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리우면 인사동에 나간다.

어디엔들 사람이야 없을까마는 그곳에 가면 반가운 사람을 만날 것 같은 생각에서다.

그리운 사람들은 대개 세상을 떠났거나 살아 있어도 소식조차 없다.

사라져 그리운 것인가? 그리워라 사라지는 것인가?


 

어쨌든,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고 누군가가 그 자리를 다시 채울 것이다.

나 역시 다시 채워질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떠나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그리움의 보따리가 더 크지만...


 

그래도 예술가들의 아지트인 인사동이라 눈에 익은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잘 모르는 사이라도 마음이 쉽게 통할 뿐더러, 전시가 열리는 구석구석에 예술가들이 박혀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인사동 나들이는 꼭 보아야 할 전시가 여럿 있어 작정하고 나온 것이다.


 

새로 개관한 이노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금보성씨의 한글초대전이 대표적이고,

통인화랑에서 열리는 김정선씨의 다시 지금 여기에전과 마루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도전,

그리고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지난 6월에 개관한 베를린미술관이었다.


 

전시관보다 무슨 전시인지가 더 중요해 미루기도 했지만, 그동안 시간이 잘 맞않았다.

마루지하에 자리 잡은 베를린 미술관은 본래 계절밥상’이 있던 자리로 엄청 넓은 공간이 아니던가?


 

그 자리에 돈 안 되는 미술관이 들어섰다는 것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는데,

운영하는 지승룡씨를 만나 속내를 들어보고 싶었다.

돈에 중독된 야박한 세상에 예술을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100여 평이 넘는 7개 층 전관을 갤러리로 만들어 운영하다

몇 년 만에 빈손 들고 나 앉은 아라아트의 김명성씨가 어찌 떠오르지 않겠는가?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재기의 몸부림에 한 가닥 기대는 걸지만...



가끔은 돈만 마약이 아니라 예술 자체도 마약이란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마약이 아니라면 어찌 그 바늘구멍보다 작은 희망에 온 몸을 태울 수가 있겠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떠 올리며 인사동에 들어섰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어 깜짝 놀랐다.

뜻밖에 만난 활로였는데, 마치 저승사자가 날 잡으러 온 것 같았다.

귀신같은 망또를 휘날리며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신창영씨가 무슨 바람이 불어 지리산에서 인사동으로 날아왔을까?

서각에 달마영혼을 불어넣는 그는 잡귀에 능한 양반인데,

지난 번 페북에서 실연의 애절함을 솔직하게 보여주어, 그 어울리지 않는 순정에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했다.


 

저녁에 술 한 잔 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병원의 금주령이 걸려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노아트스페이스에서 초대전을 열고있는 금보성씨와 심철민 관장을 만났고,

마루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도씨의 전시를 본 후, 베를린미술관에도 들렸다.



전시장을 내려다보니 누군가 손을 흔들었는데,

초점 맞지 않는 안경을 치켜세워 보았더니, 사진가 박옥수씨 였다.

베를린 미술관지승룡대표와 제주에서 활동하는 양상철작가도 함께 있었다.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각각의 전시관에 부스 전처럼 열리고 있었는데,

먼저 입구에 전시된 양상철씨의 작품을 돌아보며 작가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 전시장은 실험정신을 실천하는 기획전 위주로 운영한다는데,
곳곳에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기도 좋았다.

작품들을 감상하며 사람도 만날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 아니겠는가?


 


박옥수씨와 함께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통인화랑이었다.

전시작가인 김정선씨는 자리에 없었으나, 이계선 통인화랑관장을 만났다.


 

박옥수씨가 시간이 이르기는 하지만, 어디 가서 저녁식사라도 하자고 했다.

가까이 있는 툇마루에서 된장비빔밥에 빈대떡까지 시켰으나, 술은 마실 수가 없었다.

내가 병원 의사 말을 잘 들어서가 아니라, 박옥수씨가 평생 술과 담을 쌓고 사는 분이기 때문이다.



인사동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돌아가신 심우성선생과 사경을 헤매고 계시는 강민선생 이야기가 나왔다.

심우성선생과는 살아 생전 각별한 사이기도 했지만, 강민선생은 주부생활편집장으로 계실 때 여러 차례 뵌 적이 있다고 한다.


 

인사동 터줏대감이 한 분 두 분 떠나가는 빈자리의 쓸쓸함이 밀려왔다.

마침 오늘의 인사동을 대변하는듯한 작품이 떠올랐다.



베를린미술관에서 보았던 양상철씨의 오구동행이란 작품이었다.

가까웠던 친구들이 떠나버려 빈자리가 많아졌다는 그 쓸쓸한 식탁이

오늘의 인사동을 말하는 시어처럼 머리에 내려 꽂혔다.

 

사진, / 조문호




















 

 

 



신창영 (목공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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