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어우러진 소통의 명절”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에게 듣는 추석의 의미
추수의 시작을 의미…
그해 첫 농산물을 사람이 먹기 전
천지신명과 조상님들께 바치는 날
휴일이 따로 없던 농경사회에서
잠시나마 쉴 수 있는 휴일 역할도

 

 

 

추석은 어떤 명절일까. 추석의 다른 명칭은 한가위, 가배일(嘉俳日), 중추절(仲秋節) 등이고 대표적 음식이 송편이란 것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이다. 또 여자들이 편을 나눠 길쌈을 했던 데서 유래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거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만으로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표현하기엔 무엇인가 부족하지 않은가. 귀성길이 힘들어도 고향을 찾아 나서는 이유를 설명하기엔 무엇인가 모자라지 않은가. 그래서 추석의 의미를 제대로 듣기 위해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을 만났다.
 
 “현대인은 철이 없습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의 첫마디였다. ‘현대인이 철이 없다니? 요즘 사람들은 어른이 아니라는 뜻인가?’ 이런 의문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랬다.

 “어르신들은 보통 ‘어른이 됐다’는 뜻으로 ‘철 들었다’란 말을 쓰지요. 이때 ‘철’이란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때, 즉 농사 시기에 따른 계절의 변화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예전엔 그 철을 알아야 어른 대접을 했죠. 그런데 과연 현대인들은 그런 계절의 변화를 알까요? 그래서 철 없는, 철 모르는 현대인이란 표현을 쓴 겁니다.”

 그는 현대인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보통의 직장인들을 예로 들었다. 주5일 근무하면 주말은 쉬고, 여름이면 휴가를 가는 게 이들의 대체적인 생활 흐름이다. 하지만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휴일이 따로 없었다. 농사란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일.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 휴일이 바로 명절이었다. 봄농사가 끝나고 맞는 휴일이 5월 단오이고, 여름농사 끝내고 맞는 휴일이 백중이나 추석이었다. 이를테면 명절이 휴일 역할을 한 것이다.

 “추석은 첫 수확물이 나오는 명절입니다. 곧 추수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수확을 다 끝낸 다음에 맞는 서양의 추수감사제와는 다르죠. 우리의 추석은 그해 처음 생산한 농산물을 사람이 먹기에 앞서 천지신명과 조상에게 제물로 바치는 날입니다.”

 그는 엄밀하게 추석은 ‘첫 수확감사제’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떡 등 음식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며 조상의 음덕에 감사드리는 명절이란다. 그리고 추석이 지나면 본격적인 가을걷이를 시작했다. ‘반보기’ 풍습은 그런 연유에서 비롯됐다. 친정식구와 시집간 딸이 양편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데, 온전히 보지 못하고 반만 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추석이 지나면 본격적인 수확철이니 추석이라고 오래 볼 수도, 오래 놀 수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추석은 쉬는 날이니 음식이 빠질 수 없다. 햇곡식과 햇과일 등 1년 가운데 먹거리가 가장 풍성한 때가 바로 추석이었다. 음식뿐만이 아니었다. 새옷에 대한 기대로 부푼 때도 역시 추석이었다. 설빔과 단오빔처럼 추석빔도 큰 즐거움이었다. 추석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라 추석빔은 추동복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1년 내내 새옷을 입을 수 있지만 그때는 추석 같은 명절이 아니고서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풍성한 음식과 새옷. 거기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곡식이 무르익은 들판.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이 나왔으리라.

 추석엔 풍년농사를 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동물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소놀음굿과 거북놀이 같은 민속놀이가 그것. 소놀음굿은 농사꾼에게 최고 일꾼인 소를 위로하는 놀이. 거북놀이는 비를 관장하는 용왕의 비서실장격인 거북에게 순조롭게 비를 내려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는 놀이였다. 그리고 모두가 신명나게 어우러진 축제가 이어졌다. 놀이꾼과 구경꾼의 구분이 없었다. 그렇게 한바탕 축제로 농사의 피로를 풀고 힘을 북돋웠다.

 “추석 때 오랜만에 친지와 친구, 주민들이 고향에 다 모이니 얼마나 즐겁겠어요.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만 남은 거죠. 놀이판, 소리판 등이 벌어지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추석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어린 시절 그 역시 그랬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당시 추석은 귀한 쌀밥에다 떡 같은 명절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날이었다. 그는 부친이 형제 중에 셋째여서 큰집에 가서 명절을 지냈다. 그래서 친지들과 몇날 며칠을 어울리며 지냈던 추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요즘 사람들에겐 추석이 고작 쉬는 날 정도의 의미에 그치는 것에 더해 오히려 부모를 슬프게 하는 것도 같아 무척이나 아쉽단다. 언젠가 그가 시골에서 겪은 일이었다. 추석날 오후에 할머니가 혼자서 빨래하러 가더란다. 차가 밀린다고 자녀들이 차례를 지내자마자 후다닥 가버려 손자가 썼던 수건 등을 씻기 위해 빨래터로 향했던 것. 그런데 그 모습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었단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할머니가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며 “추석이 참 무정한 날이다”라고 한탄을 할 땐 정말 슬퍼지기까지 하더란다.

 “요즘 들어 추석의 의미가 크게 퇴색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세월이 지나면 의미가 변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추석에 왜 차례를 지내는지, 왜 조상의 음덕에 감사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가족의 소중함과 정을 다지는 계기로서의 추석. 그것이 우리가 계승해야 할 추석의 가치라고 믿습니다.”
 추석은 어찌보면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어우러진 소통의 명절이다. 소통은 이해를 낳고, 이해는 긍정을 낳는다. 오랜만에 만나는 부모와 친지들과 어우러지고, 농촌을 이해하고, 농업을 긍정하는 날로서의 명절이 오늘날 추석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그는 추석 때 5일 동안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추석을 주제로 한 민속축제를 열 계획이다. 축제 땐 민속놀이와 음식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채비도 갖췄다. 철없는 현대인(?)을 철들게 하려고 말이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1962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대 민속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학예연구사를 거쳐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을 지냈다. 2011년부터는 국립민속박물관장직을 맡고 있다. 서울시와 경북도의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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