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짚신·멍석·도롱이·금줄 등 생활필수품
현재, 조사료·건축자재·공예품으로 재탄생
미래, 펠릿으로 활용…종이·바이오에너지 생산
[농민신문]스크랩
과거에 초가 지붕이나 금줄 등의 소재로 쓰였던 볏짚은 요즘엔 건축자재와 공예품 등으로 그 용도가 훨씬 다양해졌다.
미래에는 바이오플라스틱 원료로까지 쓰일지도 모른다니 볏짚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맨 위사진)
자, 주목하세요. 주목! 안녕하세요. 우선 감사드립니다. 볏짚인 저를 일일명예교사로 불러 주셔서 저뿐만 아니라 가문의 크나큰 영광입니다. 하지만 이 교단에 서기까지 저는 뜬눈으로 며칠밤을 지새웠습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각광받는 볏짚의 가치를 여러분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여러분의 선조들과 고락을 함께했던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잘 아시다시피 옛날에야 제가 안 쓰이던 데가 거의 없었죠. 신발하면 짚신 아니었나요? 가마니나 멍석, 비올 때 입었던 도롱이는 또 어떻고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대문 앞에 쳤던 금줄은 짚으로 꼰 새끼줄이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제가 가장 많이 쓰였던 데는 초가 지붕이었죠. 집의 보온을 돕고 비바람에도 지붕이 견딜 수 있도록 저를 활용했답니다. 그때에는 1~2년마다 새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갈아줬거든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요즘에는 어떨까요. 물론 예전처럼 청국장이나 메주 띄울 때 여전히 제가 필요하고요. 특히 소 먹이, 즉 조사료로 제가 가장 많이 쓰입니다. 혹시 ‘공룡알’을 보신 적이 있나요? 그것 말고도 활용 분야는 더 다양해졌다고나 할까요. 집 지을 땐 건축 자재로, 고기 구울 땐 연료로 인기죠.
그럼 다음은…. 아, 저기 손을 드신 분이 계시군요. 왜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지나가느냐고요? 궁금해도 조금만 참으세요. 다음 지면부터 자세한 설명을 담은 ‘친절한 기사’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지금 다 말해버리면 얼마나 김이 빠지겠습니까.
요즘 짚풀공예에 대해 여러분의 관심이 많더라고요. 저를 재료로 오리·백조 인형이며 휴대폰 고리나 반지·귀걸이 같은 장신구 등 다양한 공예품을 만든답니다. 아이들에게는 메뚜기나 여치 인형 등을 만드는 체험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네요. 2000년대에 들어서며 나타난 현상이라는데 이유는 제가 바로 친환경, 즉 천연 소재이기 때문이랍니다. 자, 여기 ‘친환경 소재’에 밑줄 쫙~. ‘뚝!’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힘주어 강조하다보니 분필이 부러졌네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고상하게 표현한다면 저는 예술로까지 승화됐다고 할 수 있죠. 어? 안 믿으시는 것 같은데 절대 허풍이 아니에요. 대전 서구 원정동쪽에 가보세요. 이달 중순부터 볏짚미술제가 열리는데, 제가 거기에 설치되는 잠자리나 사마귀 같은 대형 곤충 조형물의 재료가 된다니까요. 그 작품들을 창조한 조각가가 그러더군요. 저를 크게 크게 싼 다음, 마디 마디 묶어주면 덩어리로 만들기가 쉽다나요.
저의 진화가 이쯤에서 끝날까요? 절대 아닙니다. 이제 저의 미래에 대해 전망해 볼게요. 저를 이용해 종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는 사실을 아시는가요? 또 저를 톱밥 형태로 압축해 펠릿으로 만들어 연료로 쓰는 기술도 나왔고요. 경제성 때문에 본격적인 제품화는 안 됐지만요.
또 아직 진행 중인 연구지만 저를 소재로 한 바이오에너지 생산도 가능하대요. 저를 잘게 잘라 미생물로 발효하면 자동차 연료로 쓸 수 있는 바이오에탄올로 변한다는 거죠. 바이오플라스틱은 들어보셨나요? 저한테는 ‘셀룰로오스’라는 천연 고분자 화합물이 있다는군요. 이를 활용한 플라스틱은 연골 대체 등의 천연 의료용 소재나 자동차 내장재 등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답니다. 물론 미래의 일이지만요.
그럼 저의 진화의 끝은 어디까지일까요? 저도 모릅니다.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는 것밖에는요.
벌써 마칠 시간이 됐군요. 다음 지면으로 가셔서 저에 대한 궁금증과 다양한 활용사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도움말=농촌진흥청 박홍재 지도관·한상익 연구사, 서정희 짚풀영농조합법인 대표, 남형돈 조각가, 참고자료=<벼 부산물의 변신(인테러뱅)>(농촌진흥청), 짚풀생활사박물관 홈페이지(www.zipul.co.kr), 짚풀공예품 사진제공=짚풀영농조합법인
강영식 기자 river@nongmin.com
[인터뷰]인병선 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
“아이들에게 짚풀문화 전승…우리 세대 과제죠”
개발에 밀려, 사라지는 게 아쉬워
용품, 자료 5000점 모아…전시·연구·교육공간마련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 통해, 자기주도형 볏짚 공부도 유도
인병선 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은 우리나라 짚풀문화유산 보존의 산증인이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박물관이 있다. 짚풀, 특히 볏짚전문 박물관으로는 세계 유일인 짚풀생활사박물관이 그곳. 설립자 인병선 관장(78)의 반평생이 바쳐진 곳이다. 그런데 잠깐, ‘짚풀’이 정확히 뭘까. 흔히 쓰는 말인데도 사전에는 안 나온다.
“1993년에 박물관을 열면서 짚과 풀을 합해 ‘짚·풀’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가운뎃점을 뺐어요. 지금은 흔히 쓰는 말이 됐더군요.”
인 관장이 짚풀문화에 ‘꽂힌’ 것은 1970년대 중반. 개인적으로는 남편(신동엽 시인·1930~1969)과의 사별을 어느 정도 극복했을 무렵이요, 사회적으로는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이 급변하던 때다. 당시 인 관장은 한 문화답사 모임에 합류해 전국을 다녔는데, 사찰이나 고택보다 그 언저리의 사하촌과 농가에 마음이 가더란다. 사회주의 농업경제학자였던 아버지(인정식·1907~?)와 빈농의 아들이던 남편의 영향 때문인가 했다고.
“남들은 팔작지붕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제 눈에는 시골집 마당에 뒹구는 삼태기며 둥구미 같은 게 더 근사했어요. 처음에는 사진만 찍다가 나중엔 수집에 나섰지요. 불량주택 개량이다 플라스틱 개발이다 하면서 짚풀용품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거든요.”
‘살기 편해지고 물건도 좋아졌는데 그깟 짚풀이 뭐라고….’ 그를 바라보는 답사회 회원들과 농촌 주민들의 눈길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인 관장은 생각이 달랐다. 짚풀은 인류가 오래도록 사용해온 재료다. 짚풀로 만든 용품에는 해당 식물에 대한 지식과 이를 다루는 기술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뜻. 그게 바로 ‘문화’다.
“그런데 그런 물건들이 사라진다? 거기 깃든 지혜를 보존하고 전승할 새도 없이? 마음이 다급해졌지요. 하나라도 더 모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 모은 짚풀용품과 관련 민속 자료만 약 5000점. “일종의 외도였다”면서도 열정을 바쳐 수집한 제기(祭器)와 조선못이 또 2000점쯤 되고, 농촌 현장을 담은 슬라이드 필름은 6만장에 이른다. 그이가 박물관을 연 것은, 당장은 이들 자료를 더는 둘 데가 없어서였지만, 길게는 짚풀문화 연구·교육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박물관 병설기관으로 (사)짚풀문화연구회를 꾸리고 연중 어린이·청소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데 또 드는 의문. 벼도 모르는 요즘 아이들에게 볏짚에 대해 교육한다? 인 관장은 “그래서 방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전시해놨으니 봐라? 시키는 대로 따라 해라? 어림도 없다. 반면 ‘농부의 하루’ ‘짚풀 장터 열리는 날’ 같은 주제를 제시하면서 “이 아이패드로 짚풀용품 사진을 찍고 편집까지 해보렴” 하면 아이들은 박물관 구석구석을 신나게 기웃거리며 ‘자기주도형 볏짚 공부’를 한다고. ‘볏짚과 시멘트의 보온능력 비교’ 같은 실험도 효과적이란다.
“네댓살 꼬마들도 볏짚 냄새를 맡으면 ‘와, 좋다’ 해요. 신기하죠? 이런 아이들에게 짚풀문화를 전승하는 것, 그게 우리 세대의 과제입니다.”
손수정 기자 sio2so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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