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여유 주는 인력거 여행, 북촌의 명물로 자리잡았죠


 


美 유학 후 외국 증권사 다니다 우연히 인력거 아이디어 얻어 국내 첫 2대로 시작해 6대로 늘어
서울 한옥골목 아름다운 풍경 '사람 속도'로 보여주는게 장점

지방축제 등 영업지역 늘리고 엔터테인먼트에도 활용할 것

"여기요, 빨리 좀 주세요!" 주문하자마자 식당 음식이 나오기를 원하고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몇 초가 아까워 닫힘 버튼을 누른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다. 이 덕분에 한국 경제와 사회가 이만큼 발전하긴 했다. 하지만 초고속사회의 후유증도 적지 않다. 만연한 결과 지상주의에, 여유로운 생활은 먼나라 이야기다. 이인재(30·사진) 아띠인력거 대표는 기계화가 만든 현대의 속도전에서 비켜서 있다.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이름 그대로 인력거를 모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세상에 느림의 미학을 선물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도시의 명물이 됐다. 그런데 인력거라니! 서울에서는 안 되는 줄로만 알았던 인력거가 다시 출현했다.

보통 시민들에게 인력거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단지 빛바랜 사진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인력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구한말인데 일본인들이 수송용으로 도입하면서 확산됐다고 한다. 지난 1923년 전국에 4,000여대가 보급되며 절정을 이뤘다. 하지만 해방 후 자동차와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최근까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런 인력거가 최근 다시 나타났다. 더욱이 21세기 관광산업의 총아로서다. 21세기형 인력거는 성인 2명 이상이 넉넉하게 탈 수 있는 공간과 비와 햇빛을 막아줄 지붕, 산뜻한 디자인을 갖췄다. 파란색의 외피에는 '아띠'라는 로고가 선명하다. 이 대표는 어떻게 이런 인력거를 구상했을까.

이 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엄친아'라고 할 수 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보스턴 웨슬리언대 역사학과에서 공부했고 국내에 돌아와서는 유명 외국계 증권사인 맥쿼리증권에 입사했다. "보스턴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이었어요. 친한 여자애의 동생이 캠퍼스에 왔는데 다리가 불편해 걷지 못했지요. 캠퍼스를 구경시켜주려 했는데…그때 '휠체어 자전거'를 생각해냈죠. 자전거를 타는 그 동생의 웃음이 좋았어요."

이후 한국에 돌아와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냈다고 한다. "회사 건물은 덕수궁이 내려다보이는 정동에 있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전거·차들을 내려다보면서 '서울에도 인력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죠. 사업구상은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아이디어는 우연히 얻었다고 하지만 그것을 사업으로 연결하는 데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이 대표는 원남동에 차고를 얻어 몇달을 먹고 자며 사업을 준비했다. 이화여대에서 아는 교수의 허락 아래 남자 혼자 '캠퍼스 CEO' 특강을 청강하기도 했다. 시범운영을 하면서 친구들을 끌어들였다. 인력거를 끌, 어떻게 보면 고된 노동을 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처음 2대로 시작했던 인력거는 6대로, 5명이던 '라이더'는 20여명까지 늘었다. 현재 아띠인력거는 서울 북촌을 중심으로 서촌·인사동·광화문 일대에서 6대가 운영되고 있다. 조만간 8대가 도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면 모두 14대.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갖춘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아띠인력거에서는 인력거를 끄는 사람을 라이더라고 부른다. 직원들은 회계와 예약·홈페이지를 담당하는 상근이 있지만 대부분 라이더 풀로 운영된다. 하루 1명의 라이더가 운행하는 횟수는 보통 4~5번 정도, 한번에 한 시간 정도 인력거를 끈다. 수입을 회사와 라이더가 나누는 방식은 택시와 비슷하다.

"사실 인력거 사업은 국내 처음 시도되는 겁니다. 인력운용이나 경비계산·회계방식 등을 모두 새롭게 짜야 했지요. 하다못해 손님들에게 요금을 얼마나 받아야 할지, 회사와 라이더 간의 이익배분율을 어떻게 정할지 모두 처음에는 막연했습니다. 1년 정도 지나고 나니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습니다. "

아띠인력거의 구조는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바퀴가 3개인 자전거의 뒷부분에 손님을 태우고 라이더가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는 100% 라이더의 힘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그것이 장점이자 특징이다. 라이더는 인력거를 끌면서 서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람 속도'로 손님에게 보여준다. 풍경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손님들에게 전해주는 것은 물론이다.

아띠인력거가 주로 다니는 길은 '역사 코스'와 '로맨스 코스' '166번지 코스' 등 세 가지다. 역사 코스는 창덕궁 매표소에서 시작해 은덕문화원, 창덕궁 빨래터와 중앙고등학교, 북촌 문화센터를 지난다. 로맨스 코스는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동십자각, 갤러리길, 국립현대미술관, 헌법재판소, 가회동 한옥마을을 지나간다. 해질녘 노을이 도로 옆 왼쪽으로 떨어질 때가 특히 예쁘다. 실제 이 로맨스 코스에서는 연인끼리 프러포즈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재개발로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는 '166번지 코스'는 광화문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조계사, 인사동 문화의 거리, 운현궁을 거쳐 익선동 한옥마을에 이른다.

아띠인력거의 사업구역은 주로 북촌이다. 아띠인력거가 북촌에서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북촌에 대해 잘 몰랐죠. 처음에는 그냥 서울 시내, 적어도 4대문 안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북촌에 계속 끌렸죠."

아띠인력거가 제공하는 것은 결국 사람 냄새나는 여행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어도 자전거 모터는 쓰지 않는다. 이 대표는 "모터를 다는 순간 '인력거'는 그냥 택시거나 또 하나의 이동수단이 돼버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인력거를 몰면 라이더와 손님은 서로를 느끼게 되죠. 손님은 라이더의 숨소리를, 그리고 라이더는 손님의 생각과 희망을 느낍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빠름'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 저희의 행동이 '느림'과 '조용한 열정'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아띠인력거가 1년8개월 가까운 사이에 만난 손님들은 1만여명. 현재는 다른 사업 확장에도 나서고 있다. 인력거 운영 대상을 서울에만 한정하지 않고 지방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 지방축제에도 종종 초대를 받는다. 축제에서 아띠인력거로 사람들을 옮기고 관광의 마스코트 역할을 하는 것이다. "향후에는 인력거를 이용한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할 생각입니다. 인력거에 붙이는 광고도 훌륭한 수입이 될 것입니다."

아띠인력거는 지난해 5월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의 '창조관광기업(관광벤처)' 2013년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새로운 시도로서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관광한국에 이바지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탑승은 주중·주말 모두 가능하다. 주로 금요일이나 토·일요일에 집중된다고 한다. 또 기본적으로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물론 타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시간과 비용 모두 유동적이다. 보통 1시간 탑승의 경우 1인당 어른은 2만5,000원, 초등학생 이하는 1만5,000원이다.

도로교통법 등 인력거 관련 규정 없어 제도적 기반 마련해 관광상품화 지원을

인력거? 자전거? '아띠인력거'를 무엇으로 볼지부터가 문제다. 회사 측은 공식 명칭을 '인력거'라고 하지만 정확한 모양은 세발자전거에 가깝다.

도로교통법상 이런 인력거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없다. 다만 '차' 관련 규정에 '자전거'와 '사람 또는 가축의 힘이나 그 밖의 동력에 의해 도로에서 운전되는 것'이라는 항목이 있다. 자전거는 자전거이용 활성화법에 따르면 '사람의 힘으로 페달 또는 손페달을 사용해 움직이는 구동장치와 조향장치·제동장치가 있는 두 바퀴 이상의 차'를 말한다. 이 경우 아띠인력거는 자전거다. 도로교통법에서 '자전거' 외에 '사람의 힘으로 도로에서 운전되는 것'이라고 제시된 것은 의미 그대로 사람이 끄는 수레를 말한다. 사전적 의미의 '인력거'다. 자전거든 인력거든 어쨌든 '차'이기는 하다. 즉 원칙적으로 자동차처럼 도로에서만 운행돼야 한다.

이런 논란이 생긴 것은 우리나라의 '인력거'라는 정의 때문이다. 한국인의 기억에서 아띠인력거와 비슷한 개념은 구한말 기록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이 두 팔로 끌고 다니는 인력거다. 이는 일본인들이 근대역사에서 만든 운송수단이자 개념으로 지금도 일본의 도시에서는 이런 것들이 '인력거(人力車)'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닌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가장 익숙한 개념이다.

그러면 같은 것을 다른 나라에서는 무엇이라고 부를까. 이웃 중국에서는 '인력삼륜차(人力三輪車)'라고 한다.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세 바퀴 차라는 것이다. 역시 자전거가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손님들을 태운다. 또 미국에서는 '페디캡(pedicab)'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페달을 밟아서 나가는 택시(cab)라는 뜻이다.

현재 국내에는 이런 '아띠인력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공식적 규정은 없다. 개념이 없었으니 당연히 제도와 규정도 없었다. 이인재 대표가 사업을 하면서 가장 불만인 점이 제도화 문제라고 한다. 자전거로 영업이 가능한지, 서울 시내 어느 도로에서 운행이 가능한지, 무엇으로 볼 것인지, 사고 발생시 책임소재는 어떻게 할지 등 많은 점이 모호하다. 서울시 등 정부에서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다. 아띠인력거는 다행히 보험가입에는 성공했다고 한다. 사업을 하는 것은 개인이나 기업의 몫이지만 이를 위한 기반을 갖추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이 대표는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인력거가 인간다운 운송수단이자 관광상품으로 높은 대접을 받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빠르게 정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경제/최수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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