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마주친 오래된 창고 벽이 흐르는 세월에 의해 화판으로 변했다.

녹슨 양철판이나 퇴색한 페인트 자국, 그리고 시멘트벽의 균열까지 그림 아닌 것이 없었다.

세월이란 무명의 작가가 남긴 훌륭한 작품이었다.

 

지난 1일 정동지 따라 모처럼 장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장항선 따라 장터 문화를 탐방하는 프로젝트의 마지막 코스였다.

 

일 년이 넘도록 장항선 열차길 따라 혼자 돌아다녔는데, 무거운 가방 둘러메고 찾아다니느라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촬영 안 가는 날은 컴퓨터 앞에 달라붙어 얼굴 보기도 힘든데, 하필 무더운 여름에 책 내느라 혼자 바쁘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처럼, 이번에 나오는 책은 꼭 베스트셀러가 될 것으로 믿는다.

 

그 힘든 사정을 훤히 알면서도 ‘사서 고생한다’거나

‘장항선 철도여행이면 철도청에서 후원하냐?’는 등 염장 지르는 소리만 했다.

 

장항지역에 누락된 곳이 있어 간다기에 처음으로 따라나섰는데, 모처럼 콧바람 씌는 봄나들이였다.

 

그러나 전 날 티스토리 블로그 ‘인사동 사람들‘ 에 올렸다가 한 시간 만에 삭제당한

‘가깝고도 먼 당신(性)’이란 글이 도무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네이브 블로그 ‘인사동 이야기’도 올리고 싶지만, 원고를 돌려줄 수 없단다.

 

텍스트를 남기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다시 쓸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기저기 자료 찾느라 공을 꽤 들인 글이라, 같은 일을 반복 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더구나 고객을 흑사리 쭉지로 아는 카카오의 갑질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장항 변두리에 있는 어느 한적한 창고 옆에 차를 세워두고, 정동지 혼자 촬영을 나섰다.

같이 가면 이것저것 찍어 올리는 습성으로, 책도 나오기 전에 김 뺄 수야 없지 않은가?

 

정동지가 돌아올 때까지 차에 앉아 있으니, 카카오 갑질이 생각나 견딜 수가 없었다.

다른 곳에 신경쓰려고 차에서 내려 창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미지 사냥에 나선 것이다.

 

세월에 의해 퇴화된 벽의 흔적들은 한 폭의 추상화를 방불케 했다.

세월이란 이름의 작가보다 더 진실한 작가가 어디있겠는가?

벽화에 빠져 잠시나마 잊었지만, 카카오의 갑질은 기어이 고치고 말 것이다.

 

소명서와 함께 이의제기를 했는데, 수용되지 못한다면 법적대응할 생각이다.

갑 질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들이 망하는 날까지 저주할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2023.5.6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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