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역 > 산체스 막걸리

붉은 글씨로 정갈하게 쓴 '산체스 막걸리'. 얼마 전 안국역 주변에 오픈한 막걸릿집 이야기를 하자면 주인장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조금 치켜세워주자면 자메이카의 밥 말리 같은 안면 굴곡과 눈빛을 지닌 또 조금 놀리자면 베트남 어느 마을에서 흔히 불릴 듯한 '창따이!'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산체스 박', '창따이'로 불린다. 어쨌든 그는 가게를 열기 전까진 영화 <스캔들>, <황진이>, <우.생.순>, <내 깡패 같은 애인> 등에서 미술을 담당하던 영화인이었고, 나 역시 그를 오래전 영화 현장에서 만났으며, 한동안 동가식서가숙하던 사이기도 하다. 수많은 영화의 세트를 짓고 허문 그답게 산체스의 인테리어에는 곳곳에 그의 재능이 녹아들었다. 전위적인 그림도 걸려 있고, 사막의 흙바람 좀 쐬어봤을 것 같은 양탄자도 걸려 있다. 얼마 전엔 늦은 시간 춤출 사람들 몸도 흔들라고 사이키 조명도 사들였다. 하지만 허름한 막걸릿집의 정서는 결코 버리지 않았다. 더구나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마막걸리와 주인장이 수줍게 내놓은 카르보나라 떡볶이, 여자친구에게 권할 만한 향긋한 유자막걸리, 무엇보다 충청도의 어느 산속 도사 같은 박 노인에게 전수받아 그 맛을 계승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산체스 보쌈' 등의 메뉴도 정갈하고 정겹다. 이제 나는 안국역을 빠져나와 인사동으로도 삼청동으로도 북촌으로도 빠지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스타벅스 쪽 골목으로 발길 돌려 산체스의 낭만으로 향하는 지하 계단을 내려간다. _김태환(포토그래퍼)

- 대낮부터 취하게 만드는 산체스 주인장과 그 이름도 정겨운 대마막걸리

'인사동 정보 > 인사동 맛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찰음식 (산촌)  (0) 2013.03.15
하노이의 아침 (베트남 전문음식점)  (0) 2013.03.14
섬진강(재첩국)  (0) 2013.03.14
노마드 (병어찜)  (0) 2013.03.14
봉추찜닭과 도깨비찜닭  (0) 2013.03.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