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광 Pyromaniac

윤미류/ YOONMIRYU / 尹美柳 / painting

2023_0831 2023_0924 / 월요일 휴관

윤미류_Hunter-Walker 1_캔버스에 유채_227.3×181.8cm_2023

윤미류 인스타그램_@miryuyoon

 

초대일시 / 2023_0831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2023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

선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주최,후원/ 서울시립미술관

 

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

SEOUL INNOVATION PARK_SeMA Storage

서울 은평구 통일로 684 4~5 전시실

Tel. +82.(0)2.2124.8800

sema.seoul.go.kr

 

윤미류의 회화(繪畫)와 방화(放火) 윤미류 회화의 구조는 일정하다. 한 인물이 화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물화라는 첫인상과는 달리 통상적인 인물화 장르와는 거리가 있다. 인물이 가진 고유한 분위기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되, 이를 바탕으로 작가가 향하는 종착지는 본래의 인물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회화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물이 환기하는 추상적인 감각을 뾰족하게 드러내기 위해 장면을 직접 연출하고, 연출된 세팅에서 모델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만드는 내러티브로 허구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이번 개인전 파이로매니악에서는 그가 쌓아온 균일한 흐름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윤미류_Hunter-Walker 2_캔버스에 유채_259.1×193.9cm_2023

* '파이로매니악''방화광'을 뜻한다. 의미만으로 무척 강렬하고, 압도적이다. 많이 들어보았을 방화범과는 다르다. 방화범의 방화가 금전적이든 개인적이든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다면, 방화광에게는 뚜렷한 동기가 없다.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충동 억제 장애 때문에 방화를 감행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불타는 광경을 보며 긴장이 완화되고 강한 황홀함을 느끼기도 한다. 윤미류의 기존 작업들은 방화광이 연상케 하는 충동, 긴장, 공격성과는 멀어 보이는데, 그래서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파이로매니악'이라는 키워드는 작가의 행보를 읽어낼 중요한 단서가 된다.

 
윤미류_Brushing Off 1_캔버스에 유채_227.3×162.1cm_2023

** 페인터로서 윤미류가 감각을 다루는 방식을 살펴보자. '낯익은 대상이 환기하는 사적이고 추상적인 감각'을 시각화하기 위해 작가는 일련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2021Dripping Wet을 작업하는 과정에서는 어렴풋한 감각을 먼저 키워드로 표현했다. '채비, 다짐, 서늘한, 선명한, 태연한, 굳은, 더듬다, 버티다'와 같은 키워드는 인물을 섭외하고 장소, 의상, 소품, 제스처 따위를 연출하는 실마리가 된다. 연출한 현장에서 인물이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아이폰 카메라로 촬영하고, 이를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옮긴다. 이번 신작을 준비하면서는 낱개의 모호한 단어들을 늘어놓는 데서 나아가 이들을 조합해 서사를 상상했고, 그런 과정에서 '주술사, 사냥꾼, 산책자'라는 캐릭터가 등장했다. 주술사, 사냥꾼, 산책자라는 캐릭터로 연상한 장면들, 이를테면 '이유 모를 행동을 하는 주술사의 몸짓과 무언가를 쫓는 사냥꾼의 얼굴, 어느 순간 길을 잃은 산책자의 눈,' '다른 사람은 짐작도 못 할 주문, 목표물을 급습하려는 작전, 하늘을 헤아려 길을 찾는 꾀를 가진 사람' 등의 상상은 한 야산의 현장에서 현실화된다. 두 젊은 여성이 모델로 분해, , 햇빛, 눈발, 나뭇가지 등 자연 환경에 반응해 여러 행동을 취한다. 이들이 디렉션을이 표현하는 시간에서, '이미 예정된 자신의 연출 보다는 연출된 행위를 뚫고 나오는 우연한 형태들' 이 모여 작가가 느끼는 감각은 점차 예리하게 세공된다. 작가가 포착하고자 하는 '인물-환경이 만드는 다양한 조형성, 내러티브' 는 언어로 완벽히 표현할 수 없는 순간에 존재한다. 그 내러티브는 감상자의 해석에 열려 있고, 새로운 자극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이를테면 전시 준비가 한창이던 여름, 한 동료의 피드백은 작가에게 적절한 환기점을 제공했다. 눈밭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보고 '눈덩이/눈송이/눈가루들은 불타버린 하얀 재, 혹은 폭죽이나 불꽃의 불티처럼' 보이고, 그 이유는 인물의 눈빛이 '뜨거운 느낌'을 뿜어내기 때문인 것 같다는 감상이었다. 한창 무더운 7월에 겨울의 눈을 그리고, 눈의 차가움이 아주 뜨거운 무언가로 교차되는 순간, 차가움과 뜨거움이 서로 전이되고 뒤섞이는 찰나. 이렇게 감각이 새롭게 확장되는 순간에 작가는 매료되었던 것 같고, 그래서 '파이로매니악'은 단숨에 전시의 제목으로 등극하게 된다. '야트막한 산에 출몰하고, 혼자 무언가를 꾸미고 실행하고, 아닌 척 살고, 붙잡기 위해 쫓고, 붙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니는,' '주저하고 망설이는 순간, 입가의 물기를 닦으며 이제 막 중요한 무언가를 끝내고 숨을 고르는' 누군가처럼 주술사, 사냥꾼, 산책자를 통해 떠올린 이미지들은 외부 감상자의 해석이 더해져 방화광으로 확장된다.

 

윤미류_Brushing Off 2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23

이쯤에서 작업의 핵심 질문을 되짚어본다. 윤미류는 '회화로 표현하는 여러 형태 중에서도 특히 인물에 관심'이 있고, 그의 고민은 '인물을 그린다는 것에 요구되는 조건'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물은 '그와 환경이 만들어내는 조형성, 내러티브, 그것이 '환기하는 추상적 감각'이다. 윤미류가 추구하는 감각은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작가는 그 감각에 도달하기 위해 키워드, 캐릭터, 모델, 사진 등을 동원하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실제 인물도, 사냥꾼도, 방화광도 아니다. 작가는 캔버스에 최종적으로 안착한 회화적 이미지와 본래의 대상이 다르다고 선을 긋지만, 여러 단계들을 차곡차곡 밟고 감각을 다듬으며 도달한 결과물에는 그가 경유해 온 흔적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특히 모델이 가진 고유한 분위기는 작업의 밑바탕 역할을 한다. 작가는 주변 인물을 모델로 섭외하는데, 가까운 이들 중에서도 작가에게 어떤 종류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그 얼굴에서만 볼 수 있고, 끌어낼 수 있는 형태를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영화 감독이 상상한 미장센을 연출하기 위해 배우를 섭외하면, 그 배우의 해석이 캐릭터에 반영되는 식일 것이다. 또한 그림 속 인물이 주술사다, 혹은 방화광이다, 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환원할 수는 없지만, 캐릭터는 작품을 읽어내는 길잡이가 된다.

 

윤미류_Fists in the Pocket_캔버스에 유채_33.4×45.5cm_2023

*** 윤미류가 천착하는 감각은 종국에 회화의 물성과 결합하며 완성된다. 작가는 회화의 장면을 조직하는 데 있어 빛, , 질감, 양감, 등의 물성을 무척 예민하게 살핀다. 화면을 넓게 차지하는 어두운 푸른색을 상상하며 모델에게 후디를 입히고, 동물적으로 무언가를 부욱- 찢어 가르는 것 같은 느낌, 반짝이는 텍스처를 떠올리며 가죽 부츠를 고른다거나, 사방으로 산란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모델이 머리를 풀어헤치게 한다는 식이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은 두 그룹으로 나뉜다. 야산이라는 장소만 같을 뿐, 모델, 날씨, 시간대, 의상, 그에 따른 상황은 모두 다르게 설정했다. 그 덕에 두 그룹이 이루는 감각의 대조가 뚜렷하다. 한 사람은 눈이 내린 다음 날, 한낮에, 캐주얼한 오버 사이즈 후디와 청바지를 입고 포니테일을 한 채 카메라 앞에 섰다. 머리카락과 옷에 전부 눈이 잔뜩 묻었다. 머리를 거칠게 흔들자 머리카락에 들러붙은 눈발이 후두두 떨어진다. 맨손으로 한 움큼 눈을 쥔 손, 코끝에 맺힌 물방울의 온도가 시리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의 화면은 좀 더 미스테리하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대에 한 여성은 나뭇가지를 쥔 채 이런저런 자세를 취한다. 가죽 블루종과 부츠의 회색빛에는 따뜻함보다는 냉한 푸른기가 감돈다. 저녁 빛이 얼굴에 강한 명암을 드리우며 얼굴을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으로 드라마틱하게 나눈다. 모델의 눈빛은 스스로의 역할에 충분히 심취한 몰입을 보인다.

 

방화광은 그림 속 인물이기도 하고, 작가 자신을 가리키기도 한다. 작가는 '사건의 타임라인 속 하이라이트 장면을 그리기보다는, 마치 방화광이 일을 내기 직전 또는 직후의 상태에 가까운 시간' 을 포착하고자 한다. 어떤 일의 직전과 직후라면 긴장감이 고조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최고조의 순간을 찾아 헤매는 페인터의 모습에 방화의 아이디어를 고르는 방화광을 겹쳐본다. 성기게 존재했던 감각이 현실에서 연출되는 광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경이로운 눈'이 활활 타오르는 불에 환희하는 방화광의 눈과 같다면, 작가가 회화에 대해 느끼는 매혹의 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유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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