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갑석 47 세

빈곤은 늙은이보다 젊은이가 더 문제다.

쪽방 살거나 노숙하는 사람 중에는 젊은 친구도 더러 있는데, 대개 아들 같은 4, 50대로

한창 자식 키우며 신나게 일할 나이에 장가도 못 가고 거리를 떠돈다.

지병이 있어 장애등급을 받으면 쪽방이라도 들어올 수 있지만,

대개 주민등록에 문제가 있거나 장애등급을 못 받아 노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중에는 알콜 중독자가 많은데, 문제는 자포 자기하며 산다는 것이다.

 

모처럼 공원에 나갔더니, 짜장면 나누어 주던 봉사원들이 일을 끝내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지경학이는 짜장면을 먹다 말고 맹숭맹숭하게 앉아 있었다.

술 생각은 간절하나 돈이 없어 물주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소주 한 병에 육포 하나 사서 같이 술 한잔했는데,

술이 들어가니 마음이 편안해지며 불안감이 사라진다고 했다.

 

경학이는 이제 쉰 둘인데, 내가 오기 전부터 동자동에서 머문 오래된 사이지만.

사진 찍히는 것을 유달리 싫어해,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모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보니, 사진을 안 찍는 별다른 이유도 없었다.

세수도 하지 않은 구질구질한 모습을 남기기 싫어서 란다.

 

입버릇처럼 말해 온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며,

자존감 나온 얼굴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야 할 것 아닌가? 라고 말했더니,

자존감이 밥 먹여 주냐고 구시렁대며, 얼굴을 내밀었다.

 

지경학 52 세

그러나 기념사진은 찍을 수 있으나, 초상 사진은 다음에 찍자며 미루었다.

'사진에 술 마신 표가 나냐?'며 되물었지만,

정신이 온전할 때 찍기로 한 나름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며 설득했다.

 

그 와중에 이재안씨를 비롯하여 유정희, 정수일 등 여러 명이 등장했다.

유정희씨는 품속에 감추어둔 막걸리 한 병을 꺼내 놓았고,

수일이는 배가 고프다며, 경학이가 먹다 만 짜장면을 먹었다.

한 시간도 더 지난 짜장면이라 불어 터졌지만, 배가 고팠는지 맛있게 먹었다.

 

수일이는 요즘 춘천에서 살고 있는데, 재미가 없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가오로 항상 나이방을 끼고 다니지만 도통 먹히지가 않는다며, 사진이나 멋지게 찍어 달랜다.

 

정수일47세

젊은이 초상사진으로는 지난 '추석 한마당'에서 찍은 강 호와 박갑석씨도 있는데,

다들 하루속히 안정된 일자리를 얻어 젊은 꿈을 펼치길 바란다.

 

강호 59 세

서울문화재단에서 실시한 원로작가지원사업의 도움으로 시작했던,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사진은 이달 말까지 찍은 사진으로 일단 마감해 정산하기로 했다.

 

장정된 초상사진은 오는 동짓날(1222)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새꿈공원에서 나누어 드릴 작정이다.

오후 6시부터는 서울역광장에서 '홈리스추모제'도 열리니, 찍힌 분들은 그 날 찾아가기 바란다.

공원에 먼저 가신 분을 위한 조촐한 추모의 술상도 마련할 테니, 소주라도 한잔하면서...

 

이 초상 사진 나눔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사람 없는 초상 사진을 없애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은 지속적으로 찍을 작정이다.

개인이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제도개선을 위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한평생 힘들게 살다 죽는 것도 억울한 데, 죽어서 까지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이건 인간 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제발 인간을 모독하는 얼굴 없는 유령은 만들지 마라! "

 

사진,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