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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방랑 시인으로 불렸던 김홍성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가 나왔다.

첫 시집 바람 속에 꽃씨 하나에 이은 두 번째 시집으로 2006문학동네에서 펴냈으나,

16년 만에 문학동네 포에지 58호로 복간한 것이다.

 

지난 31일 오후5시부터 인사동 풍류사랑에서 열린 복간기념회에는

김홍성시인을 비롯하여 썰이 빛나는 소설가 이시백씨, 독보적인 전기 작가 이충렬씨,

세상의 아침출판사를 운영하는 전상삼씨, 지리산으로 들어간 소설가 임헌갑씨,

문학동네편집인 유성원씨, 장터 사진가 정영신 동지, 박시우씨, 박인씨, 영창씨 등 모두 12명이 함께했다.

 

그런데, ‘풍류사랑옆자리에 반가운 분도 있었다.

조준영시인과 건축가 임태종씨, 인사동 지킴이로 통하는 공윤희씨였다.

약속없이 반가운 사람을 우연히 만 날 수 있는 곳이 인사동의 재미가 아니겠는가.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복간 기념회는 김홍성시인의 죽마고우 이충렬씨가

중대 문창과 동문을 비롯한 몇몇 분만 연락했다는데,

평소 떠벌리는 것을 싫어하는 주인공의 의중을 헤아린 것 같았다.

 

나 역시 참석할 군번은 아니지만, 한 때 인사동을 풍미한 문인들 모임인데다,

포천 명성산 기슭에서 두문불출하는 전설 속의 주인공을 어찌 보고 싶지 않겠는가?

 

김홍성 시인을 모르는 분을 위해 먼저 작가부터 소개해야 겠다.

그는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여 십여 년 동안 여행 잡지인

나그네’, ‘사람과 산등 여러 잡지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1990년 오지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히말라야로 떠난 것이 계기가 되어 네팔에 정착했다.

2002년 카트만두에 '소풍'이라는 조그만 밥집을 차려, 그곳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시와 기행문을 써 왔다.

그리고 사진전도 몇 차례 가진바 있는 사진가이기도 하다.

 

김홍성 시인은 두 권의 시집 외에도 트리술리의 물소리’,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 꽃향기, 두엄냄새 서로 섞인들’,

우리들의 소풍’, 히말라야, 40일간의 낮과 밤’, 시인 김홍성의 히말라야 기행', ’꽃피는 산골’, ‘먼지 속에 꽃씨 하나‘,

온길 삼만리 갈 길 구만리등을 펴낸바 있다.

 

2006네팔 카트만두 밥집과 히말라야 떠돌이 생활 20여년을 정리하고

고향인 포천으로 돌아 온 것은 간암에 걸린 아내의 병이 깊어서다.

그러나 아내는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 시집 출간을 앞두고 세상을 등져,

 그 시집은 아내를 그리는 사부곡(思婦曲)이 되어버렸다.

 

"오래 멀리 떨어져 사는 게 서럽지 않다 / 그만큼 많은 비와 눈이 우리 사이에 내렸다 냇물이 되어 흘러갔다 /

눈물은 아직도 뜨겁지만 이내 식는다 이제는 천천히 오래 우는 것이다 /

후회가 아니다 용서도 아니다 그냥 이렇게 우는 게 편해진 것이다

['그리움' 부분]

 

그의 시에는 말 못할 슬픔과 풀꽃처럼 여린 감성이 오간다.

 

"먼산 너머로 노을이 질 때면 / 기러기라도 울며 날았거늘 / 샛별이라도 글썽였거늘 //

빈 하늘 텅 소리 나게 두고 /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는 / 쓸쓸한 사랑 깊어진 끝에 / 태풍이 지나갔다 //

쓸쓸한 사랑아 / 산에 가자 / 태풍이 지나갔다

['쓸쓸한 사랑'부분]

 

한마디로 울음의 곳간이다. 기러기도 울고 샛별도 울고 산도 울었다.

 

시집 복간기념회는 눈물이 술이 되었는지, 부어라 마시어라 넘치는 술잔 속에 시낭송이 이어졌다.

낭송한 여러 편의 시중에 절창 두 편만 소개해야 겠다.

 

원산하숙

 

무적이 우는 날이면 / 눈먼 고래처럼 무적이 우는 날이면 / 원산하숙 연못가 꽃밭에서는 /

옥잠화가 피었어 / 안개비 속에서 / 하얀 옥잠화가 피었어 / 고향땅이 그리워서 /

홀아비로 늙어 죽은 / 원산하숙 아저씨가 가여워서 / 슬프도록 어여쁜 꽃 / 옥잠화가 피었어 /

무적이 우는 날이면 / 눈먼 고래처럼 무적이 우는 날이면

 

다시 산에서

 

친구여 / 우리는 술 처먹다 늙었다 / 자다가 깨서 찬물 마시고 / 한번 크게 웃는 이 밤 /

산아래 개구리들은 / 별빛으로 목구멍을 행군다 / 친구여 / 우리의 술은 / 너무 맑은 누군가의 목숨이었다 /

온 길 구만리 갈 길 구만리 / 구만리 안팎에 / 천둥소리 요란하다

 

술이 시가 되고 시가 술이 되는 자리는 그렇게 끝났으나, 어찌 이차를 가지 않을 소냐!

 

호프집 부얶으로 들어갔으나 아쉽게도 맥주는 마실 수가 없었다.

통풍이란 요상한 병에 걸려 그 시원한 맥주 맛 못 본지가 십년도 넘었다.

 

 김홍성시인이 산정호수 캠프까지 가려면 녹녹치 않은 거리라, 아쉬운 작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동지와 함께 ‘유목민에 들렸으나, 주인도 술친구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발길 돌린 예당에는 장경호, 안원규, 공윤희씨가 반겼는데, 뒤늦게 사진가 김수길씨도 나타났다.

 

옆 자리에는 사진가 정명식씨가 있었다.

 

깊은 인사동의 밤은 술이 술을 마시게 했다.

술인지 독약인지, 술 마시다 '예당'에서 눈을 감아버렸다.

차라리 그 길이 저승길이라면 편하련만, 비틀 비틀 꿈길이더라.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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