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5_0904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T

el. +82.2.734.0440

www.ocimuseum.org



아방가르드 예술의 선구자가 또 한 번의 새로움에 도전한다. 이미 1970년대부터 퍼포먼스, 이벤트, 개념미술, 대지미술, 실험영화 등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김구림 작가는 까마득한 '제자의 제자'와의 2인전에 참여한다. 젊은 작가 김영성은 "저도 언젠가 선생님과 꼭 함께 전시를 해보고 싶습니다"라는 존경과 포부를 표현 했는데, "뭘 나중에 해, 그냥 지금 하자" 라며 대가(大家)답게 여유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세대와 매체를 넘나드는 김구림의 실험적이고 개방적인 작업 태도와 포용력 그리고 이러한 열정을 따르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 세계를 구축하는 김영성의 집중력은 고정된 틀을 넘어 창의적인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 전시의 제목이 된 '그냥 지금 하자'는 단순하게 지나칠 수 있는 말 이상의 의미들을 생각하도록 한다. 이는 시대의 유행, 현실적 조건 등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오직 순수한 예술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두 작가의 거침없는 작가정신을 함축한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말은 어느 한 시점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성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여 동시대 미술의 진의를 되짚어볼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두려움과 머뭇거림으로 도전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기 쉬운 우리에게 '핑계 없이', '현재', '행동'이라는 중요한 삶의 지침들을 상기시킨다. ● 전혀 연결 고리가 없을 것처럼 보이는 김구림, 김영성 두 작가는 작품에서 '문명'과 '생명'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이들은 물신(物神)주의, 획일적인 대중문화, 디지털화의 가속화 등을 낳은 현대사회의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가진다. 특히 두 작가 모두 생명 경시, 인간성의 상실, 인간의 병리적 욕망으로 드러나는 물질문명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표상하기 위해 의미가 상충되거나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개념과 요소들을 작품 안에서 결합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주로 훼손되어 파편화된 인간의 신체, 자연의 요소들과 기계 부속품 등 문명의 산물들을 이질적으로 병치하여 문명으로 인해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을 암시한다는 점이 두드러진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표상하기 위해 사진, 오브제, 페인팅을 자유롭게 활용한 해체적인 콜라주와 입체의 방식을 활용한다는 점을 눈여겨 볼 수 있다. ● 김구림의 광범위하고 다층적인 전 작업들을 부분적으로 한정지어 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과 김영성이 초기의 콜라주, 입체에 이어 근작에서는 극사실회화에 집중하여 너무나 뚜렷한 형식적 특성을 지닌다는 점은 인지하지만, 두 작가가 세대와 경험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문명과 생명의 문제를 작품 속에서 꾸준하게 성찰한다는 점은 중요하게 짚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시대를 뛰어넘는 김구림의 사유는 김영성 작가와 같은 이후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일정 부분 대물림되어 여전히 고민해야할 부분으로 이어지고, 그 표현의 방법에서도 다분히 영향력을 지닌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김구림, 김영성은 각자 그 중심이 되는 특정 개념을 지속적으로 작품을 통해 구체화한다. 특히 두 작가 모두 상반되는 개념들을 포용하고 그로부터 형성되는 다양한 관계를 탐구하는데, 이러한 양상은 김구림의 '음양(陰陽)'과 김영성의 '무·생·물(無·生·物)' 개념에서 그 근본을 파악해 볼 수 있다. 김구림의 '음과 양' 개념은 8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서 생성과 소멸, 흑과 백, 자연과 문명 등 상반되는 여러 개념과 이미지들이 얽혀있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거나 또는 부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모든 상황들을 포용하는 우주적인 개념이다. 김영성의 '무·생·물' 개념은 보잘 것 없는 것, 생명 그리고 생명이 없는 인공물이 공존한다는 의미로, 현대 물질문명 사회의 상황을 표현한다. 상반되는 것들이 공존하는 양면성을 지녔다는 점, 문명과 생명이 뒤얽힌 현대사회를 통찰하는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음양'과 '무·생·물'개념을 나란히 놓고 살펴볼 수 있다. ● 전시는 세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펼친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는 '문명인을 위한 애도'라는 주제로 김구림의 강렬한 입체, 설치작품들을 살펴본다. 전시장을 하나의 거대한 무덤으로 변화시킨 김구림의 설치 작품을 통해 육신의 편리함을 가져다 준 물질문명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정신적인 죽음을 가져다주는지를 적나라하게 대면하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사라진 자연에 관한 진술'에서는 문명의 발달로 인한 자연과 환경 파괴를 고발하고 동시에 획일적인 아름다움과 유행에만 열광하며 실존적 가치를 경시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돌이켜본다. 인간은 자연환경을 훼손하며 본래의 모습을 잃게 만들었고 동시에 성형수술, 부자연스러운 외면에만 가치를 두며 스스로의 자연스러운 '미(美)'도 상실해간다. 옛 성현의 정신적 가르침과 오버랩되는 자극적인 붉은 입술을 담은 김구림의 영상, 네온사인 속 고양이 박제를 넣은 김영성의 입체 등을 통해 두 작가는 우리가 가장 자연스러웠을 때로 돌아가서 본질적 아름다움을 찾아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마지막 섹션 '가장 작은이들과의 만남'에서는 '보잘것없는 것들'로 치부되는 가장 작은 생명체들이 주인공이 된다. 달팽이, 개구리와 같은 작은 생명체와 생명이 없는 인공물이 함께 묘사된 김영성의 극사실 회화를 통해 물신의 사회에서 생명과 실존의 문제를 사유하도록 한다. ● 김구림과 김영성은 이번 전시를 통해 궁극적으로 세 가지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제시한다. 문명과 생명의 요소들이 결합되어 다면적의미를 생성하는 두 작가의 작품들은 인간이 이뤄 놓은 첨단 과학과 물질문명의 이면에 자리한 과도한 물욕, 무기력한 사고, 인재(人災) 등이 인간을 병들어 가게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더불어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자연과 생명체들을 파괴하고 동시에 본연의 내면적 아름다움 또한 잃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뒤돌아보는 반성적 장을 마련해 준다. 우리는 이러한 깊은 사유를 통해 인간성과 자연의 회복, 생명 존중이라는 익숙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동시대적인 과제들에 마주하게 된다.



김구림_음과 양-무덤_혼합재료_257×400×400cm_2015


김구림_음과 양 11-05.70_혼합재료_190×122×22cm_2011


김구림_음과 양 12-S.26_혼합재료_94×194×660cm_2015


김구림_음과 양 12-S.37_혼합재료_91×132×60cm_2012


김구림의 「음과 양」(2015)에서 나타나는 문명 속 인간의 죽음 ● 전위 예술가로서 김구림의 발자취는 사실 수 십 권의 책으로 이어서 만들어도 부족할 만큼 다양하며, 수많은 작품들에 이미 '한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새긴 그의 독자적인 영역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자리한다. 대표적으로 1969년 한국 문화의 독립을 선언하며 순수 예술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모든 예술을 통합"하여 소통하고자 「제 4집단」을 결성했고, 시대의 변화를 예견했던 관객 참여적 메일아트인 「매스미디어의 유물」(1970)을 발표했으며, 대지미술 「현상에서 흔적으로」(1970)를 통해 예술 작품의 물질성과 시간성에 관해 성찰했다. 이외에도 각종 퍼포먼스, 실험 영화 「1/24초의 의미」(1969) 등 시대를 앞서갔던 그의 예술 정신과 다양한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다각도로 재조명되고 있다. 김구림은 이러한 많은 업적들에서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실험정신을 발휘해왔으며, 현재까지도 시대를 꿰뚫어보는 시각으로 왕성하게 작업에 임하고 있다. ● 80년대부터는 모든 현상을 포용하는 동양적 우주의 원리를 담은 '음양'사상을 구축하여 오랜 시간 작품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음양'의 개념은 형식과 매체에 구애받지 않는 작가의 작업 방식을 잘 설명해주는 개념으로, 현재까지도 설치, 회화, 콜라주, 영상 등 다양한 작품들로 표상된다. 김구림은 작업 활동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특정 장르에 머물거나 유행과 타협하지 않고 모든 선입견을 거부하며, 실험적 예술에 대한 강한 의지를 지켜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다양한 전 작업들 중 신작인 대형 설치와 영상 등을 선택적으로 살펴봄으로써,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서의 인간의 삶과 자연의 의미에 관한 작가의 성찰적 작품들에 집중하고자 한다. ● 현대 문명 속 인간에 관한 주제는 김구림의 작업세계에서 80·90년대에 이어 현재까지도 오랜 시간 직간접적으로 이어져왔다. 사실 시대의 양상을 간파하고 사회를 예술로써 변화시키고자 하는 태도와 시각은 김구림이 이미 1969년 「제4집단」을 통해 내세운 중요한 비전이었다. 유진상이 말하듯 김구림이 세웠던 "「제4집단」의 과도하리만치 야심만만한 혁명적 비전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자본과 물신, 가상적 가치들, 생명경시, 환경의 황폐화 등으로 인해 가속화되는 세계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더욱 유효한 것으로 인정된다." 또한 초기의 영화 작업에서도 당시의 문명인의 삶의 형태에 관한 그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데, 앞서 언급했던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1969)에서는 현대인의 건조한 일상과 도시의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속도감 있게 표현하며, 최초의 누드 영화 『문명, 여자, 돈』(1969)에서는 물질문명,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의 개인의 삶을 풍자적인 시각으로 나타낸다. ● 특히 '음과 양'개념을 심화한 80년대부터는 다양한 일상의 오브제들과 회화, 사진 등을 한 작품 안에서 중첩시키는 방법으로 복잡하게 교차하고 충돌하는 문명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시각화한다. '음과 양'으로 함축되는 일련의 작품들은 상반되는 이미지들이 공존함으로 인해 하나의 의미를 결정하기 어려운 다면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90년대 초반 콜라주 작품들에서 자연물, 모형 비행기, 쇠붙이, 광고 사진 등을 결합하거나, 「음과 양 99-S 211」(1999)같은 작품에서처럼 컴퓨터 부품과 공업용 환풍기, 신문들을 한데 모아 놓는 등의 설치 방식은 산업사회의 산물들과 대중문화 이미지, 자연적 요소들이 얽힌 현대사회의 구조를 잘 드러내면서 그 속의 인간의 삶을 암시한다. ● 문명과 인간에 관한 김구림의 생각들은 현재까지 이어지는데, 그가 '문명'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물질주의, 과도한 산업화 등이 불러온 폭력, 자연 파괴, 과욕과 인간성의 상실 등이 더욱 심화되며 뒤얽힌 현재의 카오스적인 시대가 그에게 문명 속 인간을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만든 '오늘날의 초상'은 이번 전시의 대표 신작 「음과 양」(2015)에서 잘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도 인간 신체와 이질적인 문명의 요소들을 결합하여 그 불편한 관계를 노출시킨다. 거대한 무덤에 갇힌 인간 형상과 길을 잃은 네비게이션 모니터들을 병치해 놓은 것에서 물질문명이 정신적 가치보다 중시되고 디지털화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성의 죽음과 인간 소외를 상기시킨다. 무덤의 거대한 크기로 인해 보는 이들은 누군가의 무덤을 파헤쳐서 보는 것 같은 실감나는 상황에 직면하는데,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보는 이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공포스러운 예감을 이끌어낸다. 이 외에도 김구림의 작품에서 TV와 전자기판, 해골 형상, 잘린 신체, 그을린 시체 형상 등의 이미지들은 문명 속에서 인간 생명의 위기를 표상하는 모티프들로써, 특히 2000년대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맥락으로 여러 작품들로 확장되고 이어진다. ● 작가는 1969년 메일 아트 「매스미디어의 유물」을 통해 언젠가 편지라는 활자미디어가 사라질 것이라 예견했던 것처럼, "문명이 인간을 전부 바보로 만든다."라고 말하면서 차가운 무덤에 갇힌 시체의 모습으로 문명에 갇혀 주체성을 상실해가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한다.


김구림_음과 양 11-S.43_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아크릴채색_100×200cm_2011


김구림_음과 양 8-S.155_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아크릴채색_162×226cm_2008


김구림의 「진한 장미」(2014)와 본질적 아름다움 ● 문명이 오히려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김구림의 생각은 문명이 자연 그리고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에 관한 탐구로도 이어진다. 작가는 특히 2000년대에 들어와서 현재까지 다양한 작품들로 정신적인 가치를 도외시하고 물질적, 육적인 욕망과 천편일률적인 미(美)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시각을 비판하며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의 형태를 표현해왔다. 자연스러움과 내면의 아름다움에 반대되는 '인위적인 아름다움'에 열광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김구림의 이전 작품들에서는 대표적으로 성형 중독에 관한 이슈로 집중되어왔다. 2000년대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후 성형외과들이 즐비한 광경을 보고 작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특히 2000년대 이후로 여러 작품들에서 문명사회에서의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선보이는 영상 작품 「진한 장미」(2014)에서는 우리가 깨달아야할 인간 본연의 태도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을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영상에서는 상징적인 붉은 입술을 등장시키고 이어서 공자, 맹자 등 동양의 옛 성현들의 말씀들을 나열하는데, 이를 통해 다변하는 물질문명 사회에서 더욱 절실하게 생각되어야 할 내면의 성찰에 관한 이야기를 담는다.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붉은 입술은 다양한 김구림의 작품에서 주로 유혹적, 육체적, 도시적 뉘앙스를 드러내면서 현대인들의 욕망의 에너지들을 상징하는데 동시에 '입'은 "생명을 영위하는 구멍이자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가능한 기관"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도 내포한다. 주술적 예술로 사회적 변화와 치유를 모색했던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들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 작품에서 김구림은 마치 천상의 성자와 같은 목소리로 성현들의 말씀들을 읊는데, 그의 진지한 가르침을 통해 잊고 있었던 정신적인 성숙함의 필요성을 되짚어보게 한다. ● 인간의 내면적 고찰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사라진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자연환경에 대한 이야기에 그 근본이 있다. 문명과 자연의 관계는 작가가 80년대에 미국 맨해튼에 거주할 당시부터 자연이 "문명 속에 갇혀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꾸준히 이어져 온 주제이다. 미국 거주 당시 캔버스에 나무 모양의 그늘을 그린 여러 작품들을 비롯하여 나뭇가지 등의 자연물들은 작가의 작품에서 종종 등장한다. 신작「음과 양_12-s.26.」(2015)에서는 잘려진 나무, 모형 동물의 파편, 쇳조각, 부품과 같은 폐기물들과 인조잔디를 결합함으로써 자연 훼손을 경계하는 시각을 드러낸다. 작가가 "깨어지고 찢겨지고 더러워지고 버려진 사물은 나의 손에 의해 다시 조립되고 해체되어 변신을 거듭하면서 소생시켜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아낸다."라고 말하듯 자연과 기술문명의 잔재들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을 통해 파괴된 자연을 진단하고 인간과 자연이 그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반성적 사유를 재촉한다. ● 김구림은 한국 아방가르드 예술의 시초가 된 초기의 작업 활동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습과 고정관념을 벗어난 매우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에 임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물질문명 사회 안에서의 인간과 자연의 위기를 키워드로 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 사실 김구림은 시간의 흐름, 생성과 소멸 그리고 모든 생명의 존재를 아우르는 '음과 양' 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시대정신과 그 변화를 다층적으로 포용하는 보다 더 넓고 깊은 의미들을 통찰한다. 작가의 작품들을 어느 하나의 주제나 의미로 단정할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모습들을 예리한 감각으로 표상한 작가의 성찰적인 작품들은 격정의 현대사회 속 우리의 삶을 비춰보도록 하며 이는 김구림의 작업이 동시대 미술의 핵에 자리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김구림은 단 한 번도 머뭇거린 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예술적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의 작가정신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김영성_無·生·物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4


김영성_無·生·物_캔버스에 유채_73×117cm_2015


김영성_無·生·物_캔버스에 유채_73×117cm_2015


김영성의 「無.生.物」에 나타나는 문명 속 인간의 죽음 ● '살아있지만 보잘 것 없이 여겨지는 것들' 혹은 '보잘 것 없지만 살아 있는 것들'은 김영성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어왔다. 90년대 초기 작업에서부터 작가의 전 작업의 근간이자 제목이 되어온 '무·생·물(無.生.物)' 개념은 인간 그리고 생명체들이 '생명 없는 물체'와 뒤섞여 그 생을 위협받는 물질문명 사회의 양상을 함축한다. 본래 조각과 입체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주로 인간과 동물의 신체와 인공물이 어우러진 입체, 설치, 콜라주 작품에 집중하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달팽이, 금붕어, 개구리 등의 작은 생명체를 극사실회화로 표현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 인간에게 드리워진 문명의 그림자는 주로 파편적인 신체와 건축물의 잔해 등의 요소들을 결합한 초기의 입체, 설치 작품들과 콜라주 연작인 '검은 그림(black painting)'들로 다소 직접적으로 표상된다. 초기의 작품들에서 인간의 모습은 온전하게 찾아볼 수 없는데, 대부분 이미 죽은 시체이거나 죽음에 임박한 모습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입체 작품 「無.生.物」(1996)에서 철골이 드러난 콘크리트에 파묻힌 인간으로 그 처참한 죽음을 드러내거나, 「無.生.物」(1995)에서 박제된 고양이 시체와 네온사인을 결합하는 등 죽음의 적나라한 표현은 문명사회 안에서의 생명의 위기상황이 구체화된 것이다.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인간과 동물 시체를 촬영한 흑백 사진과 전자 기판과 같은 기술문명의 잔해들을 오버랩한 검은 그림 콜라주를 볼 수 있는데, '무·생·물' 주제로 이어졌던 이러한 일련의 입체, 설치, 콜라주 작품들은 그 제목에서 드러나듯 생명과 이질적인 문명의 요소들을 병치하는 방법을 두드러지게 활용한다. '생(生)'과 '물(物)'을 상징하는 다양한 요소들은 충돌하거나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의미와 상징들을 만들어낸다. ● 문명 속 인간의 죽음을 표상하는 작품에 종종 사용된 검은색은 생명이 소멸되어가는 상황을 암시하는데, 그 자체로 인공물인 검은 폴리코트(플라스틱의 일종)는 과도한 개발, 산업화, 공해 등 자연과 생명에 반대되는 것들로서 초기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사실 인간과 파괴적인 인공물을 극명하게 대비하여 죽음을 다소 직접적으로 표상하는 이러한 작품들은 1995년에 일어났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참담함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검은 회화'를 비롯하여 초기 입체와 설치 작품들을 통해 단지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특정 사건과 트라우마에 천착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물질문명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황폐하게 하고 죽음을 재촉한다는 확장된 이야기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작가의 구작을 현재에 재조명하는 것은 문명이 인간을 죽음으로 이끈 대표적인 '그 사건'에 관한 작품들을 통해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명사회 속 생명의 문제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보기 위함이다.


김영성_無·生·物_혼합재료_72×84cm_1996



김영성_無·生·物_혼합재료_210×70×70cm_1995



김영성의 극사실 회화와 작은이들을 위한 연극 ● 인간 생명에 관한 김영성의 탐구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부터는 작은 생명체로 집중되어, 곤충이나 개구리와 같은 생물과 작은 인공물을 결합한 극사실회화로 변화된다. 형식적으로는 초기의 해체적인 설치물에서 극사실회화로 두드러지는 변화가 있었지만, 인공물과 생명체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생명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무·생·물'개념은 일관적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어렸을 적 초등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사거나 곤충을 기르던 순수한 동심은 김영성이 극사실회화에 임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개구리와 달팽이 등을 직접 기르고 생태를 파악하는 것에서 작품을 시작하는데, 스푼이나 유리컵 등에 이들을 올려놓고 가장 적절한 순간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섬세한 회화로 담아낸다. ● 얼핏 보면 지극히 '사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김영성의 회화 작품에는 다분히 인위적인 요소들이 연출되어있다. 고급스러운 실크 위에 곤충이 놓여있다거나, 물 컵 안에 금붕어가 있는 것 또는 티스푼 위에는 개구리와 달팽이가 올려져있는 것이 그러하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연출된 이 낮선 상황은 사진으로 촬영하고 포토샵 프로그램을 통해 사진의 색감과 채도를 조정한다. 작가는 카메라를 사용하거나 포토샵을 거치는 과정까지도 '현대문명을 활용하는 과정'으로 의식한다. 사진은 그 자체로도 작품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극사실회화를 위한 자료로 활용되는데, 최종적인 작품은 회화이지만 이러한 아주 작은 '연극적 설치'와 '사진'은 김영성의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층을 이루는 중요한 과정이다. ● 실제와는 다른 이미지의 크기도 주목해야할 요소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같은 생물 중에서도 가장 작은 종을 작품의 소재로 택하여 캔버스의 화면을 장악할 정도로 크게 표현한다. 또한 한 화면에 하나의 생명체만을 담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 위의 주인공과 같은 느낌을 증가시킨다. 회화 속 생물들은 현실의 모습과는 다르다. 수백 수천 배나 커진 그들은 우리와 눈을 맞추는데, 우리가 데리고 놀던 곤충은 작품 속에서 단단하고 거대한 뿔을 앞세운 전사(戰士)처럼 근엄해 보이기까지 한다. ● 치밀한 이 회화들은 사진으로 담지 못하는 대상의 '본질'을 담고 있다. 김영성의 목표는 "사진과 비교해도 이길 수 있을 정도의 극도의 리얼리즘"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실제 사진을 활용함으로써 스스로 연출한 작은 세계에 대해 "그것이-존재-했음(ça a été)"이라는 강한 증거를 확보하지만 동시에 사진은 뛰어넘어야 할 '매개'인 것이다. 작가는 갖가지 연출과 세밀한 묘사를 거쳐 보잘것없이 여겨지는 생명들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봐달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나 결코 작가의 관심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특정 생명체들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인간의 생명조차 경시되는 물신의 사회에서 '가장 쉽게 여겨질 수 있는 생명'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하필이면 먹는 유리컵, 스푼 등을 결합한 것은 이들이 식용, 실험용, 관상용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작가는 어떠한 '목적'에 의해 생명이 희생되는 물질문명 시대의 상황들을 의도적으로 연출하여 이를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 문명 속 생명의 문제를 성찰하는 것과 더불어 김영성의 극사실회화에서는 우리가 지나쳤던 시각적인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작가가 회화를 통해 작은 생명체에 집중하는 것은 이들의 색깔과 형태에서 희귀하고 오묘한 시각적인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보는 이들은 회화 속 작은 생명체들의 섬세한 색과 형태에서 놀라울 정도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너무 작아서 우리의 눈으로 쉽게 볼 수 없었던 것들을 포착해내기 위해 작가는 캔버스와 사투를 벌인다. 수십 자루의 세필로 붓 자국이 거의 없는 화면을 구성하는데, 아주 작은 부분의 음영이나 색감, 형상도 민감하게 포착하여 호흡을 고르며 오랜 시간을 들여 작품을 완성한다. ● 한 생명을 그려내기 위한 이 모든 행위들은 하찮게 치부되는 작은 생명들을 위한 작가의 헌신에서 나온다. 김영성의 작품은 사진을 모방하거나 현실의 어느 한 부분을 그대로 재현한 것을 넘어선다. 아니 오히려 현실적인 규칙에 의한 익숙한 상황들을 전복시킨다. 우리가 살면서 아주 작은 존재가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김영성은 대상의 '본질'에 가장 가까워지기 위해 극사실의 기법을 사용하지만 현실에는 없는, 가장 작은이들이 의기양양한 주인공이 되는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 김지예



Vol.20150904c | 그냥 지금 하자-김구림_김영성 2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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