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사진비평상 수상작가

김현진_박동균 2

2023_0818 2023_0830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23_0818_금요일_05:00pm

후원 / 와이아트 갤러리_머그출판사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요일_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와이아트 갤러리

YART GALLERY

서울 중구 퇴계로27길 28 한영빌딩 B1 3호

Tel. +82.(0)2.579.6881

www.yartgallery.krblog.naver.com/gu5658@yart_gallery

 

 

보이지 않는 행위와 보이는 흔적 사이에서 ● 김현진은 사진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작업하고 있다. 따라서 사진이 그의 작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에, 이를 최근 전시를 통해 보여준 작품과 그 구성을 살펴보면서 작가의 의도를 따라가 보도록 하겠다. 「Derailed being」연작은 얼굴이 가려진 가면을 쓰고 있는 인물, 무표정한 얼굴로 등장하는 작가의 모습이 나타난다. 또한 자기 신체를 사용하여 일반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불편하고 기이한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이를 사진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작가의 몸짓으로 만들어 낸 여러 자세를 모아놓은 이미지 위로는 단이 놓여 있다. 그 단 뒤로는 꺼져버린 횃불의 흔적이 설치되어 있다. 이외에도 글로리아 카터의 글과 날카로운 칼처럼 보이는 사물을 담은 사진도 전시되고 있다. 이와 같은 설치는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는 공간과 같은 구성을 보여준다. 각각의 이미지와 오브제들은 서로에게 연결되는 다층적인 관계망을 만들어 내는데, 논리적이고 유기적이기보다는 모호하고 파편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명확한 형상이 드러나는 이미지와 텍스트로 제시되지만,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공간에서 관객은 능동적인 태도로 이들 사이를 움직이며 그 내부를 파고들어 자기 경험과 감각을 통해 새로운 연결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만 한다. 이와 같은 전시 구성의 연극적인 요소는 하나의 의례적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의례는 사회적, 개인적 행위를 모두 포함하여 규격화된 의식을 위한 행동이다. 이렇게 이미 주어진 명확한 규칙에 따라 행동이 규제되는 의례는 우리 주변에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런 시공간은 보이지 않는 경계를 가지고 있으며, 참여자의 행위와 함께 의례를 치르기 위한 물질적 수단이 필수 요소이다. 그러나 작가는 의례를 억압된 시공간이 아닌 공동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관계 맺음을 위한 소통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그는 작업에서 이미 주어진 의미의 범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기 위한 이미지를 찾아내어 새롭게 만들고자 한다. 그렇기에 작가는 자신이 감각을 경험하는 가장 근원적 도구인 자기 신체에서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김현진_죽음의 장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_16×16cm_2022
김현진_배신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_16×16cm_2022
김현진_젊음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_16×16cm_2022

좀 더 그의 작업을 살펴보자. 이후의 작업인 13권의 책연작은 이전 전시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행위와 언어적 표현과 이들의 관계 맺기에 대해 더욱 관심을 보인다. 여전히 등장하는 신체는 돋보기를 통해 보아야만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작은 이미지로 출력되어 벽과 바닥에 기호같이 배치된다. 벽에는 무제의 평면작업들이 배치되는데, 이는 작가의 의미 없는 자유로운 행위로 감각적으로 표현된 추상적인 표면으로 나타나며, 체인으로 장식되거나 묶여 있기도 하다. 이들은 구상과 추상, 크고 작음과 같이 서로 대비되는 관계로 서로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모호한 관계성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드러나는 작가의 관심은 신체의 움직임과 이를 통해 나타난 흔적과 관계 맺음이다. 이들은 명확한 물성을 가진 형태와 경계로 나타나지만, 무엇인가를 뚜렷하게 규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느슨하고 흐릿하게 만드는 관계성을 통해 자유로움을 획득하고자 하는 행위로 보인다. 이는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설명 불가능한 것'을 이미지로 표현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이런 작업은 가시적인 것을 통해 비언어적이고 비가시적인 것들을 드러내는 일이 된다. 한편으로 이것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인식하고 이를 타인과 소통하여 공감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의 틀이 가진 편리함 이면에서 감추어진 오류와 소외에 대한 이야기이다. 언어와 같은 명확한 규칙을 가진 일반론의 틀은 다수의 힘을 바탕으로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지만, 그것을 기준으로 구분을 짓는 한계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범주에서 벗어난 것들은 이상한 것으로 간주하여 배척당하고 이에 따라 깊은 곳에 가라앉거나 그늘 뒤에 숨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의도하는 자신이 감각하고 느끼는 설명 불가능한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이들을 전면에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어떤 완결된 결말 같은 고정된 형태로 멈추지 않게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김현진_첫번째 세계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20×220cm_2023
김현진_0"0"0"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2×29.7cm×3_2021

이는 가장 최근 작업인 non-world, no-word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이 작품은 13권의 책연작에서 보여준 무제의 이미지를 데이터화해서 픽셀 조각들을 추출해 그 위에 덮음으로 어떤 형태의 흔적만 흐릿하게 남은 이미지로 만든다. 이러한 작업은 서로의 우위를 가르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누구든 서로를 덮어씌울 수 있는 수평적 관계에 기인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통해 나타나는 이미지를 또 다른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충만한 완결성을 상실한 것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그의 작업은 하나의 개념적 도구로서 어떤 관점을 끌어낼 때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과 감각을 어떻게 계속해서 확장해 나갈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살펴본 작업과 전시는 무한히 가변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대상의 한계를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신체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다층적으로 파생되는 이미지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각에 집중하는 작업으로 귀결된다. 그렇지만 이는 하나의 것이 전환과 전이의 과정을 거쳐 완결되어 보이는 형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사이의 빈 곳을 통해 잠재된 감각들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그는 자신의 행위가 의도치 않게 발생시키는 의미조차도 무엇인가를 억압하는 고정된 경계로 나타날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에게 카메라가 가진 온전히 자신의 조작으로 통제하고 그 형상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기능은 이미지에 특정한 의미를 담지 않을 자유를 획득하게 만드는 중립화된 도구가 된다. 이렇게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사진은 어떤 기준이나 표준이 작동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며, 이를 통해 나타나는 이미지는 아무리 구체적인 형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어떤 경험에 기반한 상황들이 보여주는 추상적인 감각으로 이루어진 일시적 잔상과 같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김현진의 작업은 자신이 경험하는 인식의 과정과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이 감각하는 것을 바탕으로 어떤 환경 안에서 이를 은신과 표출을 통해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 태도는 온전한 하나에서 분리되고 다른 어떤 것으로 전이되며, 이러한 과정이 다른 무엇으로 통합하고 이내 다시 분리되는 비선형적인 순환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작가의 의도는 이러한 순환의 과정을 통해 항상 동일한 결과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변환과 전환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와 삭제, 덧붙임과 같은 다양한 상황을 수용함으로써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움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는 경계를 무너뜨리거나 지우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를 관통하여 경계를 통과하여 다른 무엇과 연결하는 행위로 발생한다. 이와 같은 작업 방식은 사진을 어떤 감각적인 것을 표현하여 가시적인 의미를 생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으로 생산된 이미지의 명확한 형태를 통해 오히려 다층적으로 확장된 비가시적인 것들의 흔적을 쫓기 위한 감각적 단서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따라서 그는 이미지가 구체적 언어로 인식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조차도 계속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환시키는 행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작가는 의도적으로 모호함을 초래하여 명확한 언어는 불명확해지고 다시 사진이라는 명백한 층위에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관계를 재설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의미가 완벽하게 지워지고 새로운 것이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작가는 사진과 다른 매체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기존의 형상에 무엇인가를 덮어씌우거나 이미지와 이미지를 새롭게 연결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작품의 이면 혹은 주변에 잠재된 것을 동시에 불러일으켜 그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침투하게 만드는 상황을 연출한다. 결국 지금 그에게는 결과로써의 사진보다는 자신이 만드는 이미지들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도구로서의 사진이 중요하다. 이것이 앞으로 작업을 해나가면서 그가 마주하는 어떤 조건과 경험에 대한 응답으로 사진을 사용하면서 이를 무엇으로도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충만한 자신만의 시공간으로 어떻게 변모시켜 나가게 될지 기대되는 이유이다. 신승오

 

박동균_Helianthu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60cm_2022
박동균_Facial Recognition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45cm_2022

박동균의 제네릭 이미지, 예증과 오류 사이에서 이 글은 박동균 사진의 조형적 특징이나 그 기술적 완성도에 관해 논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박동균 "작업의 기저"를 구성하고 그가 "이미지를 생산하는 목적을 함축한" (작가 노트, 1. "내 작업의 기저에 자리 잡은 제네릭 이미지라는 개념은 제네릭 드러그의 정의와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 을 참조해 만들어진 일종의 기술적 용어로, 내가 이미지를 생산하는 목적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제네릭 이미지(Generic Images)'라는 개념의 실현 가능성과 유효성에 관해 논의할 것이다. 제네릭 이미지는 이미지의 한 형태 유형이 아닌, 이미지를 제작하고 이를 유통하는 작업 안팎의 '작동 메커니즘'이다. '제네릭'이란 수식어는 박동균이 촬영을 위한 대상을 선택하고 제작, 유통하는 이미지 순환 체계 전반을 지탱하는 작용원리를 설명한다. 2017년 처음 구동을 시작해 이미지 실례를 생산하기 시작한 이 메커니즘은 그의 말처럼 아직 완전하지 않다.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개념과 실험을 통한 예증의 과정이 혼재해 있다. 박동균과 필자는 글을 집필하기 전 그가 제네릭 이미지를 두고 탐색하는 지점과 필자가 감상자의 입장에서 발견한 작동 상의 오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결코 단숨에 완전해질 수 없는, 크고 작은 오차의 실례를 통해 보완이 필요한 개념임을 다시금 파악하는 과정이었다. 계속해서 예증과 오류의 사이를 오갈 이 개념이 작업의 동인이자 과정의 견인체로서 얼마나 견고하고 효과적인 제반 장치가 될 수 있는지 검토하는 작업은 꾸준히 필요하다.

 

박동균_Basic surgical instrument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45cm_2022

'제네릭'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동시대 사진환경 사진의 디지털화와 통신 기술의 발달은 사진 이미지를 정적인 것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변형시켰다. 그리고 사진의 움직임에 대한 인식은 매체를 다루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Duncan Woodbridge에 따르면, 동시대 사진에서 "이미지의 송출과 유통은 기본조건이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어떤 이미지든 그것을 가지고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건 '공유' 버튼을 누르는 일이다. 이 버튼은 이미지가 생성되는 즉시 세계로 전송되어야 함을 직간접적으로 피력한다."(Woodbridge D. (2021) From Magical to Experimental Thinking, OVER Journal (2), pp. 16-23.) 이처럼 동시대에 사진은 촬영 즉시 유통을 염두에 두는 환경에 처했다. 이미지는 더 이상 특정 실체를 지시하는 '고정된' 재현체가 아니라 촬영과 무관한 맥락까지 '뻗어나갈' 채비에 주력하는 잠재적인 트랜스포머다. 사진을 다루는 현대 작가들 또한 이와 같은 사진의 이동성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작업의 전략을 세우곤 한다. 온라인상에 속도감 있게 표류하는 이미지의 궤도에 편승하여 다분히 폭발적인 의미의 증식을 기대한다. Post-Photography를 저술한 Robert Shore는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하며 사진의 이동성이 예술사진의 전략과 형태를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으로 변형시켜 왔는지를 예증한다.(Shore R. (2014) Post-Photography, The Artist with a Camera, London: Laurence King Publishing.) Shore에 따르면, "공유(Sharing)"는 디지털 시대에 키워드이고, "도용(appropriation)"은 사진 이미지 생산의 주된 전략이다. 이 시대에 사진 제작은 "창의적이고 변화무쌍한 차용행위".(위의 책, p7.) Shore의 동시대 사진에 대한 진단은 박동균이 제네릭 이미지를 통해 실천하고자 하는 예술사진의 범용, 호환과 맞닿아 있다. 박동균의 제네릭 이미지는 제작 단계부터 유통과 공유, 연결을 필연적인 단계로 염두에 둔 이미지다. 이미지가 가능한 한 많은 이들과 접합해 의미작용을 하고, 그렇게 생겨난 개인들의 사유 회로가 모여 포괄적인 정보와 관점을 담지한 이미지로 가공되는 것을 지향한다. 개별 사진은 특정 실체의 형상을 재현한 이미지임에도 아직 의미를 얻지 못한 채 부유하는 음절인 동시에, 무엇이든 발화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단위로 기능한다. 즉 박동균을 비롯한 익명의 누군가가 일련의 관찰, 유추, 탐색을 통해 직조한 내러티브의 재료로 쓰이길 기다리는 로우 데이터에 가깝다. 사진들은 해당 연작 안에서 한 가지 주제에 묶인 고정된 의미체가 아니라 연작을 넘나들며 다른 의미를 발현할 수 있는 가변적인 의미체다. 그것은 인터넷 하이퍼링크 활성화를 통해 전혀 다른 맥락으로 차용, 변용, 재맥락화하며 온라인상을 유영하는 현시대 사진 이미지의 용례와 똑 닮았다. 처음에는 특정한 촬영맥락 안에서 제작되었지만, 적극적으로 유통 보급되는 동안 작가의 말대로 '특수한 상태나 의미'가 희석되어 마치 '텅 빈 유닛'처럼 누구에게나 소구 가능한 범용의 이미지가 된다. 이처럼 제네릭 드러그에서 따온 '제네릭'한 이미지의 작동 메커니즘은 현시대 사진에 부가된 정의나 용례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박동균의 제네릭 이미지는 아직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사진의 현 상황을 가장 직관적으로 적용한 예술사진의 사례로서 설득력을 갖는다.

 

박동균_Axi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60cm_2021

예술사진의 범용화, 이를 위해 고민해야 할 부분 한편 이 '텅 빈 유닛'을 재고해 보면, 박동균의 사진은 불특정다수와 상응, 호환을 지향하지만 결코 무엇이든 수렴할 수 있고 어느 쪽으로든 전이할 수 있는, 투명하게 비어있는 유닛은 아니다. 그가 의도하는 제네릭 이미지는 사전적 의미를 함축한 일반 지표가 아닌, 주관적인 상호작용을 지향하는 이미지다. 특정 상황에 관한 작가의 해석이 담긴 이미지가 그 골자를 원자의 핵처럼 품고 그와 접점을 이룰 수 있는 누군가의 핵을 탐색하는 과정이 박동균 이미지의 유통과정이다. 그 이미지는 표면상으론 이미 기원과는 멀어진 평평하고 매끈한 형태를 띠지만 결코 제작의 맥락과 촬영자의 심상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않고 이면의 두께를 담지한다. 오히려 그 두께는 유통과 상응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된다. 따라서 '텅 빈'은 실제로 비어있기보다는, 서로 상이하되 호환 가능한 파편들이 한 유닛으로 모여 서로의 특질이 상쇄된, 그래서 투명해 보이는 비움이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특수한 유닛의 모음이 박동균의 제네릭 이미지다. "제네릭 이미지는 다큐멘터리 사진과 같은 이미지의 객관성을 상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특수한 상태의 사물 또는 상황을 재현'함으로써 이미지의 '보급을 넓히고' 많은 감상자에게 '동일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설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작가 노트, 1. ''는 필자 강조.) 이와 같은 작가의 언급에서 '특수한' 상태를 재현한 이미지가 '가능한 한 많은 수의' 감상자에게 '동일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이미지 범용의 특수한 상관관계를 좀 더 세밀하게 검토하고 전략적으로 구조화할 필요가 있다. 주관적이고 특수한 상태가 범용의 조건이 되는 것은 결코 통상적이지 않다. 또한, 제네릭 이미지의 재료가 되는 이미지 유닛의 창작 주체에 대한 물음도 제기할 수 있다. 박동균이 제작하여 자신의 사유와 감정이 삽입된 이미지가 범용화되는 것은 결국 일대다의 이미지 순환구조인데, 이미지의 기원이 '작가(혹은 박동균의 표현대로라면 이미지 프로듀서)'라는 1인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느냐는 점이다. 전문성을 지닌 특정인의 보급을 통해 다수에게 동일한 효과를 내는 제네릭 드러그 시스템이 보편적인 시각언어로서 현시대 사진 이미지의 순환 체계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 현재 온라인상에 표류하며 다양한 경로로 의미를 덧입는 사진들은 그 제작자 또한 익명의 다수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박동균이 목표한 '제네릭 이미지의 구현'은 개인의 경험과 배경지식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사유 회로의 복잡한 증축의 과정이다. 상이한 배경의 개인과 개인이 만나 개별 이미지에 반응하는 다각적인 경험을 포괄할수록 그 구조는 더욱 몸을 부풀리고 유연해진다. 그렇다면 이 구현은 박동균 표 제네릭 이미지의 유닛이 그것과 상호 호환할 수 있는 무수한 대상을 찾아 헤매기보다 창작 단계부터 다른 이들의 개입이 이뤄지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더불어 작가의 사유와 감각을 익명의 대상에게 최대한 효과적으로 피력하고 호환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작품 이미지의 시각적 형태뿐만 아니라 작품의 유통 방식, 즉 전시나 책이라는 서로 다른 경로로 소통하는 방법론적인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박동균_Sekonic Flash Master L-358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40cm_2016

제네릭 이미지의 구현을 위해 지금 필요한 일 제네릭 이미지란 개념은 박동균의 사진 작업을 구체화하는 메커니즘이자 작업 자체다. 어떤 주제를 화두로 삼든 사진의 개별 사례들이 이 작동구조를 예증하는 실례들이다. 위에 언급한 여러 난제를 앞에 두고 박동균이 지금 해야 할 과제를 떠올린다면 그건 결코 '제너릭 이미지'에 대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응시하고 앉아 답을 찾는 일은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지금 시점에 그간 제작한 사진을 하나로 엮어 '제네릭 이미지'라는 하나의 거대한 상위개념을 구체화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또한, 개별 사진과 연작이 작업의 작동구조이자 상위개념인 대상을 직접적인 주제로 삼을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박동균에게 지금 필요한 작업은 이 개념을 잠시 한편에 두고, 그간 해왔던 것처럼 자신이 관심이 있는 사물을 이미지로 번역하며 개별 사례들을 증식해 나가는 일이다. 실례의 축척 가운데 예증과 오류가 지속되며 제네릭 이미지의 품과 구조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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