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나는 ‘남서울 예술인 마을’ 오픈스튜디오 행사에서 여러 작업실을 돌며 비평을 했다. 정연두 작가를 비롯해 고재욱, 심아빈, 이종철, 김정모 등 14명 작가들이 사당역 인근의 건물 4개 층을 나눠 쓰며 작업하는 그곳은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미술제도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와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도 있는데, 이 예술인 마을은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자신들의 힘으로 꾸려가며, 따로 또 같이 창작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비평 도중 작가들에게 날 것의 활기, 자유, 긴장이 느껴진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14년 봄. 한쪽으로는 케이블채널에서 1억의 상금을 걸고 ‘한국의 아트 스타’를 찾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열린다. 다른 한쪽으로는 이 대학 저 대학에서 교육부 정책에 따른 대학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예술계열 학과 통폐합 소리가 쟁쟁하다. 한쪽에서는 그 오디션에 참여한 작가가 작품 제작비 일부를 자신의 영상작품에 참여한 다른 경쟁 작가들에게 ‘작가활동비(Artist fee)’로 지급해 방송사와의 계약을 위반했으니 자신을 탈락시켜달라며 자극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한쪽에서는 구조조정 대상 학과 학생들이 전공생으로서 교육받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미술제’라면서 정작 참여 작가들에게 ‘초대 사례비(Artist fee)’를 주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돼 관련 전시기획자는 한때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까지 요청한다. 이것이 최근 한국 미술계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 사례들 중 한쪽은 ‘아트 스타 코리아’라는 왕관을 쓰고 대중매체의 취향과 현대미술 전공자적 매너를 왔다갔다 하는 작가를 배출할 것이다. 다른 한쪽은 ‘대학교육의 효율성 재고’라는 명분에 꺾여
이 대학, 저 학과를 불안하게 떠도는 미술 전공자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일각은 그 어떤 명칭으로든 일단 수면에 떠오른 문제, 즉 ‘작가의 존재 자체에 대한 경제적 보상(작가의 노동이나 작품 제작에 드는 비용과는 구분되는)’에 더 민감해질 것이다.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따지기 위해, 혹은 그것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말을 보태자고 위와 같은 사례들을 환기시킨 것은 아니다. 대신 내가 말하려는 것은 미술의 권력 게임이고, 어떻게 하면 미술의 권력 게임에서 힘 센 주체가 되는가 하는 것이다.

 

미술가에게 가장 큰 권력은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창작하는 것이다. 그럼 그 힘을 배양하고 극대화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돈, 명성, 미술제도 권내의 파워를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창작 환경이 미술가를 힘 센 주체로 만드는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변수다. 그리고 그 환경은 미술가의 외부에서 제도가 조성하고 집행하는 데 잘 부응하기보다는, 덜거덕거리더라도 미술가가 독립적이고 자발적으로 만들어 운용하는 것이 최고다. 주위를 둘러보면 각종 공모전과 레지던시프로그램에 들기 위해 애쓰고, 창작 지원금이나 상을 받으려고 고심하는 작가들을 어렵지않게 발견한다. 신진작가부터 중견작가까지 지금 여기 한국의 많은 미술가들이 한 해 미술 농사를 공모 양식에 맞게 지원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꾸미고, 서류상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로 시작해 그에 맞춰 마감하는 식으로 짓는다. 200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급진화한 한국의 문화예술제도가 한 명의 미술인이 실행할 창작과 수용의 전 과정을 덮고도 남으니 그럴 만도 해보인다. 하지만 그 ‘지원하고 육성하는’ 공적 제도는 ‘독립적이고자가 발전적인’ 미술가의 힘과 결코 같지 않다.

전자에 아티스트(Artist)가 있다면, 후자로부터는 뒤샹 식으로 말해 아티스트와 반아티스트(Anti-artist)를 동시에 부정하는 ‘아나티스트(Anartist)’가 튀어나온다. 아나티스트로서 그/녀는 미술제도나 시스템에 달라붙어 그것을 속이고, 비판하고, 역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아무 것도 아닌 곳에 서, 아무 것도 아닌 이로 단련시킨다.




- 강수미(1969- ) 미학자, 미술비평가. 저서『비평의 이미지』(2013),『아이스테시스 :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2011),『한국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2009),『서울생활의 재발견』(2003) 등. 대표논문「인공보철의 미 : 현대미술에서 ‘테크노스트레스’와 ‘테크노쾌락’의 경향성」(201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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