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남길 끼 있다고 초상사진을 찍어?”

이 말은 초상사진 찍자는 말에 아래 층 사는 오씨가 뱉은 말이다.

쪽방 사는 분이나 노숙인들은 대개 영정사진 찍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삶을 다 지우고 싶은데, 사진은 남겨 뭘 하냐?’는 것이다.

봉사단체에서 가끔 쪽방 주민들 영정사진 찍어주러 오지만, 대부분 허탕 치는 이유다.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서울문화재단’에서 실시한 원로예술 지원 사업의 주제를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으로 정해버렸다.

초상사진이 사진의 꽃이기도 하지만, 폐배 주의적 생각을 버리게 하고 싶어서다.

 

배경 막 앞에 앉아 찍는 판박이 사진이 아니라  그 사람 정신이 오롯히 담긴 작품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야심찬 각오다.

그럴려면 사진 찍는 목적과 가치를 확실하게 밝혀 당사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급선무였다.

 

동자동 살며 한 번도 개인적 신분이나 사진 찍는 목적을 밝힌 적이 없어, 대부분 쪽방으로 밀려난 늙은 사진사 정도로 알고 있다.

쪽팔려 스스로의 이야기도 못하지만, 안간적인 교류나 작업에 장애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동자동 들어 와 제일 신경 쓴 문제가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일이었다.

오죽하면  '노숙인 길에서 살다' 책이 나와도 보도자료는 커녕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겠는가?

 

유명세의 폐해를 너무 잘 알지만, 그들이 싫어하는 초상사진을 찍으려면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기존 영정사진과 다르다는 확신을 주지 않으면 찍지도 않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소통하지 않는데 무슨 좋은 초상사진이 나오겠는가?

그래서 모든 것을 까발리는 적극적인 자세로 바꾼 것이다.

 

지난 달 중순 ‘인사동사람들’ 블로그에 올린 ‘원로예술지원금’으로 버려진 사람 초상 사진 찍다.‘란

글과 사진을 동자동 사랑방에서 운영하는 카페 “쪽방타운”에도 복사해 올렸다.

그 아래 여태 해 왔던 작업과 약력까지 상세하게 소개하는 자랑도 마다하지 않았다.

 

‘쪽방타운’ 카페를 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으나, 평소 접속보다 다섯 배나 많았다. 

소문은 금세 퍼지기 마련이라 찍자는 분이 생길 것 같았다.

 

열흘 전 초상사진을 찍기 위해 나서다 이발하는 서씨를 공원 입구에서 만났다.

모처럼 말쑥해진 모습에 초상사진을 부탁하여 찍었는데, 눈길을 카메라에 주지않았다.

눈빛에서 그 사람의 정신을 읽을 수 있는데,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눈길을 자꾸 피했다.

카메라를 똑 바로 보라고 몇 번 말했더니, 안 찍는다면서 화를 벌컥 냈다.

 

아! 서둘지 말고 더 소통한 후 진정성 있게 접근하라는 계시였다.

촬영에 앞서 지켜야 할 원칙부터 몇 가지 정했다.

첫째, 아는 사람 위주로 찍되, 작업을 충분히 이해시킨 후 협력을 받아내기로 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사는 이야기도 들어보고, 어떻게 사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할 것 아닌가?

둘째, 사진 촬영하는 장소에 배경 막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사는 주변으로 한정해 초상사진을 찍는 장소성에도 의미를 두었다.

셋째, 아무리 가까워도 주제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면 제외했다. 그리고 그 사람 정신이 온전할 수 없는 술 취한 상태에서 찍지 않는 등 몇 가지 원칙을 세운 것이다.

 

전시는 원래 계획대로 추진하지만, 사진 숫자에 연연하며 서둘지 않기로 했다.

얼굴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겼는데, 제대로 모르면 뭐가 보이겠나?

그 사람의 정신이 드러난 좋은 초상사진이 나올 때까지 찍기로 했다.

 

며칠 전에는 공원에서 이경기씨를 우연히 만나 그 분의 하루를 지켜보았다.

장기판을 구경하다 별 재미가 없는지, 따라오라며 '만나샘' 무료급식소로 끌고 갔다.

밥 주는 시간이 세 시간이나 남았지만, 식당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늦게 오면 줄서서 기다리는 것도 귀찮지만, 티브이 봐가며 시간 보내기 좋단다.

 

무료급식소 테이블에 마주 앉아 초상사진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인쇄물을 보여드렸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이경기씨는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 온지는 20년이 넘었는데, 살아온 세월이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젊은 시절에는 ‘전매청’에 근무한 엘리트로 슬하에 삼남매를 둔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었다고 한다.

직장을 나와 건축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기도 했으나 욕심이 욕심을 불러

탄광업에 진출했다가 망 했다는 등 사기당한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속 상해하셨다.

그 충격으로 정신질환까지 생겨 가족과 생이별하게 되었다는 신세타령을 했는데, 다 돈이 원수였다.

 

그렇지만, 팔순을 넘긴 연세에 바깥나들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만도 큰 복이다.

쪽방 생활을 오래하면 건강한 사람도 망가지기 십상인데, 타고난 건강이었다.

그런데, 급식할 시간이 가까워 사람들이 몰려오니 황급히 일어섰다.

여태 기다리다 밥 나올 때 왜 가시냐고 물었더니, 오늘 먹어 치워야 할 밥이 집에 있단다.

 

밥도 못 얻어먹고 따라붙어 영감님 사는 집 담벼락에서 정면사진 몇 장 찍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오겠다는 말을 했더니, 고맙게도 전화번호까지 적어 주셨다. 

 

좋은 초상사진이란 찍히는 자의 정신은 물론 삶의 결이 드러나야 한다.

서로의 경계를 허물 때 찍는 자와 찍히는 자가 하나가 되는데, 그게 말처럼 싶지 않다.

사는 동안은 초상사진에 최선을 다해 사람사진의 꽃을 피워보고 싶다.

사람의 탈을 쓰고 사는 이 비정한 세상에 사람의 정체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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