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미술관 소장품 심의에 참여한 일이 있다. 대개는 전형적인 회화나 조각 그리고 사진과 같이 뚜렷한 실물을 견지하고 있어서 계약도 관리도 용이한 작품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의 작품들이 문제였다. 이를테면 설치와 퍼포먼스, 영상과 넷아트처럼 실물의 경계가 상대적으로 모호한 작품의 경우에 어디서 어디까지 실물로 볼 건지, 그리고 여기서 실물개념은 다른 작업들에 통용되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님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규정이 필요한지, 와 같은 문제들을 논의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알다시피 작품소장은 미술관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이고, 이때 소장품은 동시대성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미술현장은 현장대로 이런 실물의 경계가 모호한 작업이며 장르규정이 애매한 작업들, 나아가 아예 탈장르를 지향하고 있어서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개념규정이 필요한 작업들이 동시대성을 반영하고 있어서 미술관으로서도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작업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정적이고 결정적인 존재방식을 가지고 있는 작업들의 경우에는 그나마 문제가 덜한 편이다. 이를테면 설치와 퍼포먼스 그리고 영상과 같은 작업의 경우에 필요하다면 작품 자체를 소장할 수가 있고, 실물 소장이 여의치가 않다면 기록물 즉 아카이브를 소장할 수가 있다. 이 경우에도 개별작품에 딸린 상세 매뉴얼과 함께 향후 작가의 지속적인 사후 관리에 동의한다는 제반 조건이 부수되어져야 한다. 알다시피 미술관은 소장품 관리도 중요하지만, 이를 이용한 전시도 핵심기능 중 하나이기 때문에 원활한 전시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그 존재방식이 가변적이고 비결정적인 경우의 작품들이다. 이를테면 설치와 퍼포먼스 중에서도 상황논리와 장소 특정성이 강해 작업의 양상이 매번 달라지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경우에도 그렇게 제시되거나 행해진 모든 결과를 낱낱의 시리즈로 묶으면 될 것 같지만, 아예 현재진행형의 프로세스 자체가 콘셉트인 경우라면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대두

그리고 영상작업의 경우에는 단연 작품의 복제 가능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복제를 가능하게 해주는, 그리고 나아가 아예 잠금장치를 푸는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단순한 잠금장치만이 해법이 될 수가 없게 된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단종된 소재도 문제다. 작품의 생명연장과 관련된 문제로서 부품을 갈아 끼워야 할 때, 그래서 정작 똑같은 부품을 찾을 수가 없을 때 다른 부품으로 갈아 끼워야 할지, 그리고 이렇게 갈아 끼워진 작품을 동일한 작품으로 볼 수 있는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작업들, 그리고 아예 인터넷 상으로만 존재하는 넷아트의 경우일 것이다. 누구든 인터넷에서 내려 받기를 통해 내려 받은 이미지를 자의적이고 임의적으로 재배열하고 재편집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그리고 그렇게 자기화할 수 있는 작업들의 경우에는 복제 자체의 개념적용은 물론이거니와 아예 원본과 사본과의 경계가 무의미해진다. 이런 제반 문제들은 앞으로 더 가속될 것이고, 그 때문에라도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소장품 개념을 재정의해야 하고, 여기에 아카이브를 강화해 보충하는, 그리고 그렇게 소장품 개념과 아카이브 개념이 상호 보완하는 형식논리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 져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기왕의 소유권 개념에 더해 저작권 개념에 대한 논의도 부수되어져야 한다.


- 고충환(1961- ) ‘재현의 재현전(성곡미술관)’, ‘비평의 쟁점전(포스코미술관)’, ‘조각의 허물 혹은 껍질전(모란미술관)’, ‘드로잉조각, 공중누각전(소마미술관)’을 기획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무서운 깊이와 아름다운 표면』(2006)과 공저로『비평으로 본 한국미술』(200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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