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갤러리 씨네 노광래 대표

노광래 대표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 인사동 거리의 철학자로 불린 고 민병산 선생의 서예 작품이 보인다. 강성만 선임기자
 

천상병 시인 좋아 ‘귀천 껌딱지’ 인연

1985년부터 38년째 ‘인사동 연락책’

 

노광래(66) 갤러리 씨네 대표는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거리인 인사동 사람들 사이에 연락책으로 통한다. 1985년 지금은 고인이 된 천상병 시인과 부인 목순옥씨가 카페 귀천을 연 이래 ‘귀천 껌딱지’로 살았으니 인사동과 연을 맺은 지 37년이다. 앞서 1983년 시인 천상병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천상문학회’ 초대 총무를 지낸 그는 1988년 시인이 춘천의료원에 입원하자 8개월 동안 병실에서 숙식하며 간병을 했단다. ‘인사동 풍류객’이었던 고 이계익 전 교통부 장관 말년에도 1년6개월 동안 ‘비서 겸 운전사’ 노릇을 하며 함께 인사동을 누볐다.

 

15년째 화랑 주인으로 사는 그에게 그림을 맡기는 화가와 고객들도 대부분 인사동 거리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한 달에 그림 200~300만원어치 팔아 세내고 남은 돈으로 라면 먹고 즐겁게 산다”는 노 대표는 지난해부터 인사동과 인사동 사람들을 알리는 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난 9월 ‘인사동 산타클로스’로 불렸던 고 채현국 선생을 기억하는 글을 모은 책 <건달할배 채현국과 친구들>을 기획 출간했고, 지난해는 절판된 지 오래인 조문호 사진작가의 인사동 사람들 사진집 <인사동 이야기> 개정판 발행에도 앞장서 성사시켰다. 최근엔 유홍준 미술평론가와 윤후명 작가, 황주리 화가, 안선재 번역가, 장광팔 만담가, 가수 남궁옥분 등 35명의 ‘인사동 애정담’을 모아 <인사동에서 만나자>(덕주)라는 책도 냈다.지난 9일 서울 경운동 갤러리 씨네에서 노 대표를 만났다.

 

인사동에서 만나자 275P / 20,000원 / 덕주출판사
 

2008년부터 인사동 수운회관에서 유카리 화랑을 했던 노 대표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고 2년 전 폐업한 뒤 지난해 지금의 자리에 다시 갤러리를 열었다. 그가 이번에 수십명 필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원고 청탁을 해 인사동 책을 낸 것도 코로나로 인사동을 떠난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해서란다.1968년 대학 2학년 때부터 우현 고유섭 선생의 책을 사러 인사동을 찾았다는 유홍준 평론가는 1990년대 들어 인사동이 관광거리로 크게 변했지만 지금도 “마음의 고향”인 인사동을 일주일에 두어번 들른다고 책에서 털어놓았다. 가수 남궁옥분은 자신의 그림을 인사동에 처음 올리던 날이 “티브이 프로그램 <가요 톱텐>에서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로 1위 트로피를 받았을 때보다 몇 배의 기쁨이었다”고 적었다. 고교생 때부터 인사동을 드나들었다는 시인 이만주는 ‘인사동 성골은 목순옥씨의 카페 귀천을 드나들었고, 지금은 다 고인이 된 민병산 천상병 박이엽 채현국 선생을 알고, 지금도 가끔 인사동을 드나드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뒤 이런 “인사동의 문화 게릴라”는 50~100명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노 대표는 천상병 시인과 의형제를 맺기도 한 소설가 고 이외수 선생 부부가 말년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시인의 부인에게 거금(3천만원)을 건넸다는 일화도 전했다.

인사동이야기 / 250페이지 / 25,000원 / 눈빛출판사

“코로나로 망해 인사동을 뜬 자영업자들이 많아요. 인사동을 다시 살려 예전처럼 즐겁게 놀면서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마음으로 책을 기획했어요. 인사동에서 우리를 가르쳐준 훌륭한 어른들이 많이 떠나셨지만 지금도 구중서 신경림 구중관 염무웅 선생님 등이 계시죠.”이날도 인권운동가 서승 선생과 함께하는 모임 약속이 있다는 노 대표는 인사동을 두고 대학이라는 표현을 썼다. “저한테 인사동은 대학이었어요. 1985년 귀천에서 채현국 선생님을 만난 이후 마지막까지 따라 다니지 않은 곳이 없어요. 끝까지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분이죠.” 인사동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게 뭐냐고 하자 그는 “남과 함께 즐겁게 살자, 하나라도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실천하며 살자”라고 답했다.

 

 

건달할배채현국과 친구들/ 15x22cm 288면 14,400원 출판피플파워

인사동 사진집·채현국 추모집 이어최근 ‘인사동에서 만나자’ 기획출간

작가·만담가·가수 등 35명 글 모아“선생님들처럼 후배들 밥술 사야죠”

 

그의 공식 학력은 초등 3년 중퇴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검정고시 준비를 하던 10대 중반 때 학생잡지 <학원>에 실린 최인호 청춘 소설을 보며 소설가의 꿈을 키우다 만 21살에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사상전집 외판 일을 시작했고 그 뒤로 월간 <객석> 영업사원과 출판사 영업부장, 잡지사 광고부장 등을 거쳤다. “삼성출판사 전집 월부값을 갚으려고 그 전집 외판 일을 시작했죠.”그는 지금도 작가의 꿈을 꾸고 있단다. “귀천에 붙어 있을 때 천상병 선생께서 저에게 ‘놀지 말고 시 몇 편 써 오면 <현대문학>에 실어주겠다는 말씀도 하셨죠. 하지만 그때 저는 시를 쓰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소설가가 되고 싶었죠. 죽기 전에 서정인·윤후명 작가처럼 깊이가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그 생각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독서를 많이 했죠.”그는 천상병 시인 생전 10년 동안 제자로 살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분의 시처럼 천진하고 순진무구한 인간적인 모습이 좋아서”라고 답했다. “천 시인은 날카로운 통찰력도 있었어요. 제가 춘천에서 병간호를 하며 일본 무교회주의자인 우치무라 간조의 책을 보니까 선생님이 깜짝 놀라며 어떻게 네가 우치무라를 아느냐고 하시더군요.”노 대표에게 인사동은 “자연스럽게 놀고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곳”이다. “거리의 철학자로 불린 고 민병산 선생이 한국기원이 있던 관철동에서 80년대에 인사동으로 발걸음을 돌리면서 하신 말씀이 ‘인사동은 생산적이야’였죠. 여기는 전시 예술이 번성한 동네입니다. 그래서 재미나게 즐기고 배울 게 있어요. 아무리 훌륭한 공부도 억지로 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요즘 ‘인사동 터줏대감들’이 애정하는 공간이 어디냐고 하자 그는 카페 ‘귀촌’과 막걸리 주점 ‘유목민’, 한정식집 ‘여자만’과 만두 전문점 ‘사동면옥’, 강된장 전문점 ‘툇마루집된장예술’ 그리고 카페 겸 식당 ‘시가연’ 등을 꼽았다.‘인사동 터줏대감의 세대 교체’를 화제에 올리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우리 60대가 죽은 뒤에는 이어질 것 같지 않아 걱정입니다. 40, 50대라도 많이 오면 좋겠어요. 전에는 선생님들이 공부 가르쳐주고 밥도 사고 했지만 지금은 우리가 해야죠. 돈이 많지 않아도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어요. 이젠 우리가 해야죠.”

 

한겨레 /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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