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의 대형 문화공간 갤러리인사1010의 기획전시
웃음 잃은 현대인에게 삶의 활력소 줄 13인의 작업
성신여대 임상빈 교수, '유머라면' 전시 등 3건 기획

 

[서울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의 거리'라 하지만 인사동에는 자체적으로 기획전을 펼치는 미술공간은 의외로 많지 않다. 선화랑, 노화랑, 갤러리가이아 등 몇몇 화랑만이 꾸준히 기획전시를 여는 정도다. 나머지 공간들은 대체로 작가에게 장소를 빌려주는 대관화랑이다.

 

 '유머라면(On Humor)'에 출품된 이경훈의 'Catch Me'. 2019. 116x91cm. 린넨에 오일.[사진=갤러리인사1010] 

 

이런 상황에서 인사동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갤러리인사1010(관장 김수진)이 최근 문을 열었다. '인사동의 상징과도 같은 갤러리가 되겠다'는 목표와 '인사동10길 10'이라는 도로명 주소에서 '1010'을 따와 '갤러리인사1010'으로 이름을 붙인 이 화랑은 2년 여의 준비과정과 과감한 리노베이션을 거쳐 올여름 새 모습을 드러냈다. 한동대 코너스톤홀 등을 디자인했던 건축가 김명준(제이유엔건축사무소 대표)은 기존 갤러리 건물의 뼈대만 남긴 뒤 세련되고 기품있는 문화공간을 새로 만들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총 5개 층으로 이뤄진 갤러리인사1010은 4개 층이 전시공간이고, 지상 2층은 아트카페(티 라운지)로 구성돼 있다.

지난 6월 개관 이래 두 차례의 개관전시를 성황리에 마친 갤러리인사1010은 8월말부터 세가지 테마의 현대미술전시를 갤러리 전층에서 열고 있다.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임상빈 교수("예술적 얼굴책' 등의 저자)와의 공동기획으로 4개 층에서 3개의 기획전을 오는 9월 18일까지 개최한다.

 

수많은 닭들이 끝없이 이어져 전혀 다른 형상을 드러낸 김경원의 '조우,빛이 되다'. 91X117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22. [사진=갤러리인사1010] 

 

첫 번째 전시는 회화 및 조형 작가 13명이 참여한 그룹전 '유머라면(On Humor)'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전시는 날로 팍팍해지는 세상, 메말라가는 우리의 감정을 부드럽고 풍성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유머감 넘치는 작업들을 한데 모았다. 1층과 3층에서 열리는 13인의 작품들을 모두 감상하고 나면 굳었던 마음이 눈녹듯 스르르 녹는다. 그야말로 간만에 접하는 유쾌, 상쾌한 전시다. 

13명의 작가들은 유쾌한 웃음과 그 이면에 담긴 삶의 페이소스를 다양한 조형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을 대중들의 포토존으로 만든 발랄한 조형물의 주인공 김경민 조각가, 하나의 동물이미지를 끝없이 반복하며 전혀 새로운 형상으로 독특하게 재창조해내는 김경원 작가의 섬세한 회화 연작이 나왔다.

 

김태형 '가벼운 보금자리'.180X240cm. 장지에 아크릴잉크. 2018. [사진=갤러리인사1010] 

 

또 험상궂은 외모와는 달리 '허당끼' 가득한 귀여운 건달을 입체로 표현하는 김원근 조각가, 아이를 돌보며 늘 마주치는 숨막히는 일상을 엉뚱한 상상력에 대입해 기이한 화폭을 드러나는 김태형 작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토끼를 따라가면 마주칠 듯한 정경을 강렬한 색감으로 그리는 이경훈 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인간에게 이롭기도 하고, 두렵게도 만드는 AI를 예수와 수녀에 대입해 경이감을 선사하는 이지환 작가, 끝없이 이어지는 몽글몽글한 구름 속 세계로 관객을 인도하는 이흙 작가,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불안을 풍자로 지긋이 풀어내는 이흥덕 작가도 작품을 출품했다.

 

장수지 '소,녀'. 116X91cm. 장지에 혼합재료. 2016. [사진=갤러리인사1010] 

 

자아를 '목이 긴 소녀'에 투영해 내면의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장수지 작가, 손과 발이 없는 기괴한 인체를 통해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정복수 작가, 표정없는 얼굴과 이와 대치되는 강렬한 컬러의 캐릭터 마요·마토를 선보이는 최나리 작가,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살짝 비틀어 익살스럽게 만드는 최석운 작가, 오랜 친구와도 같은 새 캐릭터 '토코토코'와 여러 동물을 팝아트적으로 구현하는 토코토코 진 작가도 참여했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경쟁과 목표를 향해 진격하느라 긴장할대로 긴장한 도시인들의 심상을 유연하게 풀어주며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13명 작가들의 기발하고도 재치 넘치는 작품들은 여유를 갖고 긴장을 풀어야만 비로소 새로운 길이 보임을 말없이 보여준다.

 

최석운 '가족1'. 53X45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22. [사진=갤러리인사1010] 

 

기획자이자 그 자신 작가이기도 한 임상빈 교수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유머력(?)이 특출난 13인의 작가를 모았다. 유머는 사람을 웃게 만든다. 그 때만큼은 먼지처럼 걱정 근심 털어내고, 국물처럼 시름도 덜어낸다. 웃는 건 사람만의 특권이다. 이는 이상적인 꿈을 향한 낭만주의 권법이다"라고 했다.

두 번째 전시는 최근 개인전 및 여러 아트페어를 통해 MZ세대 애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가구디자이너 함도하 작가의 개인전이다. 갤러리인사1010의 4층 전시관에서 '나와 함께(With Me)'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작품전에는 재기발랄하면서도 독특한 작가의 신작들이 다채롭게 출품됐다.

함도하는 "인간관계에서 소통의 핵심인 '감정'이 꼭 인간에게만 존재할까라는 질문에서 나의 작업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작가는 가구라는 사물에 감정을 투영하는 뜻밖의 발상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객이 작가가 제시한 감정은 물론,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가구와 교류하기를 바라고 있다. 함도하는 가구가 가진 형태 뿐 아니라 문양과 색감을 가구에 감정을 불어넣는 요소로 차용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관객은 의인화된 가구가 가진 의미와 표현에 대해 다양한 주관적 해석을 하고,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함도하 '풍선,Dona'. 아크릴. 도장 FRP,크롬풍선.2022. [사진=갤러리인사1010] 

 

함도하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팔다리가 달린 의자 '톰'과 '도나'는 다이나믹한 제스처와 청량감이 느껴지는 비비드한 색감이 특히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편 갤러리인사1010의 지하 1층 전시장에서는 성신여대 서양화과 출신으로 구성된 '스튜디오 오버파워' 작가 20인의 연합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타이틀은 '자의식 과잉(Over Self-Consciousness)'이다. 스튜디오 오버파워의 젊은 작가들은 묻는다. '현실에서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애정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대하고 있을까'라고. 그리고 20명의 젊은 작가들은 저마다의 작품을 통해 '자의식 과잉'이란 타이틀과는 정반대로 '자신을 자꾸 비하하는 당신, 이제 과하다 싶을만큼 스스로를 사랑해도 괜찮다'라며 역설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들은 외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너 자신을 알라.' 우리 스튜디오 오버파워가 대답한다. '이미 잘 알고 있거든요!'라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짧다고 강조하는 작가들의 자기애 가득한 작품들은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존재임을 느껴봐'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임상빈 교수와 함께 전시를 공동기획한 김수진 관장은 "두 건의 도자기 전시를 통해 개관을 알린데 이어 이번 현대미술전시를 기점으로 앞으로 현대미술을 본격적으로 다룰 것"이라며 "갑갑한 마스크를 낀 채 생활한지 오래고, 시대는 진지함을 넘어 결연함을 요구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유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전시를 기획했다. 삭막한 일상에 소슬바람처럼 싱그러움을 주는 기발하고 위트 넘치는 작품들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어 "갤러리인사1010은 한가위 연휴에도 쉼없이 문을 열 것이다. 밝은 색감과 활기찬 선들, 따뜻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우리에게 닥친 곤란과 일상의 벅찬 무게를 잠시 잊게 해줄 회화와 조각을 가족과 함께 즐겨달라"고 덧붙였다. 갤러리인사1010은 추석연휴에도 개관한다. 단 매주 화요일은 휴관. 무료입장.

 

art29@newspim.com

A Repetitive landscape 반복적 풍경
김경원展 / KIMKYUNGWON / 金輕願 / painting
2018_0228 ▶ 2018_0306



김경원_Overlapping Cow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45.5×65.1cm_2016~7



초대일시 / 2018_0228_수요일_05:00pm

2018 제7회 갤러리이즈 신진작가 창작지원 프로그램 최우수 선정작가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관훈동 100-5번지)

Tel. +82.(0)2.736.6669

www.galleryis.com



소와 닭이 만든 점입가경의 풍경 ● 김경원의 작품에는 동물이 가득하다. 작품들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지만, 막상 잘 모르는 그 동물들의 면모를 활용한다. 작품 속 젖소의 얼룩이나 닭의 벼슬 같은 부위는 수 천 번을 반복해도 똑같을 수 없는 기이한 형태를 가진다. 얼룩과 얼룩이 엉키거나 벼슬과 벼슬이 엉키면 기이한 게슈탈트를 만들어내고, 보는 이의 심리상태에 따라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형되어 나타날 것이다. 또한 그것들은 작품에 따라 리좀처럼 줄줄이 연결되어 특정할 수 없는 보다 더 자유로운 형태가 되기도 한다. 산뜻한 배경색을 가지는 동물들의 율동감 있는 배열은 경쾌하다. 그것은 고기의 절단면 등에서 나타나는, 부분이 만들어내는 패턴이 아니라, 온전한 전체가 만들어내는 패턴이다. 작품에 투여되었을 엄청난 노동력은 김경원의 작품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김경원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눈속임이 아니라, 밀도와 강도인 것이다. 밀도와 강도에서 나오는 의미는 특정 소재의 의미만큼이나 강하다.


김경원_Overlapping Wav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60.6×72.6cm_2016~7


김경원_Re-product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72.7×90.9cm_2016~7


김경원_Overlapping 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80.3×100cm_2016~7


작가는 일상, 또는 노동하는 삶에서 야기되는 반복을 작품을 통해 변주한다. 예술 속 반복은 차이가 있었다. 노동 같은 반복이지만 되돌아오는 지점은 같지 않다. 중요한 것은 현실 속의 환상, 또는 환상 속의 현실이다. 현실과의 동어반복, 아무런 필연성이 없는 유희가 무가치할 뿐이다. 한 작품에 꼬박 몇 달이나 걸리는 작품들은 유제품을 좋아하는 아주 단순한 계기로부터 시작되었다. 화가들은 대체로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그리고 나면 좋아하게 된다. 작업을 통해 대상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것이다. 수천마리의 소와 닭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배치되면서 다양한 서사를 이끈다. 조형적으로는 동물 한 마리 한마리가 원자처럼 이합집산하면서 세계를 이루는 광경을 연출한다. 전시된 작품 속 소와 닭들은 한쪽 방향 만을 보고 있는데, 그것은 밀집 사육의 방식에 의한 결과이다. 발전이란 곧 생산력의 증대를 의미하게 된 현대에 한쪽 방향만을 향한 배치는 그 자체로 풍자적 메시지를 가진다. 

 


김경원_Overlapping curv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162.2cm_2018


김경원_Overlapping Li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100cm_2017


김경원_Overlapping rul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cm_2018_측면

작품 속 동물의 반복은 그것들이 하나의 개체이기 이전에, 상품처럼 대량 생산되는 면을 반영한다. 대량 생산/소비의 덫에 걸린 생명과 대중은 비슷한 운명을 가진다. 과학기술이 정확한 재현(재생산)을 꾀한다면 예술은 차이를 내재한 반복이다. 21세기 정보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화가의 작품에는 많은 기계적 반복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수작업으로 행해지는 회화는 아무리 정밀해도 기계적 반복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김경원의 작품은 디지털 문화 내지 생산지상주의 논리에 내재된 반복과 다른, 차이를 가진 반복이며 치유의 의미를 지닌다. 한 작품에 수천마리의 닭이나 젖소를 집어넣는 작품들에는 한 두마리의 동물이 아닌 모든 동물에 대한 작가의 바램이 담겨있다. 작가가 선택한 닭과 소들은 일종의 어휘가 되어 조합되고 여러 맥락을 만들어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것은 형태를 겹쳐서 또 다른 형태를 만들어내는 방법론이다.


김경원_Cycle_강철에 아크릴채색_65×65×10cm_2018


김경원_stroll sculpture_강철에 아크릴채색_11×22×6cm_2018


김경원_Line 5_강철에 아크릴채색_16×28×5cm_2018

김경원_Rhythm 4_강철에 아크릴채색_20×28×5cm_2018


세상을 이루는 원자같은 작품 속 동물들은 보다 큰 형태의 하위 요소가 되는 경우이다. 한 방향만을 향하는 선적 사고는 근대에 와서야 보편화 되었다. 그러나 보다 보편적인, 자연의 주기에 바탕 한 순환적 세계관에서 삶과 죽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돈다. 단기적 이익에 초점을 맞춘 생산중심주의 사회에서 동물이 기계적 반복, 즉 죽음의 상징이라면, 인간 또한 같은 운명을 따른다. 생명공학은 동물을 기계로 본 근대주의의 확장으로 인간 또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역설적으로 동물과 인간을 구별한 근대적 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의 동일성을 가정하게 된다. 그것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김경원은 이러한 폭력적 일 방향성에 역행하여 수단을 목적으로 승화시키려 한다. 김경원의 첫 개인전 작품들은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문명에 대한 비판을 아우르고 있다. 그것들은 점점 확장되는 진폭으로 출렁거릴 것이다. ■ 이선영



Vol.20180228c | 김경원展 / KIMKYUNGWON / 金輕願 / painti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