금상첨화인데, 요즘은 그렇게 말을 못하겠어요. 다들 살아야 하고 어차피 사진은 해야 되니까. 대신 즐기면서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진이 대중화될수록 자기 철학이 필요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확실해야 해요.

다른 전시회는 가끔씩 보러 다니세요? 최근에 본 전시 중에서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 인사동에는 친구들이 많아서 이 동네에서 전시회가 있으면 많이 보러 가는데, 강남이나 그런 쪽은 찾아가기가 힘들어서 자주 못 가봤어요. 개인적으로 이갑철 씨 사진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가나아트포럼에서 했던 김영수 씨 사진도 반응이 좋았다고 들었어요.

오늘이 전시 마지막 날인데 전시 끝내고 앞으로의 계획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 작업을 하나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인데, 고민을 하고 있어요.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데…. 이런 게 유행이다, 잘 팔린다고 하면 이것저것 찍어보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실천에 옮기지 않을 뿐이지. 아마 2년 정도 이 작업을 계속할 것 같아요.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덕원 갤러리 근처 어느 전통찻집에 자리를 잡고, 선생님은 매운 계피차를, 나는 단맛의 이슬 차를 주문했다. 서로를 잘 모르는 탓으로 오히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어려운 형편을 말씀해주시면서 “그 때 사진을 시작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어렵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잠깐 흘리셨던 한마디가 인터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 날 선생님께서 낡은 지갑을 털어 사주셨던 차 한잔의 무게가 마치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하게 느껴졌다.


● 글/사진 권연정 (사진가, 포테이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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