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후6시, 아트 디렉터 안애경씨를 만나기로 했다.
몇 일전부터 약속된 만남이었으나, 꾸물대다 30분이나 늦어버렸다.
약속장소인 정동의 영국대사관 앞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더니, 바로 옆자리에 서 있었다.
사과할 겨를도 없이, 반갑게 맞는 그를 따라 맞은편의 ‘정동국밥’집에 들어갔다.
그 국밥집은 신부님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그 수익금으로 동자동 빈민들께 매주 국밥 대접을 한다고 했다.
다섯 그릇 팔아 배고픈 한 사람의 배를 채운다니, 가능하면 여기서 식사를 한다고 했다.
나도 몰랐던 정보라 고맙기도 했지만, 그녀의 마음 씀이 너무 예뻤다.
안애경씨는 지난 5월 초순 '통인' 김완규씨가 마련한 오찬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차림새는 20대로 보였으나, 자세히 보니 50대는 되어 보이는 완숙한 작가였다.
외국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국내 예술행정의 문제점도 훤히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이 파격적이면서도 참신하여 배울 바가 많았다.
그런데 내가 사는 동자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버이날을 기해 그들에게 돌려주는 빨래줄 전시를 한다고 했더니, 꼭 들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날은 내 핸드폰에 이상이 생겨, 양동 방향에서 헤매었다고 했다.
대신 양동의 쪽방들을 돌아보며 빈민들의 생활환경을 편리하게 꾸밀 방안을 연구했다고 한다.
쪽방이 몰린 복도 한 켠에 조그만 탁자라도 하나 놓으면 방에만 박혀 사는 주민들이 나와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그 날 돼지국밥을 먹으며 재미있는 제안을 해왔다.
7월 말 신월동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조그만 축제를 마련하는데, 사진을 찍어 줄 생각이 없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동자동에서 딴 곳으로 마음 뺏길까 염려되었으나,
어린이들과 어울려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빨 빠진 마귀 같은 꼬락서니로 낄낄거리면 얼마나 재미있어 하겠는가?
그 좋아하는 모습의 이미지가 벌써 그려진다.
어린이들과 마음대로 놀려면 빨리 허리부터 완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파주출판단지에서 개최할 북 페스티벌에 자신의 기획안을 프리젠테이션하여 결정되었다고 했다.
책, 자연, 미래,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만남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장터처럼 난장을 펼치고 싶다며 장터사진을 찍어 온 정영신씨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예술분야만이 아니라 사회 다양한 분야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영국대사관 옆의 성당 정원으로 안내했는데, 그 성당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여지 것 조선일보 미술관을 더나들며 여러 차례 그 골목을 다녔지만,
벽돌과 돌을 사용해 지은 로마네스크 식의 멋진 성당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검색해 보니, 1926년에 준공한 성공회의 서울교구 건물로 되어있었다.
얼마나 여유 없이 살았으면 옆으로 시선한 번 주지 못했을까?
가까운 곳에 이렇게 멋진 성당 건축물을 두고, 외국만 가면 성당건물을 찾아다닌다.
모르면 바보나 마찬가지다. "이 바보야 정신 차려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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