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랑 공주님이 녹번동에 납시오.
지난 18일, 하랑이 온다는 소식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하랑이 온다는 전화는 반가움에 앞서 걱정도 따랐다.
코로나 때문에 어른도 꼼짝달싹 않는데, 젖먹이가 우째 걱정이 안 되겠노?
아들 햇님이가 밖에 일보러 다니는 것조차, 병 옮길까 걱정하는 판에...
어쨌든, 하랑 공주님이 납시니 좋긴 좋더라.
조용한 집이 갑자기 난리 쳐들어 온 듯 복닥거렸다
지 모습 찍힌 동영상에 깔깔거리기도 하고,
책장에서 책을 뽑아보며, 이것저것 살피느라 바쁘다 바빠..
혼자 먹던 딸기는 어미와 애비는 주면서, 내가 달라니 울어 버리네.
딸기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귀신같은 할애비 꼬라지가 무서운 모양이다.
내 딴엔 하랑이 온다고 안 끼던 틀니까지 끼며 폼 잡았는데...
다음에 올 때는 머리도 자르고 동동 구리무 라도 좀 발라야겠네.
요놈의 자슥이 올매나 이뿌고 새칩은지 확 깨물어뿌고 싶더라.
저리 천진난만한 애를 보고도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란 양반은 정신 나 간기 틀림없다.
세상물정 모를 저때가 제일 좋은데, 점점 커가며 인간이 만든 굴레에 물들어가는 것 아이가?
나쁜 것도 배우고, 더러운 돈 욕심도 내고...
그 날은 하랑이 덕분에 모처럼 맛있는 음식까지 얻어먹었다.
‘연안식당’에서 꼬막 비빔밥에다 멍게 비빔밥까지 완전 해적판이었다.
이제는 이도 여러 개 생겨 이 빠진 나보다 더 잘 먹더라.
그 큰 숟갈에 입 찢어질까 걱정스러웠다.
이젠 잡을 것만 있으면, 제법 아장 아장 걷기도 하네.
온 식당을 뿔뿔 기어 다니며 바닥 청소를 다 한다.
변화무쌍한 표정과 쉬지 않고 휘젓고 다니는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한 것 같다.
처음엔 마누라가 최고라며 호들갑 떨다가
자식이 생기니 자식이 최고라고 치켜세우고,
손자 생기니 손자가 최고라고 난리 피운다.
하기야! 옛말에 사랑은 내리사랑이란 말도 있다 아이가?
하랑이 덕에 온갖 근심걱정이 눈 녹듯 녹아 내렸다.
맨날 이뿐 선물 사 준다는 말만 해 놓고, 치매 끼가 있어 가고나면 이자뿐다.
다음에는 기어이 선물을 구해놓아 점수 좀 따야것다.
하랑아! 우짜던지 건강하게 잘 커그래이~
사진, 글 / 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