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자화상’ 캔버스 아랫부분을 찢어내고, 뭉크의 ‘절규’에 등장하는 인물의 바지를 벗긴다. 윤병락의 ‘사과’ 그림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사과를 손으로 받치고, 구자승의 ‘정물’을 직접 그려본다. 관람객들이 액자 속으로 뛰어 들고, 거대한 공룡을 만나고, 캄캄한 미로 속을 헤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유명 작가의 그림을 활용한 트릭아트 체험전시가 인기를 끌고 있다.

트릭아트 대 파인아트-미술아 놀자’ 전이 열리고 있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 93뮤지엄에는 주말인 지난 8일 800여명이 몰려들었다. 대부분 가족단위 관람객이었다. 이전 전시 관람객은 하루 100명도 채 되지 않았다. 93뮤지엄 개관 10주년을 맞아 기획한 이 전시는 단순히 명화를 차용한 것이 아니라 실제 작품을 활용해 그림감상과 미술놀이를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주효했다.

전시는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 200여점을 5개 코너로 꾸몄다. ‘화가들의 트릭아트’에는 명화를 패러디한 작품이 전시된다. 구동현의 ‘뭉크의 절규’, 김제민의 ‘반 고흐 자화상’, 김상우의 ‘메릴린 먼로’ 등 작가들이 명화를 재미있게 패러디했다. ‘신기한 현대미술’ 코너는 윤병락의 ‘사과’, 손자일의 ‘루이비통’ 등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극사실적인 작품으로 그림인지 실물인지 헷갈리게 한다.

 ‘해저탐험-스토리텔링’은 바다 속 물고기들과 함께 호흡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코너다. ‘옛사람들의 관상’은 채용신의 ‘고종 어진’, 이명기의 ‘손소 초상’ 등 조선시대 인물을 통해 선인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현대인들의 관상’은 안창홍의 ‘푸른 초상’, 이종구의 ‘오지리 정순씨’ 등으로 현대인의 관상을 탐구하는 전시다. 4월 30일까지(월요일은 휴관). 관람료 5000∼6000원(031-948-6611).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 지난해 8월 개관한 ‘박물관은 살아있다’는 근처에 대규모 전시장을 새로 마련해 지난 8일 오픈했다. 이곳에도 지난 주말 아이부터 어른까지 가족단위 관람객 1500여명이 찾았다. 쌈지길 전시장은 그동안 주말에 1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이 전시 역시 명화를 코믹하게 패러디한 작품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명화 속 미로를 거니는 코스로 관객을 손짓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 꾸민 전시장은 관람객들이 작품의 일부가 돼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오디세이 인 월드’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관람객들이 오감을 느끼게 하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미션 인 블랙’으로 구성됐다. 수십 개의 방으로 이뤄진 전시장에는 트릭아트, 오브제아트, 미디어아트 작품이 설치돼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도 있다. 연중무휴. 관람료 1만∼1만2000원(1544-8506).

이밖에 홍익대 입구에도 트릭아트 전시장이 최근 새로 생기고, 아이돌이나 걸그룹을 모델로 한 트릭아트 전시도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전시로 미술은 어렵고 딱딱하다는 인식을 깨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놀이터를 방불케 하는 이벤트 행사로 미술의 가치와 역할을 왜곡시킬 우려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일보 /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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