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사진판/동자동 쪽방사람들

수급비 타는 날은 동자동 공원이 술상이다.

만지산할배 2017. 5. 22. 01:17




기초생활수급비가 나온 지난 19일의 동자동 새꿈 공원은, 공원 자체가 술상이었다.
평소에는 수급비가 20일 나오지만, 당일이 공휴일이라 하루 앞당겨 나온 것이다.

수급비래야 노령년금 제하고, 쪽방 달세내고 나면 40만원 가량 남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수급비를 못타는 빈민들의 입장에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알뜰하게 모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대개 얼마가지 않아 바닥 나 또 다시 수급 날을 기다리게 된다.


수급비가 나와도 이웃에 빌린 돈이나 외상값 갚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으니 
쪼달리는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다.






대개 술 담배를 즐기는 사람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인데,
희망도 없는 빡빡한 살림에 술 한 잔 하는 낙마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동자동 사람들은 예사로 이웃과  술 담배를 나눈다.

어디를 가나 없는 사람의 인심이 더 후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구두쇠처럼 야멸차게 사는 사람과 인심 좋은 사람을 두고,
대개의 사람들이 후자를 더 안 좋게 보는 세상이다.
사람보다 돈의 논리를 더 앞세우기 때문이다.






다들 술이 취해 별 것 아닌 일에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싸울 듯 맛 서기도 했다.
김씨가 이씨에게 나라 망친 역적의 후손이라니, 듣는 이씨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러나 아무도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 뒤의 결과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 소란스럽지만, 이내 다시 술잔이 오간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이진수씨가 내 팔을 당기며 따라 오란다.
비닐봉지에는 마시다 남은 소주병과 따지 않은 소주병이 있었지만, 기어이 새 병을 땄다.
먹던 술을 두고 왜 새 병을 따냐고 물었더니, 대접하는 술은 새 술이라야 된다나...


몇 발자국 옆의 정옥상씨를 부르니, 저 놈은 술 취하면 잔소리가 많으니 그냥 두란다.
그러면서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신사임당 지페 몇 장을 꺼내 보이며 자랑 해댄다.
허구한 날 허덕이다 모처럼 돈이 생겼으니, 기분 좋은 모양이다.






공원 한 쪽 구석에서는 잔돈 섰다판이 벌어지기도 하고,
한 쪽에서는 빌린 돈을 갚는지 돈을 주고 받기도 했다.

구멍가게 옆의 공원 입구 자리는 일찍부터 정재헌씨가 판을 벌여 놓았다.
배용식, 이준기, 이원식, 강완우씨 등 여러 명이 주위를 배회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장수씨는 문대통령이 5,18유가족을 포옹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좋은 대통령이 되었다며 칭찬에 침이 말랐다.






공원에 어둠이 몰려오자 하나 둘 둥지로 돌아갔다.

정재헌씨는 엊그제 계단에서 넘어져 얼굴을 다쳤는데, 이 날도 술이 취해 몸을 가누지 못했다.
5층 사는 정재헌씨 방까지 부축하느라 얼마나 용을 썼던지, 마셨던 술이 깰 지경이었다.
간신히 방에 앉혀 놓았더니, 말없이 쳐다보는 눈길에 고마움이 묻어난다.





다행스럽게도 정씨는 혼자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술 취해 오르기가 힘든 줄 알면서도 매일같이 공원으로 내려오는 것은
사람 사는 정이 그리워서다.


정 때문에 울고, 정 때문에 사는 사람들이다.


사진, 글 / 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