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완식이 만난 사람] 아트 컨설턴트 강희경

 


안국동의 한 갤러리에 그가 나타났다. 금세 그는 전시 중인 작가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마냥 정겹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런 분위기에 갤러리 대표도 자연스럽게 가세했다. 요즘 미술시장의 어려움도 주요한 이야깃거리였다. 진단도 이어졌다. 컬렉터들이 짧은 시기 주식 투자자처럼 미술시장에 덤빈 폐해라는 점엔 모두가 공감했다. 대화를 이끈 이는 아트 컨설턴트 강희경(45)씨다. 그는 갤러리, 아티스트 등과 교류하면서 고객의 요구에 맞게 작품을 선정해 주는 전문가다. 말하자면 아트를 고객의 필요에 맞춰 컨설팅해주는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바를 파악한 후 전문적인 견해를 더해 작가와 작품을 추천해 준다.

미술관과 갤러리 나들이를 통해 고객의 ‘행복 쇼핑 목록’을 채워 간다는 아트 컨설턴트 강희경씨. 그는 “미술시장의 근간을 이끄는 이들은 투자자가 아닌 컬렉션을 즐기는 대중”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컬렉터에게 당신의 인생에 편안함을 선물하라고 말하지요. 부자들의 ‘돈 장난’ 같은 놀음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설득합니다. 작품을 통해 행복해지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열린 마음이 생기고 나름의 안목도 가지게 되면서 스스로를 즐기게 되지요.”

그는 미술은 삶을 힐링하는 ‘행복 버전’이라고 했다. 한 시대의 힐링 색깔인 미술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이 시대와 불화하는 반쪽짜리 삶이라는 것이다. 미술은 삶의, 문화의 꽃(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컬렉션도 작가 못지않게 자신을 표출하는 행위입니다. 성공하는 컬렉터는 좋은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사람이지요. 컬렉션 과정을 기록하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면서(감상) 결국엔 작품 사랑에 빠져들지요. 그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주변과 나누게 됩니다. 불안함과 답답함도 이런 과정 속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뀌게 됩니다.”

그는 아트가 갖고 있는 최고의 장점으로 세상과 이야기를 나누게 해주는 매개체라는 점을 꼽았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쉽게 마음을 열 수 있게 해주기에 그렇다.

미술계에선 요즘 어렵다는 소리만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면서도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컬렉터의 진취적인 자세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컬렉터는 재능있는 아티스트가 저평가되는 현실을 견딜 수 있도록 지지를 해줘야 합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비즈니스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줘야지요. 컬렉터라면 작가들이 미술시장에서 있을지 모를 결점마저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점차 컬렉션의 기준이나 원칙도 무의미해지고 있다. 그만큼 불확실성의 시대다.

“앞날을 예측하려 애쓰는 것보다 시장에서의 불확실성을 감내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갤러리들은 나름의 취향에 따라 작가를 소개해 나간다면 마켓이 생길 겁니다. 트렌드와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선 ‘현재’만 볼 게 아니라 ‘과거’를 보아야 합니다.”

그는 갤러리가 아티스트와 이들을 후원하고 발굴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클럽하우스 역할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티스트를 후원할 수 있고 지적인 도전과 미학적인 아름다움에 노출될 수 있다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야 합니다. 쓸데없는 가십보다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대화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컬렉터의 행복이지요.”

그는 컬렉터에게 작품을 구매할 때는 작가를 만나 볼 것을 권한다. 그가 중점을 두고 살피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바로 작가의 진정성, 인간미, 성실성이다. 밑바닥부터 열정을 분출할 수 있는 아티스트인지, 따듯한 인간적인 면모로 삶의 동행자가 될 수 있는 작가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업윤리처럼 꾸준하고 근면한 성실성이 가장 중시되는 고려 요소다.

“작가는 자신의 마음이 말하는 것과 지시하는 것을 따르고 그것을 최고라고 여겨야 합니다. 스스로를 소통을 위한 혈관으로 여겨야지요. 주위의 조언에도 귀 기울일 줄 알며 자신의 핵심을 찾아 이를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는 가난한 예술가들과 초라한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몇 시간씩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긴다.

“경험상 작품 속에 뚝심이 보이면 성공하는 작가가 되지요. 엔디 워홀이 수없이 뉴욕현대미술관에 편지를 보냈지만 ‘미안합니다’라는 답장만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웬만한 작가 같았으면 절망했을 겁니다.”

그는 무역업을 했던 부모가 인사동과 뉴욕에서 컬렉션을 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어렸을 땐 모든 사람이 컬렉션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뉴욕에 17년간 머물며 작가 작업실을 방문하는 아트 투어를 이끌기도 했다.

“아트투어는 공연으로 치면 무대 뒤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스튜디오에 가 보면 작가를 보는 눈이 깊어지고 예술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컬렉터에게 알리고 싶은 열정도 생기지요.”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컬렉션도 하고 아트 컨설팅도 하게 됐다. 최근엔 뉴욕에서 만난 컬렉터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더 컬렉터스’를 펴내기도 했다.

“컬렉션은 매우 시각적이고 개인적인 여행입니다. 신체의 ‘행복 더듬이’가 확장되는 희열 같은 것이지요. 미디어는 신체의 확장이라 했던 매클루언의 말이 떠올려집니다. 언제나 흥미롭고 행복한 만족을 가져다주는 기분 좋은 여행입니다.”

그는 이젠 자기만족과 도취에 빠지는 컬렉션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은 현대의 명작을 선별해 컬렉션을 완성하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친다. 한 아이에게 인생에서 잊혀지지 않는 작품 한 점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목표다. 아트 컨설팅도 매한가지다.

한국미술시장에 대해서 그는 낙관한다. 중국 등 아시아미술시장의 부상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한국 미술시장의 문제점은 아주 협소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미술시장이 한국을 테스트마켓(test market)으로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자제품같이 한국인의 감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입니다. 근래 중국 주류미술계가 한국작가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조짐도 글로벌 마켓의 흐름에서 봐야 합니다.” 그는 미술에서도 한국의 단점이 장점이 되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고 했다.

“식민지, 전쟁, 남북분단 등으로 한국인처럼 희로애락의 겹이 두터운 민족도 없을 겁니다. 이런것들을 미술로 풀어내면 세계가 공감할 수밖에 없지요. 이미 대중문화인 한류드라마가 그 본보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그는 희로애락의 공감의 코드가 한국미술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를 부추기는 촉매제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같은 대국도 1970∼80년도에 기업의 미술 스폰서가 활발해지면서 좋은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게 됐습니다. 우리와 국가 규모가 비슷한 덴마크 등 북유럽은 국가 차원의 지원이 비교적 활발한 나라들입니다.”

그는 우등생이었던 중학교 시절 수학에 대한 트라우마로 부모에게 조르다시피 해 외국유학을 떠났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로드 아일랜드 대학교에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공부한 후,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했다. 현재 서울에서 아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일보 /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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