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은 강민선생을 비롯한 인사동 터줏대감을 모시고,
식사 대접하자는 기별을 장봉숙선생께서 보내왔다.
페북에서야 강 민선생을 간간히 뵙지만, 뵌 지가 한 달이 넘었다.
인사동 ‘나주곰탕’으로 갔더니, 문학평론가 구중서선생과 소설가 김승환선생,
사진가 정영신씨가 입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강 민선생을 기다렸으나, 선생께서는 이미 와 계셨다.
제일 멀리 계시는 분이 언제나 먼저 오신다.
자리 잡고 앉으니, 장봉숙선생께서도 오셨다.
매번 내가 꼴지로 나왔지만, 모처럼 꼴지 신세를 면한 것이다.
정영신사진
강민선생은 귀가 어두운데다, 내가 하는 말까지 어눌해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방동규선생께서 보이지 않아 근황을 여쭈었는데, 구중서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연락하니, 일이 있어 못 나온다"고 했다며,“배추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고 아쉬워하셨다.
그런데, 장봉숙선생께서 선물 하나를 내놓으셨다.
얼마 전 중국여행 때 사왔다는 이과두주였는데, 병을 보니 보통 술은 아닌 것 같았다.
강 민선생 드리려 사온 술이겠지만, 맛이라도 좀 봐야 하지 않겠나?
눈치 봐 가며 슬슬 포장을 풀었더니, 식당주인이 말했다.
“오늘만 강민선생님 때문에 봐주지만, 다음엔 절대 안 됩니다.”
52도나 되는 독주를 낮술에 쥐약인 내가 견딜 수 있을지 걱정스러우나, 어찌 귀한 술을 마다하겠는가?
맛만 본다며 조금 받아 마셨으나, 술 맛이 슬슬 당기기 시작했다.
홀짝홀짝 마시다, 나중엔 장선생과 정영신씨가 남긴 술까지 다 마셔버렸다.
방동규선생이 안 계시니, 구중서선생께서 이런저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김두환씨가 시라소니 앞에 무릎 꿇었던 옛 이야기를 꺼내시며,
사실은 전해지는 무용담들이 좀 부풀려진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추가 맨주먹으로 열일곱 명이나 때려 눞혔다지만,
선생께 고백하기를 자기도 당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두 분이 각별히 친한 사이지만, 오래 전에는 다툰 적도 있다고 했다.
“백기완과 구중서가 책 보라고 부추긴 죄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꼴로 살게 됐다"며,
술값은 늘 구중서선생께서 내게 하셨단다.
어느 날 인사동 ‘실내악’에서 구선생의 핀잔에 방선생께서 술값을 계산하고 먼저 일어난 것이다.
가다보니 술 값을 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술값을 돌려 달라고 하셨다는데,
실내악 주인 김희주가 누구인가? 절대 못 돌려준다며 타박만 주었다는 것이다.
방선생께서 다방으로 올라가셨는데, 그곳에 계신 신동문시인께 "구중서와 의절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단다.
그 소리를 들은 신동문선생께서 갑자기 ”꿇어 앉어“ 라며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천하의 주먹이 손가락만 슬쩍 밀어도 쓰러질 비쩍 마른 시인의 말에 그냥 무릎 꿇고 앉았다는 것이다.
한참 있다 이제 일어나도 되냐고 물었더니, 좀 더 있어라 했단다.
얼마나 순진무구한 모습이냐?
그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술이 슬슬 오르기 시작했다.
구중서선생께서 자주 가신다는 ‘관훈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어지러웠다.
술 깨려고 인사동 주변을 돌아다니는 습관이 다시 도졌다.
길에서 까딱이를 몇 달 만에 만났지만, 술 취해 빌빌거리는게 불쌍한지 손도 벌리지 않았다.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목판대학 전시 때문에 그냥 갈 수도 없었다,
다른 분들은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도 않고, 강민선생 따라 기어 오르듯 전시장에 올라갔다.
김진하 관장과 정복수씨가 있었고 뒤 늦게는 김준권씨도 왔었는데, 전시된 작품들이 너무 좋았다.
초빙작가인 김진열, 정복수, 김진하, 문승영씨 작품은 물론, 학생들 작품도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이현숙씨 판화에 눈이 꽂혔다.
전시가 12월 4일까지라 다음에 볼 작정으로 내려와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지러워, 강민선생께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가까운 ‘유목민’에 들어가 전활철씨께 택시 하나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어렵사리 집에 왔으면, 그냥 자빠져 자지 또 컴퓨터는 왜 켰는지 모르겠다.
누구에게 보고할 일도 없는데 말이다.
음주운전보다 더 무서운 음주 포스팅을 기어이 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꼴을 보았다. 갑자기 집채가 쓰러질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무 불안해 기둥 사이로 돌을 집어넣기도 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까지 지붕에 올라가 난리를 피우는 것이다.
소가 기와장을 튕기며 지붕 위를 뛰어 다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더니 날 뛰던 소가 갑자기 땅에 떨어져 즉사한 것이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별 이상한 꿈을 다 꾸었다며 일어났더니, 컴퓨터가 켜져 있었다.
마우스를 당겨 보니, 음주 포스팅한 글에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얼굴이 달아올라 급히 내리기는 했지만,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것 같았다.
속은 쓰린데다 망신살까지 뻗쳤으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난, 왜 이리 낮술에 맥을 못 추는지 모르겠다.
낮술은 애비도 몰라본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술 들어간 뱃속이 낮과 밤을 구분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그 꿈이 뜻 하는 건 뭘까?
집안에 우환이 생길 징조는 아닌지, 해몽가라도 한번 찾아 볼일이다.
다시는 낮술과 음주 포스팅을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건만, 그 버릇 개줄까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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