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감 The Gangwon Pictorial Book, 江原圖鑑

나광호/ NAKWANGHO / 羅鑛浩 / painting.printing

 

2023_0810 2023_0909

나광호_맨드라미_실크스크린, 아르쉬지에 아크릴채색_91×116.7cm_2023

 

개막식 / 2023_0810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2023 OCI 어게인 : 귀한인연

후원 / 강원특별자치도_강원문화재단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

(수송동 46-15번지) 3

Tel. +82.(0)2.734.0440

www.ocimuseum.org

 

종이에 피어난 잡초 다작하기로 유명한 나광호는 평면 회화 범주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늘 색다른 시도를 선보인다. 물감의 맛이 농후한 그림들도 꾸준히 그렸고, 특히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처럼 판화 기법 또한 오래전부터 연구하고 활용해 왔다. 그에게 형식이나 매체를 구분 짓는 행위는 크게 유의미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작가적인 태도 혹은 목적이 그가 지금까지, 앞으로도 수많은 작품을 생산해 낼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나광호_질경이_실크스크린, 아르쉬지에 아크릴채색_80.7×121cm_2023

강원도감 전시의 제목 강원도감(The Gangwon Pictorial Book, 江原圖鑑)은 나광호가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대학 출강을 위해 강원과 현재 거주지인 남양주를 오가며 길가에서 만났던 식물들의 '도감'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다. 지역을 넘나드는 고속도로 위에서 보낸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시야에 잡히는 풍경에 익숙해졌고, 매주 지나던 길의 자연이 날씨나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상황은 그를 차에서 내리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발밑에 즐비한 풀과 꽃에 눈을 마주쳤고, 보살핌과 관심을 받지 못했음에도 한여름의 무더위와 한겨울의 추위, 따가운 폭우와 매서운 눈보라를 묵묵하게 견디며 생경한 색채로써 생명력을 뽐내는, 그 무엇보다 꿋꿋한 모습을 보았다. 특별한 쓰임이나 효용이 없는, 소위 '잡초'라 불리는 식물들에 마음이 갔다. 그래서 그들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판화로 찍어 만든 이미지로 '도감'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 맨드라미, 질경이, 산딸기등 작품의 소재들은 모두 길에서 자생하는, 흔히 만날 수 있는 대상들이다. 사람에 의해 밟히고 발길에 따라 생존의 모습이 달라지는, 야속하지만 수동적인 삶이다. 그들을 종이에 옮긴다. 길가의 식물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던 것일까. 본래 도감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실용적 자료로서 존재해 왔다. 그러나 온갖 정보가 만연하고 접근이 쉬워진 오늘날의 사회에서 실용성을 상실한 도감을, 그것도 굳이 오랜 시간과 품을 들여 제작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아가 식물학이나 과학, 역사학 등의 학문에 기저를 두고 시작하는 것이 아닌, 미술 작가로서 식물들의 이미지와 조형성에 집중하여 현대판 도감을 제작하는 것은 기존의 도감이 갖고 있는 역할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 인간의 관심 밖에 존재하던 길가의 잡초를 화폭으로 들여와 시간을 쏟는 다정한 (어찌 보면 무모한) 행위에 직접 개발한 독자적 판화 기법을 적용하여 외면받던, 쓸모없던 대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광호는 이와 같은 태도를 자신의 작가노트를 통해 '침몰하던 타이타닉 호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연주자'에 비유한다. 무쓸모 자체가 쓸모가 될 수 있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찾는 일. 여기에 나광호가 생각하는 미술의 의의가 있다. 실용의 영역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분야가 예술인 것은 어느 정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작품 제작에 있어 통상적이어 왔던 것과 안전할 수 있는 길을 의도적으로 거부해 왔다. 이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태도로, 작가가 지금까지 보여준 작품 활동의 근간이자 핵심이다. 언제나 존재했지만 쉽사리 주목받지 못한 식물에 몸을 낮춰 관심을 주고 오랜 시간을 들여 그림으로 재탄생시키는 방식, 나아가 그 작품들에 하나하나 액자를 맞춰 주고 전시실로 들여와 환한 조명을 선사하며 관객과 동일한 눈높이에서 눈을 맞추게 하는 형태를 통해 소외된 것의 존재감을 극대화하고, 그들을 '도감'의 형태로 기록하여 실재(實在)를 드러낸다. 소외된 대상을 '작품'의 지위로 끌어 올리는 것. 그들의 형태와 색감을 회화적으로 구현하고 조형적 가치를 부각시키는 것. 이것이 나광호가 만들어 낸 '도감'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나광호_천인국_목판화, 아르쉬지에 옵셋잉크_90×106cm_2023

일반적 판화 공정을 거부하다 나광호는 기존의 판화 기법을 수용하되, 본인이 개발한 독자적 방식을 접목하여 보다 창의적인 과정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그가 이번 전시 출품작 제작을 위해 활용한 기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한 화면 위에 직접 물감을 덧칠하여 채색하는 방식이다. 검정 잉크로 찍어낸 1도 화면 위에 다른 판으로 2, 3도 이상의 색 면을 차례대로 찍어내는 대신 붓에 일정량의 색상 잉크를 머금고 채색을 원하는 해당 영역에 떨어트려 스트로크 없이 판판한 면을 만들어 마감한다. 그렇기에 고도의 집중력과 기술력이 요구되며 완성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수없이 반복하여 채색이 완료되면, 잉크가 올라간 표면 위에 마지막으로 다시 검정 잉크를 사용해 처음과 동일한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찍어낸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역시 망점은 생성되기 때문에 관람자로 하여금 그야말로 실크스크린 판화처럼 보이게 한다. 장점은 색채 사용에 있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기존의 한계점을 극복하여, 색의 사용이 무한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더욱 회화적일 수밖에 없는 화면을 구축해 낸다. 두 번째는 4도 목판화 기법이다.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제작 방식과는 차이를 보인다. MDF 합판에 세공용 드릴로 자연물의 사진들을 새겨낸다. 그 후 잉크를 묻혀 종이에 찍어내는 방식은 기존의 목판화 제작법과 유사하지만, 이 단계에서 결정적 차이가 생긴다. 판에 바르는 잉크의 양, 잉크의 건조 속도가 그것이다. 보통 목판화를 찍어낼 때는 잉크의 양이 중요하다고 배운다. 너무 많은 양을 바르면 찍어내는 과정에서 번지는 등 변수가 커지기 때문이다. 잉크의 양을 조절하여 찍어내면, 다음 판을 올리기 전 충분한 건조 시간이 필요하다. 완벽하게 건조시킨 종이 위에 새로운 판을 찍어낸다. 나광호는 정확히 이와 반대되는 기법을 구사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잉크는 최대한 두툼하게, 그리고 마르기 전에 빨리 찍어낸다. 물론 처음부터 성공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목판을 찍어내니 이전에 찍은 잉크와 새로 바른 것이 적절히 스미고 섞이면서 보다 극적인 화면이 만들어졌다. 색채는 더욱 다채로워지고, 명암이 극대화되고, 두터운 잉크의 두께로 마감된 표면은 플랫한 판화와는 명확히 다른 묘한 깊이감을 선사한다. 그렇게 찍어낸 이미지 밑에 부착된 이름표들이 눈에 띈다. 쓰인 이름들은 모두 해당 식물의 영문명이 아닌 학명이다. 모두 도감의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한 결정적 단서로 작용한다. 종이에 바로 적기도, 다른 종이에 써서 오려 붙이기도, 스탬프를 만들어 찍기도,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내기도 했다. 이름표를 붙여주는 방식에서도 쉽고 편한 길이 아닌, 굳이 어려운 길로, 수많은 갈림길로 돌아가려는 고행적 태도. 그러나 그 과정을 누구보다 즐기고, 누구보다 신나게 돌아가는 자세는 끝없는 시도를 통해 예술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는 나광호의 작가적 면모를 체감할 수 있다.

 

나광호_참나물, 취나물, 머위, 조선배추_목판화, 한지에 석판화잉크_110×164cm_2023
나광호_산딸기 잎_목판화, 한지에 석판화잉크_60×162cm_2021

괴물 인간 나광호가 갖고 있는 정체성에 주목하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언제나 자신 있고 열성적으로 작품의 제작 과정이나 내용에 관해 설명해 주는 작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면의 치열했던 시간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한 학기마다 10개 내외의 강의를 거뜬히 출강하고, 여전히 신진작가의 자세로 공모전에 도전하는 전투적 태도에 여유로움까지 탑재한 그의 모습에서는 비범함까지 드러난다. 그의 내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작품의 밀도로 고스란히 환원된다. 어느 날의 대화에서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살면서 만난 많은 분이 제게 여러 별명을 지어 줬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이 있습니다. 바로 '괴물'입니다." '괴물'이라는 별명은 학창 시절 얻었다. 같은 실기실을 사용하던 동기들이 겪은 나광호는 일과시간 동안 조교로서 일하고, 퇴근 후 늦은 밤 실기실로 돌아와 동이 트기 직전까지 100호 크기의 유화 한 점을 뚝딱 완성하고 홀연히 사라지더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모두가 하나같이 혀를 내두르며 그를 '괴물'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괴물'. 얼핏 들으면 부정적 이미지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별명의 배경을 듣고 나면, 그리고 작가가 지금까지 작품에서, 나아가 그의 삶에서 보여왔던 자세와 태도를 이해한 후 받아들인다면 단연 최고의 칭찬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포기를 모르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기민하게 치환하는 그의 태도가 배어 있으니 말이다. 작가로서 지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체력이라면서 하루에 줄넘기를 5천여 개씩 뛴다는 그에게 도인의 아우라를 엿본다. 지금의 에너지가 멈추지 않기를, 넘치는 호기심과 변화에 대한 용기,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태도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며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미술 작품을 끝없이 생산해 내 주기를 바란다. 정유연

 

* 이 원고는 '2023 강원문화재단 강원작품개발지원 [강원다운]' 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나광호_맨드라미_목판화, 아르쉬지에 옵셋잉크_106×77cm_2023

역행의 도감(圖鑑) 매일 마주하고 나를 감싸고 있는 자연이 작업의 검은 이미지이다. 밀도 있는 자연의 모습을 목판화로 제작하여 흔하디흔한 식물을 새로 발견하거나 걸음을 멈추고 보게 된다. 색채를 배제하면 형태의 구체성이 부각되는 검은 도감[圖鑑]이 된다. 구체적으로 재현하면 실물 대신 주목한다. 소소한 일상이어서 지나치던 하찮은 풀잎, 무심히 밟고 지나치던 질경이가 프레임에 박제되고 각인되어 프레스의 압[]을 통해 촉감이 된다. 무엇이든 검색하면 세세하게 자연과 식물에 대한 사진과 설명이 나열되는 오늘 날 발품을 팔아 도감을 제작한다는 것은 어쩌면 타이타닉호가 침몰 할 때, 탈출 할 작은 배에 자신들의 탈 자리가 없자 생존을 포기하고 마지막까지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연주자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어떻게 보면 '가장 쓸데없음'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는데 이것이 어쩌면 예술의 역할이자 위치 할 곳, 예술의 태도라 생각한다. 어쩌면 가장 쓸데없어 보이는 소재와 역행하는 태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작품을 제작한다. 내 작업에 있어서 본질, 근원, 오리지널리티, 나의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나의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오랜 시간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의 것은 나의 실제 경험에 근거한다고 보았다. 내가 풍경을 마주하며 느낀 분위기, 뉘앙스, 달아오름, 닭살, 쭈뼛쭈뼛 스는 털, , 시원함, 진짜 풍경을 마주한 감탄사. 이 직관적 느낌과 감각적인 신체적 경험은 바로 고유함이며 오리지널이라는 증거를 뒷받침한다. 작품의 소재가 된 것은 풀, , 나물, 잡초, 시든 식물, 나무들이다. 이 자연의 소재들이 한데 뒤엉켜 '평화'로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질긴 생명력으로 해와 비를 견디며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모습이 무척이나 내 눈길을 끌었다. 이 익숙하면서도 흔하고 평범한 도감의 소재들이 걸음을 멈추게 하고 눈에 각인되고 프레이밍 되고 편집되며 화면에 기록이 된다. 이 익숙하고도 동시에 낯설게 느낄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이 단순하고 강렬하게 새로운 감각의 층위로 이동하고 위치하길 원한다. 내 작업의 최종목표는 그림을 모아 도감[圖鑑]을 제작하는 것이다. 전시와 출판은 미술을 낮은 문턱으로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며 전문가 혹은 미술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목판화, 실크스크린, 에칭으로 제작된 작품을 통해 새로운 미감을 일깨우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나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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