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의 이병호씨가 휠체어에 깔려 있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 앞에 쪼그려 앉았는데,

술 취해 휠체어 바퀴에 머리를 집어넣고 잠들었다.

 

세상에! 한때는 중령까지 지낸 장교 출신 꼴이 이게 뭔가?

그는 걸어 다니질 못해 얼마 전 새 휠체어 하나를 얻었는데,

그걸 잃어버릴까, 바퀴 틈에 머리를 끼고 자는 것 같았다.

 

누가 휠체어를 건드리면 다칠 것 같아 깨웠더니, 게슴츠레 눈을 떴다.

나를 보더니 귀찮다는 듯 다시 눈을 감기에 일어나서 술 한 잔 하라고 말하니

그때야 휠체어에서 빠져나오려고 꼼지락거렸다.

 

부축해 일으켜 앉혔더니, 술 달라는 듯 마시는 시늉부터 했다.

물이나 우유를 갖다 줄까?”라고 물었더니,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고주망태가 되었지만, 정신만 차리면 술부터 찾았다.

 

구멍가게에서 우유 한 팩과 소주 한 병 사 와 우유부터 한 컵 따라주었더니,

한 모금 마시고는 토할 것처럼 불편해 했다.

그 대신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마약처럼 얼굴이 풀렸다.

술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이런 노숙자를 구제할 방법은 없을까?

 

'김밥천국' 앞에는 위수범씨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 역시 알콜 중독 증세가 있지만, 술을 참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다들 넋 잃은 사람처럼 멍하게 쳐다보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새꿈공원' 입구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던 유정희씨를 만났다.

 

찍어 둔 초상사진을 전해주려고, 오래전부터 가방에 넣고 다녔으나 보이지 않았다.

몸이 아파 병원 간 줄 알았는데, 얼굴이 좋아져 한 달 만에 나타난 것이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벌금을 못내 감방 살다 왔단다.

술 마시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으니, 몸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알콜 중독자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같았다.

 

요즘은 찍어 준 초상사진을 다시 찍는 경우가 더러 있다.

임백수씨를 비롯하여 이상준, 이기영씨를 다시 찍었다.

 

가능하면 본 모습을 부각하려고, 멋 부린 것들은 가급 적 내렸는데,

왜 사나 가오를 죽이냐?’는 임씨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말이 맞았다. 안경이나 모자 하나라도 그 사람에게는 자존감이었다.

그 이후부터 찍힐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사진을 찍는다.

 

그날은 연세가 많아 기력이 없는 김수안씨가 영정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옆방에 살지만, 꼼짝하지 않으시고 하루에 한 번씩 식사하러 갈 때만 나오시는데,

늘 교회에서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을 기다린다.

아마 천국 가실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동자동에 살며 느낀 것은 다들 죽음을 겁내지 않는데 있다.

고통스러운 이승보단 저승이 편할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 영화를 누리면 누릴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은 더해지고,

목숨에 대한 집착도 강해지는 법이다.

 

죽는 걸 겁내지 않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가진 것 없는 빈자의 특권이다.

 

사진, / 조문호

 

오는 12월, 쪽방 건물 벽면에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 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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