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을 게 있다고, 석회암 바위에 뿌리 내린 걸까

동강할미꽃

 

 

바위 틈바구니로 꽃 무더기가 소담히 피어있다. 흔하디 흔한 할미꽃이다. 하나 이 사진은 흔한 사진이 아니다. 할미꽃도 할미꽃 나름이어서다. 이름하여 동강할미꽃. 강원도 정선 동강 상류 산골짝에서만 볼 수 있는 할미꽃이다.

해마다 4월 들머리면 정선 귤암마을은 몸살을 앓는다. 막 개화한 동강할미꽃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군락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바위틈 비집고 할미꽃 몇 송이 띄엄띄엄 피어있을 뿐이다. 그래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사람이 이 두메산골을 찾아 들어온다. 동강할미꽃 한 번 들여다보겠다고 해마다 소란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동강할미꽃은 우리나라 동강변에서만 피는 할미꽃이다. 1997년 사진작가 김정명씨가 최초로 촬영했다고 전해지며, 2000년 학계에 공식 등록됐다. 동강할미꽃의 발견은 동강댐 건설 사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꽃이 개발을 막은 것이다. 귤암마을은 동강할미꽃 최초 발견지역이자 최대 자생지역이다.

동강할미꽃은 ‘뼝대’라고 하는 정선의 석회암 벼랑에 매달려 산다. 이 척박한 석회암 바위에 뭐 먹을 게 있다고 뿌리를 내린 것일까. 바위절벽에 새치름히 피어있는 동강할미꽃을 보고 있노라면 용하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다.

가파른 뼝대 중간에 얹혀사는 신세여서 햇빛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동강할미꽃은 할미꽃 부류 중에서 예외적으로 꽃대가 꼿꼿이 서 있다. 하늘을 향해 빳빳이 고개 쳐들고 있다. 꼬부랑 할머니처럼 잔뜩 허리 숙인 여느 할미꽃과는 다른 기품이다. 올해는 봄이 일러 동강할미꽃도 이르단다. 서둘러야겠다.

중앙일보 / 글ㆍ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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