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직선 Swaying Straight Line

홍세진/ HONGSEJIN / 洪世辰 / painting

2023_0706 2023_0730 / 월요일 휴관

홍세진_이어가다 움푹_캔버스에 유채_194×260cm_2023

홍세진 인스타그램_@sejinnhong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2023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

선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주최,주관,후원/ 서울시립미술관

그래픽 디자인 / 양도연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

SEOUL INNOVATION PARK_SeMA Storage

서울 은평구 통일로 684 1~3 전시실

Tel. +82.(0)2.2124.8800

sema.seoul.go.kr

 

일렁이는 직선: 좁고 긴 틈을 지나, 아이러니 1. 홍세진의 '일렁이는 직선'은 명징한 파동이자 아이러니이다. 홍세진은 자신의 청각적 공백을 통해 감각과 인식의 어긋남을 확대함으로써 좁고 긴 틈(slit)을 포착한다. 그리고 이 틈을 통과하는 물질세계를 파동의 상태로 시각화한다. 이 틈은 뒤섞인 앎과 존재에 대한 틈이자 일련의 이항대립으로 구성된 단단한 세계에 대한 어긋남이다. 홍세진은 자신의 손상된 청신경 세포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전기적 장치인 인공와우를 착용한다. 그는 왼쪽의 인공와우, 오른쪽 귀의 보청기와 연합하며 선재적 상태들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 감각과 인식의 유비들을 표현한다. 홍세진은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사이보그 선언과 연계되어 기술적으로 보철되는 포스트휴먼적 주체로 소개되어 왔다. 1) 그리고 일렁이는 직선에서 홍세진은 감각, , 지식, 존재가 뒤섞인 가운데 이항대립을 통한 인식으로도 그리고 유비적 추론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규정적인 의도의 상태들에 대한 재사유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이는 홍세진이 듣는 소리는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인식론적 질문, 그리고 실제 소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홍세진_매끄러운 네모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23

우리는 감각과 인식을 통해 구성된 지식의 본성에 대한 질문, 즉 인식론적 질문만으로 존재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이를테면 '소리를 듣다.'를 통해 '소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그리고 도달한 소리란 무엇인가? 홍세진은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을 보장하는 감각적 경험의 결핍과 존재론을 함축할 수 있는 인식론에 대한 핍진함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적 견지를 더하여 소리를 향해 간다. 물리학적 정의로 소리란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전달되는 진동, 즉 파동이다. 많은 경우 소리에 대한 시각화 또한 파동으로 그려진다. 파동을 표명하기 위해서는 직선이 필요한데, 바로 좌표계의 축들이다. 두 개의 직선은 X 축과 Y 축으로 평면을 이루고 Z축을 더한 세 개의 직선은 공간 좌표계를 소환한다. 그리고 각각의 직선은 파장과 진폭, 방향으로 규정된 축들로 파동의 성질과 상태를 나타낸다. 홍세진의 평면 작업을 들여다보면 의도적으로 읽히는 수직 수평의 직선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몸에서 온전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소리에 대한 앎을 추동하기 위해, 그리고 특별한 소리 경험을 통해 통렬히 포착한 감각과 인식의 틈을 빛의 세계에서 표현하기 위해 그에게 소리를 명징한 파동으로 만들어 줄 직선들을 소환한다. 그에게 직선은 보편적인 감각 경험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보편성이 담보된 지시체들의 기입이다. 따라서 그의 평면에 드러나는 그대로 '일렁이는 직선''직선(좌표계) 위 일렁이는 파동(소리)'으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홍세진_무제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23

홍세진은 파동의 지시체로서 직선을 자신이 포착한 물질세계에 기입함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전체에 관계되는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한다. 이제 질문이 또 생겨난다. 우주나 존재의 전체에 관계되는 보편성은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인가? 이항대립적 인식, 유비적 추론, 물리학적 견지 모두를 통해서도 해결될 수 없었던 규정적인 의도의 상태들에 대한 재사유의 필요성에 홍세진은 '아이러니'를 그 방법론으로 답한다. 홍세진이 포착한 좁고 긴 틈에는 모순된 개념의 전경화로서 나타난 비-자기-동일성(non-self-identity) 2), 즉 아이러니가 있다. 아이러니는 감각과 인식과 존재가 얽혀있기에 추론할 수 없는 세상의 일부를 절단하여 읽어내는 것으로, 다시 말해 그 무엇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의 일부만을 절단하여 바라봄에서 발견된다. 일렁이는 직선은 그 이름에서부터 아이러니이다. 홍세진은 아이러니를 통해 소리와 빛, 자연과 인공, 물질과 비물질, 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간의 유비를 지우며 이원론에 도전함과 동시에 감각-인식-존재에 대한 개인 간의 차이와 보편성을 반추하게 한다.

 

홍세진_덩그러니 반원형_캔버스에 유채_62×62cm_2023

2. 일렁이는 직선은 자연 속 유기체들과 공장에 위치한 사물들이 뒤섞인 풍경으로 주도된다. 이는 홍세진이 인공와우를 통해 자연의 소리와 기계의 소리를 겹쳐 듣는 경험과 연계된다. 인공와우는 하루 2회 충전된 배터리의 교체를 필요로 하며, 착용자는 잠을 청하기 위해 인공와우를 탈착해야 한다. 인공와우의 전력 상태와 착용자의 상황에 따라 불연속적인 홍세진의 청감각은 기능을 다하고 멈춰있는 주유소와 기계 장치를 회화 안으로 포섭한다. 홍세진은 간헐적이고 산발적인 감각을 조각모음 하여 실제 세계로 포착한 풍경을 절단하여 읽는다. 이때 그 세계는 홍세진에 의해 도형의 형태로 변환되며, 홍세진은 물감을 통해 대상을 흐리게 하거나, 덮고 긁는 방식으로 회화 표면의 질감을 드러낸다. 그가 자신의 세계로 포섭한 대상들은 표면의 질감, 흐릿함, 투명성, 긁힘을 통해 중첩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과정은 평면으로부터 입체 공간의 조형물로 확장되며 대상의 반영보다 차이의 중첩으로 표현된다. 한편, 전시 공간 한편에서는 익숙하지 않게 편집된 정체 모를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소리는 홍세진이 2019년 처음 들었던 새소리를 인위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홍세진은 처음 인공와우를 착용했을 때 시끄러운 공기 소리, 새소리와 조우했다. 다른 이들은 듣지 못하는 공기 소리에 혼란스러워하던 그는 시간에 의탁하며 감각이 인식으로 향하는 길을 조율해왔다. 홍세진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처음 2채널에서 48채널까지 늘어난 채널로 소리를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이면 주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하여 인공와우의 전기적 신호와 감각과 인식을 일치시키는 매핑(Mapping)을 진행한다. 홍세진이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외부세계와 그에 대한 수용과 조율은 계속해서 자신만의 좁고 긴 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기술의 발전은 홍세진이 늘어난 채널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왔듯, 시각의 영역에서는 우리를 극한의 현실성(Ultra Reality)으로 소개되는 디스플레이 환경으로 견인해 왔다. 홍세진의 새소리 곁으로 향하면 만나게 되는 프락시노스코프(praxinoscope)의 형태의 작품은 초당 5 프레임(Frame/sec)의 속도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프락시노스코프는 1876년 에밀 레노(Emile Reynaud)에 의해 고안된 광학장치이다. 홍세진은 먼 과거로부터 초당 5 프레임 속도의 광학장치를 꺼내 초당 30 프레임의 속도로 송출되는 영상에 익숙한 우리에게 내놓는다. 그리고 우리는 새라는 물()을 향한 홍세진의 특수한 청각적 경험과 함께 시각적 공백의 영역으로 초대된다.

 

홍세진_도는 선_캔버스에 유채_45×45cm_2023

3. 파동은 회절과 간섭이라는 특유의 성질을 지닌다. 회절은 반사와는 다르게 같은 상을 만들지 않고 간섭 현상, 즉 차이에 기반한 패턴을 만들어 낸다. 도나 해러웨이는 회절을 세계 안에 차이를 만들어 내기 위한 노고에 부여된 광학적 은유로 설명했다. 그리고 차이에 집중하여 두 개의 상반되고 다른 개념들의 만남을 통해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 이항대립의 경계를 붕괴시키는 회절적 방법론을 명명했다. 3) 일렁이는 직선은 회절을 통해 홍세진의 비가시적 소리 경험이 가시적 성질의 빛과 얽히는 과정을 표명한다. 그 안에서 자연과 인공의 병치, 채움과 비움, 평면과 입체, 물질과 비물질의 얽힘은 불확실하게 겹쳐진 상태로, 분리된 입자들 사이의 만남을 추동하며 회절적 아이러니로 드러난다. 이는 빠른 제자리, 그림자가 도는 선, 1n분의 1, 오려내는 동그라미를 비롯하여 평면과 설치를 횡단하는 가운데 작품 전반에 걸쳐 드러나며 설치 작품으로 확장된다.

 

홍세진_지저지저_캔버스에 유채_45×45cm_2023

아이러니가 표명하는 비-자기-동일성(non-self-identity)은 불확정성이다.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Werner K. Heisenberg)는 불확정성의 원리(uncertainty principle)를 통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음을 밝혀냈다. 입자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설계되었던 하이젠베르크의 연구는 입자가 파동성을 지닌다는 아이러니를 밝힘으로써 양자 물리학의 발전을 태동시켰다. 고전역학에서 불가능했던 물()에서의 입자성과 파동성이 양립이 드러난 것이다. 홍세진의 일렁이는 직선은 파동, 회절, 좁고 긴 틈, 아이러니를 관류하며 양자 물리학의 개념으로 연결된다. 홍세진의 '좁고 긴 틈'은 뒤섞인 앎과 존재에 대한 틈이자 일련의 이항대립이 구성한 단단한 세계에 대한 어긋남으로 양자 물리학에서의 '슬릿'과 공명한다. 입자와 파동이 양립한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이중 슬릿 실험(double-slit experiment)은 물()의 기본 단위인 전자가 소리, 빛과 같은 비물질 파동과 동일하게 슬릿을 통과하며 회절 무늬를 남김을 확인했다. 이를 본 닐스 보어(Niels Bohr)는 양자 물리학의 철학적인 기둥이 되는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를 발표하며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다."고 했다. 4) 이중 슬릿 실험에서와 같이 홍세진의 좁고 긴 틈은 대립적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아이러니적으로 통합되는 통로이다.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 발견된 아이러니는 또 다른 아이러니를 야기하는데, 아이러니를 파악하기 위한 관측은 아이러니의 상황을 숨긴다는 것이다. 5) 양자 물리학의 철학적 함의를 논한 캐런 버라드(Karen Barad)에게 관측의 아이러니는 세계에 대한 인간 관찰자의 개입이 존재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따라서 인식과 존재가 경계 없는 상태로 얽혀있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6) 홍세진이 자신의 '좁고 긴 틈'을 통해 물질세계를 포착하는 것은 특정한 얽힘 가 운데 하나의 관찰자로서 절단한 세계를 보이는 것이다. 관측의 아이러니는 우주나 존재의 전체에 관계되는 보편성을 단편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각-존재-인식을 하나로 통합하는 인간 내부의 아이러니이다. 홍세진은 자신의 노트를 통해 "감각을 지각하는 신체 언어에 대해서, 그리고 세계 속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닌 내가 감각하여 세계가 드러나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라고 전한다. 홍세진이 감각한 대상과 풍경은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 일부가 현상으로 홍세진에 의해 인식의 형태로 잘려 물질화되어 드러날 뿐이다. 홍세진의 직선은 좌표계의 축이며 슬릿이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다수의 좁고 긴 틈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세계를 관측하기 위해 홍세진은 지금도 수 없이 캔버스를 가 로지른다. 임휘재

 

* 각주

1) 대표적인 홍세진의 비평으로는 천미림, 찰나의 순간들을 붙잡는, PUBLIC ART Issue 195, Dec 2022. 정현,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경계에서, 2020. 김정현, 차갑게 와 닿는 사물, 2021. 이 있다.

2) 해러웨이는 "아이러니는 변증법을 통하더라도 더 큰 전체로 통합할 수 없는 모순에 관한 것이며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모두 필연적이고 참되기 때문에 그대로 감당할 때 발생하는 긴장과 관계가 깊다. 아이러니는 유머이며 진지한 놀이이다."며 비-자기-동일성(non-self-identity)으로 설명한다. 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9.

3) 도나 해러웨이, 겸손한_목격자@2_천년.여성인간_앙코마우스_만나다: 페미니즘과 기술과학, 민경숙 옮김, 갈무리, 2007.

4) 닐스 보어는 1947년 물리학 공로로 덴마크에서 귀족 작위를 받게 되는데 예복에 태극문양을 새기고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다'(Contrariasunt Complementa)라는 라틴어 문구를 넣었다 한다. 김상욱, 떨림과 울림, 동아시아, 2018.

5)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 슬릿에 통과하는 전자에 대한 관측이 개입되면 전자는 입자성만을 보이며 회절무늬를 만들지 않는다. 반면 관측하지 않으면 파동성을 보이며 회절무늬를 만들게 된다. 이후 탄소원자 60개로 이루어진 풀러렌(C60)의 이중 슬릿 실험이 성공하였고 유기물, 바이러스, 단세포 생물 등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이중 슬릿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양자 물리학은 미시세계에서 거시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6) 캐런 버라드,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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