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모종 심어 놓고 한 번도 만지산 집에 못 들린 아내를 위해 보내는 만지산 현장보고서다.
장모님 간병에다, 제 몸마저 편치 않아 “야채는 얼마나 컸을까? 호박은 몇 개나 달렸을까?
그 난장판으로 널린 나무들은 어떻게 정리됐을까?” 여러가지 궁금한 아내에게 현 작황을 그대로 보여 줄 작정인데,
내일 정선장 찍어려면 온전히 하루를 기다려야기에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것 저 것 찍어, 토닥토닥 독수리타법으로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는데, 처음 보는 손님 한 분이 만지산을 찾아왔다.
뮤지션 김상현씨 소개로 방문한 분은 삼탄아트마인 작업을 구상하러 온 ‘브띠크 단’ 대표 조정희씨 였다.
처음 만난 분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뜻이 맞았던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떠나 보내고 나니 밤 열한시가 넘어버렸다.
뒷 정리하다 하루 지난 보고서가 되고 말았지만 다시 자판기를 두드린다
조정희씨가 겁도없이 만지산적 소굴을 방문하고 있다.
달밤에 만난 미녀라 오히려 산적이 더 떨린다.
예고편은 끝내고, 본편으로 들어가겠다
툇마루 옆에 있는 야채밭이다.
4년전 심은 목련이 텃밭을 지키는데, 올해도 바빠 꽃봉우리만 보고 목련은 보지 못했다.
횡대를 이룬 갖가지 야채들은 여러차례 뜯어 먹혔으나 계속 돋아나고 있다.
"호박이, 말 거시기 같다"고 전했더니, 아내가 말 거시기를 본적이 없다기에 찍었다.
죽을 것만 같았던 고추모종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 키만한 고추를 달고, 옆에 버틴 큰 고추에게 야유를 던진다. "야! 작은 고추가 맵다는 걸 알지"
열무, 들깨, 쑥갓 등 몇가지 종자를 뿌렸으나 열무만 나오고 ,다른 것들은 소식이 없다.
"가짜 종잔가? 아니면 새가 파 먹었을까?"
척박한 땅이지만, 모두들 가지 한 개씩은 다 달고 있다.
호박들이 귀엽다. "야들야들한 영계들인데, 맛이나 들었을까?"
오이,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렸다. 빨리 토마토가 익어야 마나님 따다 줄텐데...
어떤 사람이 옥수수는 한 포기에 하나만 달린다며 우기기에 그렇게 믿었는데,
오늘 확인해 보았더니 모두 두개씩 달렸네. "초우도 모르는 넘이.."
고추모종들이 목이 마른지, 나처럼 힘없어 보인다.
가랑이를 쩍 벌린 이 나무가 개복숭아다.
해마다 엄청나게 많이 열려 개복숭아술에다 효소까지 담게 해 준 고마운 친구다.
그런데 해걸이도 하지 않는 나무가 올 해는 딱 한개만 달려 개복숭아가 아니라 일반 복숭아처럼 컷다.
그 나무의 기운을 한 개가 다 받아 맛도 있고 엄청난 보약일거라는 생각이 들어
잘 익으면 병석의 장모님 갖다 드릴려고 벼루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보았더니 새가 파먹었는지, 벌레가 먹었는지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아무리 먼저 본 놈이 임자라지만 너무한 것 아닌가? 모처럼 효도 좀 하려는데...
억울하고 아까워 남은 걸 먹어치웠더니, 역시 최고의 맛이었다.
"장모님! 면목없습니다"
"개복숭아 나무야! 어디가 아파 그러느냐?
그래도 네 자태 하나는 요염하기 짝이 없구나."
한 그루만 심은 이 은행나무는 은행이 열리지 않는다.
"빨리 짝을 만들어 줘얄텐데..."
만지산 냉장고로 소문난 '소나무숲 쉼터'를 오래동안 버려 두었더니 쓸쓸하기 그지없다.
'혹시 저 텐트 속 침대에 구렁이가 누워 있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도 해 본다.
이 소나무들은 언덕에 비스듬히 누웠다. "힘들어 잠들고 싶을까? 아니면 누굴 잡고 싶을까?"
언덕에서 마당을 내려다보니, 그 어지럽게 널렸던 나무들이 자리를 찾아 한결 깔끔해졌다.
성질 급한 코스모스는 벌써 피기 시작했다.
"대가리 쇠똥도 벋거지지 않은 조그만 것들이..."
마나님께서 이 땅들을 개간하라는 어명인데, 내가 소처럼 힘이 쌘줄 아나베...
가시에 찔려 잘라버린 장미지만 계속 꽃이 핀다.
굴러다니는 목을 언덕에 박아두었는데, 그믐 날 밤에 보면 좀 으시시하다.
그토록 지붕 위로 올라가래도 내려오던 덩쿨이 드디어 마음을 바꾸었나보다.
작년 가을 벌목하다 나무둥치에 발등 찍힌, 그 지긋지긋한 현장이다.
칡능쿨에 머리채잡혀 자리에 눕지 못하는 잡목들. 저걸 어쩌지...
우리집 명상소다.
한 해 동안의 똥을 받아 거름으로 쓰는데, 재를 뿌려서 인지 전혀 냄새가 없다.
아내가 가꾸는 야생화 밭인데, 주인이 오지않으니 꽃도 피지 않는다.
마당을 독차지 하던 그 많은 나무들을 해체해 부위별로 모았다.
그 위로 호박넝쿨이 기어 오른다.
이 장작들은 나처럼 오래된 것들이라 금방 타버리지만 화력 하나는 끝내준다.
아직도 대기중인 나무들이 있다,
기계톱이 망가져 무딘 톱으로 잘라야는데, 어느 세월에 다 자를까.
도끼질하려면 고생 좀 해야겠네.
대충 찍고, 사진 정리하러 컴퓨터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엊저녁 제사지낸 덕에 먹을 것이 좀 여유롭다. 좋아하지도 않는 과일이 책상에 다 있고...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한채, 벽에 붙어 있는 육신들..
이 작업들은 언제 쯤 마무리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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