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탔으면 오라잇

정명국/ JUNGMYOUNGGUK / 鄭銘國 / painting

2023_0622 2023_0702 / 월요일 휴관

정명국_나랑 경주할래_트래팔지에 흑연 프로타주_338×177cm_2020~3

정명국 인스타그램_@joung_myoungguk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월요일 휴관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협찬 / 파버카스텔

기획 / 정명국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Tel. +82.(0)2.720.5114

www.kumhomuseum.com

@kumhomuseumofart

 

중후한 흑연 광택에서 떠오르는 감정들 3차원 실물을 2차원 화면 위에 허구적으로 옮기는 기교의 연대기를 미술의 역사라고 할 때, 실물의 표면 질감을 고스란히 본뜨는 특이한 재현 기교는 동서양 모두 오랜 기원을 지녔다. 동양 한자문화권에서 탁본으로 불리는 기술은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나 그림을 베껴내는 일종의 손쉬운 복사법에 가까웠고 역사는 중국 당(618~907)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양에서 프로타주frottage로 알려진 기법은, 대상 가리지 않고 표면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 등으로 문질러 대상의 외형이 고스란히 떠오르게 하는 조형 방법으로, 현대미술사에서 우연적 효과에 비중을 뒀던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 중 하나로 설명된다. 하지만 프로타주는 동서고금의 모든 유년 세대에겐 부지불식간에 체득되는 시각 유희로 기억된다. 대상을 똑같이 옮길 재간이 없는 거의 모든 아이에게 그저 문지르는 것만으로 대상이 종이 위에 떠오르는 체험은 전에 없는 만족감을 안겼다. 포괄적으로 프로타주의 가능성은 대개 동전이나 나뭇잎처럼 작은 대상에 한정되었고, 그 유희는 유년기에 묶여있기 마련이다.

 

정명국_Gate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_135×112cm_2023
정명국_시간의 흔적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 아크릴채색_200×275cm_2023

대상의 중량이 최소 1톤을 넘는 자동차를 본 뜬 정명국의 프로타주 작업은 2000년 전후부터 시작됐다. 초반에는 바퀴와 휠, A필러가 포함된 앞 도어처럼, 차의 부분을 네모진 종이에 흑연 프로타주로 옮기다가 점차 차의 측면으로 확장해 차의 외형을 볼 만한 규모로 발전했고, 이후 차의 앞면 측면 후면을 각각 나눠 차의 3차원을 2차원으로 부분적으로 나눠 출품하는데 이르렀다. 대상의 표면을 본뜨는 기법이라는 차원에 더해, 정명국이 선택한 자동차가 대개 연식이 오래되어 지금은 단종 되어 과거의 기억을 품은 차종인 점, 그리고 차주와 차 사이의 유대감을 표상하고, 나아가 용도를 상실한 차를 향한 차주의 추모의 감정을 담아온 점에선 데스마스크death mask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사망 직후 죽은 이의 얼굴 본을 뜬 데스마스크라는 안면상의 기원은 BC 2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눈을 감고 있는 나폴레옹의 데스마스크처럼 명사들의 데스마스크가 여럿 남아있는 이유다. 데스마스크의 역사가 기원전까지 이르는 것은 인류에게 소멸된 존재를 반영구적으로 현재 시공간에 붙들고픈 바람과 석별의 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석고나 밀랍으로 본을 뜨는 데스마스크의 무채색 단색조는, 흑연으로 본을 뜨는 자동차의 단색조 표면과 정서적인 질감에서 연결된다.

 

정명국_dream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_183×263cm_2010~23
정명국_꽃길로 우리는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_122×185cm_2022~3

데스마스크가 고대의 혹은 짧게 잡아도 전근대의 보존 욕망의 재현이라면, 동일한 욕망은 동시대에서 때로 다른 목적으로 출현한다. 정명국의 초기작 중 차체의 측면 전체를 뜬 거의 첫 작품에 해당할 78 Pony(2006)1974년 현대자동차가 생산한 첫 독자생산 자동차 모델명 포니의 1978년 모델을 프로타주 한 작품이다. 유선형 차체가 일반적인 요즘 자동차 외형의 흐름과는 달리, 1974년 처음 생산되어 1990년 단종 될 때까지 직선형 디자인으로 각인된 자동차다. 여기서 고대 데스마스크의 보존 욕망과는 다른 동시대적 보존 욕망이 소환된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6월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포니의 시간이란 제목의 전시를 열었는데 전시장에는 과거 포니의 일련 모델들과 함께 1974년 생산된 4도어 패스트백 세단 포니와 함께 1974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했지만 생산으로 이어지진 못한 포니 쿠페 콘셉트카 복원 모델도 함께 전시했다. 현대차그룹에선 1973년 생산된 첫 국산 승용차인 기아 브리사도 내년 쯤 복원한다고 한다. 포니나 브리사는 1970~80년대 한국의 도심 풍경의 한 조각을 차지한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포니가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에 등재된 이유일 것이다. 유행 지난 옛 모델의 복원을 추진하는 자동차 업계의 보존 욕망은 브랜드의 정통성을 강화할 목적인 점에선 데스마스크와 결이 다르지만, 소멸된 대상을 추억하는 살아남은 사람의 호감을 환기시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흑연의 반짝임으로 시선을 끄는 정명국의 단종된 차종의 초상화들도 오늘날 도로에선 종적을 감춘 대상들과 호흡을 같이 했던 특정 세대의 정서와 교감을 만든다. 흑연을 오래 문질러 차체의 본을 뜬 정명국의 프로타주 작업은 중층적인 색채를 지녔다. 광택으로 반짝이는 검정색 혹은 짙은 회색은 차라리 빛바랜 은빛처럼, 세월의 켜를 간직한 반짝거림을 지녔다. 일반 평면 작업과 달리 흑연의 중층적인 색감과, 특정 관객에겐 정서의 덩어리일 재현 대상의 성격에 집중시키고자, 특수 조명도 이번 개인전에 설치된다.

 

정명국_깊은 얼굴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_99×54cm_2019
정명국_바르게 살자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_51×96cm_2019

소멸된 대상을 보존해온 정명국의 지난 전시 이력을 살피던 중, 2009년 개인전 전경 사진을 봤다. '문화일보 갤러리'라고 2000년대 중반께 주요 미술가들의 전시를 기획한 문화일보 산하의 갤러리였다. 그가 개인전을 연 2009년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그의 포트폴리오에 수록된 개인전 전경 사진은 원목마루로 바닥을 마감한, 내겐 너무 익숙한 십 수 년 전 어느 전시 공간을 환기시켰다. 독백처럼 이런 생각이 무심히 지나간다. '이 전시장도 단종된 자동차처럼 부지불식간에 소멸 했구나.' 생의 소멸에 대해 10~40대 나이에 진지하게 성찰할 계기란 어지간하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가족의 일원이나 주변 인물의 부고를 접하거나, 느리지만 선명하게 삶의 종점을 향하는 지인을 가까이서 관찰하면 비로소 생의 소멸, 나아가 자신의 소멸에 관해 심사숙고하는 시간이 는다. 소멸에 대한 환기가 반복되면, 지난 시절 비중을 뒀던 자기 성취, 명성, 금전 욕구의 무상함을 몸 전체로 깨닫는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정명국_각진인생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 은박_90×176cm_2012~23

흔히 바니타스 정물화로 정의되는 16~17세기 사이 네덜란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그림은 화려한 꽃과 과실과 금은보화로 장식된 탁자 위를 다룬 정물화로, 그림에 묘사된 온갖 욕망의 사물과 영화로움이 지닌 뜻은 죽음 앞에 무상함이라고 미술사에서 전한다. 바니타스 정물화하면 조건반사적으로 삶의 무상함과 등식화해서 떠올리지만, 다채로운 채색으로 묘사된 화려한 정물화 앞에서 인생무상을 직감으로 떠올리기란 실제론 어려운 게 사실이다. 삶의 유한성과 욕망의 무상함은 세월의 켜가 쌓였을 때 비로소 내면에서 떠오르는 개념이이어서일 게다.

 

정명국_휘익 마이카_종이에 흑연 프로타주_184×271cm_2022~3

흑연 고유의 중후한 광택으로 빛나는 검정색 혹은 은색 차량은 해당 차의 주인에겐 가족의 유대감과 연민의 정을 일으키는 데스마스크와 같은 것일 테고, 그 차를 동시대에 접했던 불특정 관객에겐 자신의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시절을 환기하는 모티프와 같은 것일 테고, 또 다른 이에겐 생의 소멸을 다시 환기시키는 촉매와 같은 것일 테다. 반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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